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학년인 우리반 아이들에게 긴 이야기책을 매달 한 권씩 읽어준다. 지난달에는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이라는 책을 읽어줬다.
책에는 기름으로 오염된 바닷물 때문에 죽게 되는 갈매기가 나온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듣더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슴 아파하였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하였던 태안 기름 유출 사건을 이야기해주며 관련 자료를 찾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실제로 검은 기름에 뒤덮인 갈매기와 바다에 기름을 걷어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걸 본 아이들은 말했다.
"우리도 봉사활동 하고 싶어요."
아이들은 돕고 싶어 했다. 아마도 이야기 속 갈매기가 너무 가여워 그런 마음이 절로 우러나온 듯했다. 나는 지구와 생명을 위해서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과 강한 의지를 기억해 두었다.
요즘만큼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와 닿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쓰레기양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나만 봐도 매일 일회용 마스크를 쓰고 버리고, 대부분의 소비를 온라인 쇼핑으로 하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것이 일상인 삶을 살고 있다.
매주 수요일 아파트 분리수거일이면 큰 포대로 대여섯 자루씩 담긴 플라스틱과 어마어마하게 쌓인 택배 상자를 본다. 모른 척하기엔 너무 많은 양이다. 마음이 편치 않다.
환경도 지키고 건강도 지키고
창체 환경교육 시간, 원래는 아이들과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주는 영상을 본 후 활동지를 풀어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느껴졌다. 산더미처럼 쌓였던 재활용 쓰레기를 보고 든 나의 죄책감과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를 읽고 환경을 위해 작은 것이라도 행동하고 싶어 했던 아이들 마음이 떠올랐다. 나는 교실 안에서의 교육이 아니라 '실천'할 수 있는 환경교육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민 끝에 찾은 것은 '줍깅'이었다. 줍깅은 줍다와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쓰레기를 주우며 즐겁게 조깅을 한다는 환경보호 캠페인 활동이다. 줍깅은 쓰레기 줍는 일이 환경을 지킬 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로 운동이 되어 내 건강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나는 방송인 타일러가 나오는 줍깅 홍보 영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줍깅에 대해 설명했다. 나는 이내 흐뭇해졌다. 여기저기서 "와! 재밌겠다!", "오! 괜찮은데!"라는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얘들아, 우리 줍깅 해볼까?"
우리는 한 달 동안 매주 화요일마다 집게와 쓰레기 종량제 봉투 20L짜리 두 개를 들고 학교, 학교 주변, 학교 가까이에 있는 숲을 다니며 줍깅을 했다. 쓰레기를 찾을 때마다 환경&건강 포인트가 쌓인다는 규칙을 정했더니 아이들은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신나게 줍깅을 했다. 탐정이 된 듯 두리번거리며 이곳저곳에 숨어 있는 쓰레기를 잘도 찾아냈다.
학교 주변에는 어떤 쓰레기가 가장 많을까? 아이들이 버린 휴지나 과자 봉지일까? 막상 주워보니 가장 많았던 쓰레기는 담배꽁초였다.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다. 아이들이 거리 여기저기에서 찾아온 담배꽁초를 보고 나는 어른으로서 많이 부끄러웠다.
숲에서 배우는 아이들
우리는 학기 초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 가까이에 있는 숲에 가서 수업을 한다. 숲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산책을 한다. 숲은 우리의 또 다른 교실이기도 하다. 줍깅 계획을 세울 때 아이들은 제일 먼저 숲에서 하자고 했다. 숲에서 쌓았던 우리들의 추억이 숲을 더 사랑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숲을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은 숲에 갔을 때 쓰레기만 줍지 않았다. "선생님, 이것 보세요!" 하고 큰 소리로 외치며 입 벌린 밤송이, 팬케이크처럼 생긴 넓적한 버섯 등을 집게로 집어와 보여주었고, 토실토실한 알밤과 반질반질한 도토리를 찾기도 했다. 집게를 들고 줍깅을 하다 보니 아이들은 적극적인 탐험가가 되어 숲의 보물들을 찾아왔다. 이 보물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줍깅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줍깅을 하고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아이들은 이제 어딜 가면 쓰레기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또한 주말에 아빠와 산에 가서 줍깅을 했다는 아이도 있고,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줍깅을 하며 갔다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의 선한 영향력은 늘 놀랍다. 좋은 것은 금방 흡수하고 빠르게 퍼뜨린다. 아이들은 말했다.
"선생님, 우리 줍깅 계속하면 안 돼요?"
"앞으로 틈틈이 해요!"
줍깅으로 시작된 환경을 위한 행동들
줍깅을 한다고 지구가 금세 깨끗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아이들이 쓰레기 조금 줍는 것이 환경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회의적으로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줍깅은 아이들에게 환경에 대한 관심과 봉사활동의 재미를 갖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이것은 일상 속 환경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환경보호를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환경의식의 씨앗이 될 것이다.
나 또한 아이들과 줍깅을 하며 조금 달라졌다. 쓰레기를 줍는 것에서 나아가 쓰레기 자체를 줄이는 것에 대해 작게나마 노력하게 되었다. 평소 좀 힘들다 싶으면 거리낌 없이 배달앱을 켰던 나는 가능한 배달 음식을 줄이기 위해 배달앱이 핸드폰 홈 화면에 보이지 않도록 설정해 놓았다.
어쩔 수 없이 배달 음식을 시킬 때는 플라스틱 용기가 적게 나오는 음식이나 종이 포장 용기를 쓰는 음식으로 메뉴를 고른다. 주문 시 요청사항에는 먹지 않은 소스나 반찬, 기타 일회용품은 일체 주지 말아 달라고 세세하게 메모를 적는다. 아직 배달앱을 선뜻 지우지는 못하지만 환경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가려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 줍깅을 했던 그 발걸음을 생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