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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불신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권력으로의 편향된 시각과 부당한 공권력으로부터 진실의 편에 서지 않은 언론의 과거가 큰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합니다. 국가폭력피해자들의 과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언론이 진실을 추구하고 공정한 보도를 위해 노력했는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과거 구로공단으로 불리던 구로공단지역은 지금은 'G밸리', '구로디지털단지' 등으로 변해 예전의 모습을 찾기가 좀처럼 어렵다. 산업화 시대의 상징이었던 이 구로공단에는 조금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바로 '구로 분배농지 소송사기조작사건'이다.

구로공단 터는 원래 농지가 대부분이었다. 일제강점기였던 1942년부터 1943년 사이 일제는 구로농지 토지 중 약 100만㎡(약 30만 평)를 강제로 수용해 그 수용된 토지를 군용지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해방이 되자 정부는 농지개혁법에 따라 1950년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했다.

그러나 1961년 박정희 정권은 이곳에 공단을 조성하겠다며 농민들을 내쫓고 토지 관리권을 재무부로 넘긴다. 이에 1967년 농민 46명이 정부를 상대로 소유권 이전등기(부동산물권을 승계취득한 경우에 권리자의 명의이전을 하는 등기)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1970년 대법원에서 승소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받고 소송은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정부는 1심에서 패한 뒤부터 구로공단 조성에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해 대대적인 소송 사기 수사에 나섰다. 서울지검은 1968년 3월 '농지 분배 서류의 조작 사실을 인지했다'면서 농민은 물론 각급 기관의 농지담당 공무원들까지 수사망을 넓혀갔다. 
  
 1968.3.23 동아일보 7면. '허위대장 만둘어 분배'라는 제목으로 구로농지 분배가 허위조작되었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
1968.3.23 동아일보 7면. '허위대장 만둘어 분배'라는 제목으로 구로농지 분배가 허위조작되었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 ⓒ 동아일보
 
허위대장 만들어 분배
국유지 부정불하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검 심성택 부장검사는 23일 지난번 대법원 판결로 국가 측의 패소가 확정된 서울 영등포구 구로동 수출공업단지 25,925평(시가 3억여 원)을 비롯, 그 일대에 있는 군용지 22만여 평이 15년 전 허위로 만들어진 농지분배대장에 의해 개인에게 분배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국가에 환수키 위한 증거수집에 나섰다.

검찰은 22일 자수한 전 영등포구청 농지계장 김총훈씨와 전 영등포구청 농지계 직원 한태현씨 등을 심문하고, 이들 두 구청직원이 재직하던 지난 53년 아무 근거 없이 구로동 일대의 농지분배대장을 만들어 개인들이 농지분배 받은 양 상부에 보고했었다는 사실을 자백 받았다.
- 1968. 3. 23 동아일보 7면
  
 1968. 12. 30 동아일보 8면. 구로농지사기사건 혐의로 주민 29명을 기소했다는 내용의 신문기사
1968. 12. 30 동아일보 8면. 구로농지사기사건 혐의로 주민 29명을 기소했다는 내용의 신문기사 ⓒ 동아일보
 
1970년 7월까지 모두 143명이 체포·구속됐다. 구속된 이들 중에서 민사소송 취하와 토지권리포기를 약속한 농민들만이 풀려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불법적으로 구치소와 유치장에 감금되거나 알몸으로 구타·물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당했다.
  
이들 중 끝내 토지를 포기하지 않은 26명은 결국 재판에 넘겨져 '소송사기 미수혐의'로 기소되어 1979년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되었다. 이 재판의 결과로 농지분배 서류가 조작되었다는 결론을 얻은 정부는 연이어 토지반환 민사소송 재심을 통해 농민들로부터 토지를 반환받았다.

이들은 토지만을 빼앗긴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토지 사기꾼'이라는 낙오가 찍힌 것이다. 이들은 서류를 조작해 국유지를 사기 치려 한 파렴치범이 되었다. 실제 당시 신문은 이들이 '사기꾼'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1970. 7. 8. 경향신문 8면. 피해자들은 이미 사기꾼이 되어 있었다.
1970. 7. 8. 경향신문 8면. 피해자들은 이미 사기꾼이 되어 있었다. ⓒ 경향신문
 
땅 사기... 53명에 구속영장
- 1970. 7. 9.조선일보 7면
 
국유지를 먹은 무더기 사기꾼
1만여동의 집에 7만여 주민이 사는 서울 영등포구 구로동 주택단지를 비롯해 이웃한 수출공업단지와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박달리 일대 35만여 평의 일부 땅 주인들이 엉터리로 서류를 만들어 땅을 가로챈 '토지사기단'인 것으로 밝혀져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범인'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 땅은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농지로 일제 때 일본정부에 징발되었다가 해방 후 다시 찾아 경작해 왔으며, 1950년 5월 농지개혁법시행령이 공포된 후 자기들에게 분배됐다는 것.
- 1970. 7. 8 경향신문 8면
   
 1970. 7. 9 조선일보 7면
1970. 7. 9 조선일보 7면 ⓒ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 신문에서는 이들을 '사기꾼'으로 규정했고, 이들을 '범인'으로 기술했다. 이들은 이후 '사기꾼', '범인'으로 수십 년간 지내야 했다.

다행히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2008년 "농민들을 집단적으로 불법 연행하여 가혹행위를 가하고 위법하게 권리 포기와 위증을 강요한 것"은 형사소송법상 재심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받았다. 이들 농민들은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을 근거로 형사재판을 통해 소송사기 혐의에 대해 재심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곧바로 농민들은 무죄 판결을 근거로 토지 반환과 관련한 민사소송의 재심을 신청했고, 2017년 11월 29일 대법원 1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구로 분배농지소송 사기조작 의혹' 사건 피해 농민들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및 손해배상을 청구한 4건의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모두 확정했다. 결국 재심을 통해 토지반환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것이다.

이 사건은 국가가 공권력을 남용해 고문과 불법감금 등을 동원해 갖은 방법으로 승소한 것이 명백하다. 당시 이 사건을 주도했던 검찰과 여러 달에 걸쳐 농민들을 사기 소송범으로 몰아 검찰에서 무더기로 검거할 수 있도록 한 중앙정보보의 공작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앙정보부의 개입은 이후 민사재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즉 구로농지 논란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백원만씨 등이 구로농지분배 관련 서류를 위조하여 소송 사기로 이를 가로채려 한다는 취지의 조사보고서를 작성하여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중앙정보부의 역할이 시민의 토지를 빼앗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사건을 대하는 언론의 자세이다.
 
 1970. 4. 16 조선일보 7면. 구로농지를 빼앗긴 시민들이 정부와 법원의 결정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인다는 기사.
1970. 4. 16 조선일보 7면. 구로농지를 빼앗긴 시민들이 정부와 법원의 결정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인다는 기사. ⓒ 조선일보
 
판결 항의 데모
15일 오전 7시쯤 서울 영등포구 구로2동 주민 약 6백여 명이 정부가 지난 61년 12월 난민 정착지로 책정, 건물까지 지어줘 현재까지 살고 있는 대지 18만평이 일부 변호사의 농간과 재판의 잘못으로 패소된 데 반발, 이를 시정해 달라는 데모를 벌였다.
- 1970.4.16 조선일보 7면

토지를 빼앗긴 시민들이 억울하다는 취지로 데모를 벌인다는 내용의 기사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이들이 '서류를 꾸며' 토지를 분배받았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문제의 대지는 일제 때 군용지였던 것을 해방 후 정부가 국유지로  환지, 군용지로 수용했었는데, 6.25때 농지관계서류가 없어진 것을 이용, 이태현씨 등 45명이 자기네들이 경작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동 지 분배를 받아 권리 행사를 주장해 왔다.
- 1970.4.16 조선일보 7면

당시 이들의 주장에 대한 검증이 가능했을 것이다. 심지어 피해자들이 주장했는데도 언론은 이를 기사에 반영하지 않고 이들을 정부 발표대로 '사기', '사기단'이라고 기술했다. 

늦었지만 이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고 사법적으로 명예가 회복되었다. 그러나 당시 이 사건을 보도했던 주요 언론들은 이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보도하더라도 이들이 몇 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거나 배상액이 얼마라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배상액 보도가 아니라, 과거 이들에게 '사기꾼'이라는 파렴치한 사회적 낙인을 찍은 일부 보도 내용을 바로 잡는 것이다. 

#평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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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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