정부는 10월말까지 성인 80%, 고령층 90% 접종이 완료되면 11월부터 본격적으로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을 추진할 방침입니다. 이를 위해 각 분야의 의견을 수렴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단계적 일상 회복을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각 분야 종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자 합니다. 관심 있는 시민기자들의 적극적인 제안과 참여 부탁드립니다.[편집자말] |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전파되기 시작했을 때 '택배'와 '코로나'라는 이질적인 단어 사이에 처음으로 접점이 생겼던 것은 지난 2020년 2월 4일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정사업본부가 16번 확진자가 발생한 광주우편집중국을 전격적으로 전면 폐쇄한 것이다.
코로나 확산 공포로 우정사업본부의 공격적, 선제적 사업장 폐쇄 결정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은 대체로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우편집중국을 폐쇄하면 하루아침에 먹고살 길이 막막해져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2015년에 메르스라는 국가적인 감염병 재난 상황을 겪은 이후에도 재난 발생 시 특수고용형태의 노동자를 지원하는 구체적 내용이 담긴 법과 제도는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후 '택배'와 '코로나'라는 단어 사이의 접점은 늘어갔다. 소위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주문 급증이 택배 물량 폭증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비대면(언텍트)'이라는 단어가 일상화되면서, 생필품과 기호품을 안전하게 집 앞까지 배송받을 수 있다는 장점은 코로나 공포의 한복판에서도 사재기가 발생하지 않은 세계 유일의 방역 선진국 이미지를 쌓는데 밑거름이 되기도 했고, 본의 아니게(?) 그저 열심히 일한 덕분에 택배 노동자로서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하지만 변화란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하는 것일까? '택배'와 '코로나'라는 이질적인 단어가 서로 얼크러져 상호 접변되어가는 동안 '과로사'라는 단어가 파생되어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던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택배 노동자의 구조적 과로 문제는 2020년 한 해 동안 16명, 2021년에는 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사망 과정을 들여다보면 대다수는 일하다가 혹은 잠을 자다가 급작스러운 심정지가 와서 문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상황이었고, 우리 주변에서 그와 같은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져 왔다는 가혹한 진실이 새삼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이다.
예견된 과로사
산업재해와 관련하여 흔히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 하인리히 법칙이다. 1건의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하기까지 그에 못지않은 29건의 위험한 상황이 있고, 이를 예고하는 300건의 징후들이 있다는 게 통계적 진실이라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토니 맥 마이클(Tony McMichael)의 '건강한 노동자 효과(healthy worker effect)'라는 용어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의 전체 사망률이 흔히 해당 사회의 평균보다 낮게 나타나는 것은, 심각하게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고용에서 배제되거나 조기에 퇴직하기 때문이며, 이는 왜곡된 통계라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의 배경 하에 1년여의 기간 동안 21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그 의미가 새삼 무겁게 다가오게 한다.
최근 들어 '위드 코로나' 혹은 '단계적 일상 회복'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모두 길고 긴 어둠의 터널 속 '희망'의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준비 없는 희망은 자칫, 희망 고문이라는 이름의 절망이 될 수 있다.
한 예로 코로나 백신 접종 과정에서 택배 노동자들은 '필수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우선 접종의 기회를 받는 일정한 특혜를 얻었다. 그러나, 실질적 집행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보니 우선 접종 실행은 택배 사업자의 선의에 기대하는 것에 그치는 수준이었고 정부 당국의 애초 취지와 실효성은 무색해졌다.
또한 법적 근거조차 없는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를 위한 고용안정지원금'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고, 국가적인 재난 상황에서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소외된 이들을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이 3차니 4차니 하는 식의 포퓰리즘성 이벤트로 전락해버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할 수 있다.
2015년 메르스의 경험과 2020년 코로나의 경험에서 220만 명의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와 1000만 명이 넘는 그 가족들에 대한 근본적 생계유지 대책 마련과 관련해서만큼은, 적어도 현재가 무정부적 상태라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이에 택배 노동자로서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기 위한 제안 하나는 '구체적인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 그리고 이를 운용하기 위한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말단 조직의 흐트러짐 없는 집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정부 입법 발의를 통해 구체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해당하는 법의 시행령, 시행규칙 등을 입안하는 것은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법적 근거를 마련한 후, 주재 기관을 명확히 하여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난마처럼 얽힌 듯 보이는 현 상황을 풀어나가는 첫 번째 실마리가 될 것이다.
택배 노동자로서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기 위한 두 번째 제안은 '업무 중 증상 발현 시 긴급 대응 매뉴얼'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택배 산업을 규정하는 여러 표현들이 있지만, '생활 밀착형 서비스로서의 공공성'을 빼놓을 수 없다.
민간 기업이 주관하고 있는 산업에 공공성이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반문이 있을 수 있겠으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국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영역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사회 공공재적 성격을 부정할 수 없다. 휴대폰 요금이 그렇고, 금융 서비스가 그렇고, 각종 SNS 서비스 산업도 그러한 측면이 있다.
이 같은 택배 산업의 공공재적 특성과 더불어 택배 노동자의 경우, 엘리베이터 같은 폐쇄된 좁은 공간에서 하루에 200~300명 씩 접촉하게 되는 것이 일상이므로 감염 시 확산의 정도가 여느 일반 직업군에 비할 바 없이 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업무 중 증상 발현 시 긴급 대응 매뉴얼'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대응 매뉴얼은 구체적이고 종합적이고 실질적인 대응이 가능한 매뉴얼이어야 한다. 예컨대 택배 노동자와 방역 당국과의 일상적 응급 소통 채널을 유지한다거나, 방역 당국과 응급 구호 기관과의 연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필수 노동자 전반에 해당하는 사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택배 노동자로서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기 위한 세 번째 제안은 '택배 산업의 공공성 확대'이다. 최근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법, 이른바 택배법)이 발효되었고,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사회적 합의 기구는 정부와 국회, 택배사는 물론, 화주와 소비자 대표, 그리고 택배 노동자를 모두 아우르는 구성이었다.
사회적 합의의 주무부서가 국토교통부였다는 점은 국가가 택배 산업의 공공성에 대한 일정한 인식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합의는 택배 산업 전반과 택배 노동자 처우와 관련한 다종다양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내용의 합의일지라도 실행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전 국민적인 관심과 지지 속에 이루어진 사회적 합의에 대한 이행을 점검하고 책임지는 역할은 응당 정부의 몫이라 하겠다.
이러한 공공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코로나 국면을 맨몸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택배 노동자의 안전과 보호를 위한 '쉼터 조성 사업'이라거나 '지속적인 공적 마스크 지급 사업'이라거나, '공동 주택 입구 체온계 및 에어 커튼식 소독기 설치 의무화' 등의 구체적인 정부 주도 지원 사업도 고려 가능해질 것이다.
방역은 개인 아닌 사회적 책임
코로나로 인한 고통이 한국 사회의 취약 계층 전반을 흔들고 있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위드 코로나'라는 말은 다수의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올 것이다. 지금까지의 코로나 방역 기조가 '폐쇄'와 '금지' 그리고 '통제'였다면, 위드 코로나의 기조는 '해제'와 '개방' 그리고 '자유'이다.
그러나 해제와 개방 그리고 자유가 방역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대리운전 기사, 영세 자영업자, 택시 기사, 호텔 관광업계 종사자 등 곳곳에서 코로나로 인한 문제들이 양산되고 있고 이는 명백히 사회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 문제에 대한 해법은 공공적 접근 방식으로 풀어야만 한다.
각자가 개인 방역을 철저히 하는 것을 넘어서서, 국가가 주도적으로 현 상황을 책임진다는 관점이 필요하다. 개인 방역을 기본으로 공공 방역이 일반화되려면 당연히 비용 문제가 생기게 되고, '방만한 국가 재정 운영'이라는 정치적 공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이른바 '대선 정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현 정부의 방역 기조가 '각자도생 방역'인지, '공공이 책임지는 방역'인지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사람이 먼저'라는 기치가 현실화되는 '위드 코로나'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