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글쓴이는 지금의 불교방송 뒤편, 마포구 도화동에 살았다. 이곳에서 마포대교(서울대교)를 건너면 한강 풀밭이 있었고 곤충들의 세상이었다. 여름방학이면 아점(아침+점심)을 먹고 친구들과 마포대교를 걸어서 곤충채집을 가고는 했다.
여치, 메뚜기, 파리매, 잠자리, 나비 등을 잡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후 두 시 쯤 되면 고픈 배를 움켜쥐고 그날의 전리품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어쩌다가 품에 십 원짜리라도 하나 있게 되면 돌아오는 길에 여의도 광장에서 냉차를 사서 마셨다.
얼음에 보리차를 넣고 약간의 설탕을 섞어서 마시는 그 맛이 일품이었다. 버스를 타고 마포대교를 건널 것이냐 아니면 시원한 냉차를 마시고 걸어갈 것이냐는 항상 고민거리였다.
부처님오신날이면 여의도 광장에서 연등행사가 시작되었다. 한복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연등을 들고 마포대교를 넘어 조계사로 향했다. 어린 나이지만 연등행사를 보는 즐거움이 남달랐다.
조금 더 컸더라면 매년 연등행렬을 사진으로 담아놨을 것이고 지금에 와서는 훌륭한 자료가 되었을 터이다. 하지만 당시는 경제성장이 가열차게 진행되던 때라 먹고사는 것이 큰 문제였다.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되었던 가장 큰 행사는 교황 방문이었을 것이다. 초중학교 시절, 멋모르고 여의도에 갔던 필자는 난생처음 공중부양이라는 경험을 했다. 수많은 인파에 떠밀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 공중부양의 경험은 두어 번 더 있었는데 출근 시간 신도림역에서의 지옥철 경험과 촛불집회 때였다.
그랬던 초등학교 시절은 63빌딩의 건립과 함께 막을 내렸다. 한강을 정비하면서 풀밭을 전부 없애고 인간 위주의 땅으로 꾸몄기 때문에 이제는 예전만큼 다양한 곤충을 볼 수는 없다.
가을철을 알려주는 방아깨비
여름은 메뚜기와 함께 지나간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귀뚜라미의 울음소리, 베짱이의 영롱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방아깨비를 비롯한 메뚜기류가 좋아하는 곳은 탁 트인 풀밭이다. 햇볕이 풍부하고 주변에 물이 있어야 한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런 장소가 어디에 있을까? 강변이다. 큰 비가 오면 범람하여 퇴적층이 쌓이고 나무가 자랄라치면 홍수가 나서 큰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환경.
산지에서는 무덤가에서 메뚜기를 발견할 수 있다. 벌초를 하여 큰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빛살이 풍부한 묘소는 메뚜기가 좋아하는 환경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 송장메뚜기라고 불렀던 칙칙한 색깔의 메뚜기가 이런 곳에 산다. 사실 송장메뚜기라는 종은 없다. 체색이 칙칙하여 께름칙하게 느껴지는 모든 메뚜기를 통틀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방아깨비는 튼실하게 생긴 뒷다리를 잡고 있으면 마치 방아를 찧는 듯, 겅중대기 때문에 붙여졌다. 방아깨비는 암수의 크기 차이가 매우 크다. 암놈은 최대 80mm 정도까지 자라며 수컷은 50mm 내외로 상당히 동작이 빠르다. 특히나 공중을 날 때는 날개 부딪치는 소리가 '따다다닥' 난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따닥개비라고 불렸다.
서식환경에 따라서 몸 색깔이 변한다. 녹색형이 기본인데 갈색풀이 지배적이라면 체색이 이와 비슷하게 바뀐다. 몸에 분홍색이 남아 있으면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미성숙 개체다. 날개가 다 자라지 못하고 싹만 보이므로 이 차이로도 구분할 수 있다.
짝짓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라면 완전한 초록색이거나 옅은 갈색으로 바뀌고 긴 날개가 완전해진다. 잡고 있으면 검푸른 창자액을 방울지게 만들어 입으로 토해낸다. 녀석의 유일한 방어수단이다. 사람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지만 다른 곤충들은 기피한다.
손에 묻어도 아무런 해가 없지만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저 꺼림직할 따름이다. 냄새를 맡아봐도 둔감해서 그런지 별다른 악취도 나지 않는다. 초접사 촬영을 해 보면 은근히 귀여운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 녀석은 강서습지생태공원에서 촬영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만 공항방면으로 조금 걷다 보면 초지가 나온다. 면적이래 봤자 초등학교 운동장만 한 크기다. 사람만의 공간이 아닌 동식물과 함께 하는 공원녹지라서 산책코스로도 좋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의 사진은 글쓴이의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