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엄마와 산 지 4년, 서로 늙어감을 이해하게 된 엄마와 딸의 이야기. 그리고 비혼인 50대 여성의 노년 준비를 씁니다.[편집자말] |
작년, 봄. 태어나서 처음으로 돈 때문에 잠을 못 잤다. 돈이 없어 본 적은 많아서 웬만하면 넘기는 편인데, 작년에는 달랐다. 잘 살아보겠다고 벌인 일이 제도와 현실 앞에 꼬여 버렸는데, 일단 돈의 규모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설 만큼 컸다.
가족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엄마와 오빠는 집을 팔고 전세로 살자고 했다. 하지만 엄마가 오랜 시간 한두 푼 모아서 산 아파트를 나의 과오로 팔아야 한다는 게 괴로워서 또 잠을 못 이루었다.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
똥줄이 바싹바싹 타고 있던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인 절친 A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던 중에 A는 뭔가 이상했던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한 번도 돈 이야기를 한 적이 없던 터라 잠깐 망설여졌다.
내 실수와 현재의 상황을 다 꺼내 놔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는 친구였기에 그간 있었던 일을 다 쏟아냈다.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A가 조용히 내게 말했다.
"소영아. 살다 보면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생기더라. 그럴 땐 옆의 사람한테 도움을 청해도 되는 거야."
그러면서 A는 마침 며칠 전 들어온 돈이 있다면서 빌려주겠다고 했다. 원래 친구들과는 돈 거래를 절대 안 하기도 했고, A에게 돈을 빌릴 생각은 전혀 하지도 못 했던 터라 순간 깜짝 놀랐다. 동시에 마법처럼 강 같은 평화가 내게 임했다. 결국은 A 덕분에 급한 불을 껐고, 일도 잘 해결되었으며, 잘 갚았다.
나중에 A한테 들으니 흔쾌히 나에게 돈을 빌려준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엄마 때문이었단다. 고등학교 때부터 서로의 집을 오간 사이다 보니, A는 우리 엄마와 지금도 가끔 통화를 하곤 한다. 그런 엄마의 집을 팔아야 한다고 하니까 그건 지켜주고 싶었다고 했다.
"너 때문에 빌려준 거 아니야."
그렇게 말은 했지만, 난 평생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치매에 걸린 친정 엄마를 일주일에 한 번씩 보러 가는 A는 자기 집에 갈 때마다 우리 집에 들르곤 한다. "커피나 한잔 하자" 하면서. 난 그 신호를 안다. A도 위로가 필요한 거다. 별말 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고 위로하고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친구. A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재산이다.
친구가 중요한 건 엄마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잘하지도 못하지만) 친구가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은 분명 따로 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가 갑상선 암 수술을 받았을 때, 우리 집이 이사할 때, 엄마가 아프실 때... 엄마의 친구들은 항상 엄마 옆에 있었다.
지난번 내가 책을 냈을 때에도 엄마 친구들이 책을 사겠다며 발 벗고 나서주기도 했다. 심지어 그 책이 그분들의 삶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비혼에 관한 삶 <혼자 살면 어때요 좋으면 그만이지>인데도 말이다. 손주까지 다 본 어르신들이 다섯 권, 열 권씩 사겠다는 걸 겨우겨우 말릴 정도였다.
서로가 서로의 가족을 알고 좋은 일, 나쁜 일을 서로 나누던 친구들. 불행하게도 엄마는 그런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고 있다. 그래서 늙는다는 건 어쩌면 친구를 잃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코로나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이제 다 여든이 넘은 나이시다 보니, 허리와 무릎이 안 좋은 분들이 많고 서로 다 먼 곳에 살아서 한번 만나려면 정말 큰 마음을 먹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동네 친구들과 가끔씩 만나서 소소한 수다를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 날은 엄마의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묻지 않았는데도,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나에게 보고하느라 바쁘다. 이때는 같이 맞장구를 쳐줘야 엄마의 흥이 오래 간다.
"오늘 OO이 엄마한테 전화왔어."
며칠 전 퇴근하고 들어가니 엄마가 오랜만에 오래된 친구분의 소식을 전했다. 그 친구분은 새벽 미사를 가다가 넘어져서 꼼짝 못하고 계셨단다. 한 분은 딸과 함께 속초로 한 달 살기를 떠났는데, 이제 서울 집으로 오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11월에 한번 보기로 했다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에는 설렘과 기분 좋은 들뜸이 묻어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꼭 있어야 하는 존재
나이들수록 필요한 건, 돈이다. 하지만 돈만큼 중요한 게 친구이기도 하다. 우리 엄마를 봐도 그렇고, 나도 나이를 들어가며 내 삶에서 친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진다. 길동무가 좋으면 먼 길도 가깝다고 했던가. 이제 백세시대, 그러나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짧게 남았고, 긴긴 남은 생을 함께 할 동반자는 꼭 필요하다.
가족이나 반려인이 그러한 역할을 해준다면 가장 좋겠지만, 사실 가족으로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각자도생해야 하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서로 관심을 기울이고 걱정과 즐거움을 나누며, 현재의 시간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미국 테일러대의 총장이었던 제이 케슬러는 소원 중 하나가 자신이 죽었을 때 만사를 제쳐두고 장례식에 참석해 줄 친구를 적어도 여덟 명은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젊을 땐 그렇게 많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연기처럼 사라지고, 나도 누군가에게서 그렇게 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죽음까지 함께할 수 있는 친구를 여덟 명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엄마를 지켜보며, 또 나도 오십을 넘으며 실감한다.
죽음까지 함께할 수 있는 친구는 거저 생기지 않는다. 여덟 명까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중년과 노년을 함께할 좋은 친구들을 곁에 두고 싶다. 그래서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소중하다. 그들에게 시간과 돈, 마음, 정성을 더 기울여야지. 그들은 나의 가장 든든한 보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나도 그 친구들에게 보험이 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