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모듬회를 주문했는데 나온 생선이 당최 뭔지 구분하지 못한 경험이 누구나 있을 거다. 횟집앞 수조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선 중에 광어 정도는 알겠는데 나머지는 도대체 뭔지 생소한 경험도 흔하게 마주한다. 그때그때 궁금증을 해결할 때도 있지만 금세 잊고 다시 또 그런 상황에 서는 때가 더 많지는 않은가.

육지동물과 생선을 비교하자면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소와 돼지, 양, 오리, 닭, 양, 꿩, 토끼, 개 등 식용이 허용된 육지생물을 먹을 땐 누구나 제가 먹는 것이 무엇인지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생선은? 그냥 생선일 뿐이다.

생선 중에 이름을 알고 먹는 생선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고등어, 갈치, 삼치, 조기, 꽁치 정도는 상식이지만 그 너머는 선택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낚시꾼에게 유명한 돔과 다금바리 같은 생선도 주변에 물어보면 그 겉보기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다. 접하기 어려워서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다.

바다 생선, 이제는 이름을 알고 먹자
 
우리바다가 품은 온갖 이야기 책 표지
우리바다가 품은 온갖 이야기책 표지 ⓒ 지성사
 
지성사 신간 <우리바다가 품은 온갖 이야기>는 한국사람이 접할 수 있는 물고기를 망라한 책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체로 서술돼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책 속에서 몇 차례 인용되기도 하는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의 현대판 보급형 판본이라 해도 무리가 없겠다. 바닷물고기에 정통한 학자 명정구씨가 해양과학기술 부문에서 활약하는 학자 양찬수, 소설가 양인철씨와 함께 썼다.

책이 다루는 물고기는 사실상 한국 사람이 살면서 식탁에서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이다. 고등어와 갈치, 멸치, 대구, 명태, 임연수어, 꽁치, 청어, 낙지, 쥐치, 삼치, 오징어, 문어, 낙지, 홍어, 조기, 연어, 가자미, 농어, 방어, 민어, 도루묵, 넙치, 복어 등등 종류가 끝도 없다. 이 물고기들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현재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종의 특성은 어떠한지를 두루 서술해 흥미를 끈다.

사람들이 물고기를 기억하기 어려운 이유는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다. 책에 소개되는 어종 중 수많은 것들이 최소 서너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일례로 세 방향 바다에 모두 사는 삼세기는 경상남도에서는 '탱수', 강원도에서는 '삼숙이', 전라도에서는 '삼식이'라 불린다.

양태라는 물고기는 서해안에선 '장대'가 되고 부산에선 '낭태'가 된다. 개복치는 부산에선 '안진복', 포항에선 '고래복치', 영덕에선 '골복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조선 최초의 어보인 김려의 <우해이어보>와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있긴 했으나 널리 보급되지 않아 지역별로 달리 불렸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물고기를 어렵게 여기게 됐다. 생태, 동태, 북어, 코다리, 먹태, 황태로 이어지는 명태의 여러 이름이나 제대로 구분하면 다행이다. 지식이란 인터넷으로 언제든 찾아봐도 무관한 게 되어버린 요즘 세상에선 물고기를 구분하는 사람이 더욱 드물어졌다.

모르던 세상과 만나는 진귀한 경험

<우리바다가 품은 온갖 이야기>는 이런 상황에서 더 빛을 발한다. 첫 낚시를 가려는 아들과 물고기에 정통한 아버지의 대화를 곁에서 들어봄으로써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유명한 물고기들과 안면을 트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임진년 왜란 때 몽진 중이던 선조가 맛을 본 뒤 은어라는 이름을 붙였다가 도성으로 돌아와 도루묵이 됐다는 일화나 '임연수어 껍질 싸먹다 천석꾼도 망한다'는 옛 말을 듣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물고기의 이야기로부터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대목도 있다. 책에 따르면 황금어장이 펼쳐지는 곳은 대개 두 수역이 서로 만나는 접점이다.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조경수역과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 같은 곳에 황금어장이 펼쳐진다. 두 세계가 만나 섞이는 이곳에선 다른 바다보다 훨씬 많은 생물이 모여 서로 잡고 잡아먹히며 풍성한 생태계를 이룬다. 이 책이 소개하는 물고기 중 상당수도 이런 수역에서 번성한다.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곳에서 탄생과 죽음, 번성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생명은 끊임없는 경험과 경쟁을 통해 발전하는 존재다. 고립됐던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대륙의 문명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역사도, 폐쇄적 고립경제를 추구해온 국가들이 빈곤과 기아에 직면한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아마존과 호주 같은 고립된 단일생태계는 먹이사슬이 안정된 뒤 개체들이 크기를 키우는 방식으로만 진화해왔다가 외래종 유입으로 낭패를 겪기도 했다. 사회건 개체건 적극적으로 나아가 새로운 자극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 바다가 품은 온갖 이야기>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서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바다에 대해 무지한 우리가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는 첫 걸음으로 바다의 생명을 돌아보는 건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어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바다가 품은 온갖 이야기 - 바다낚시와 물고기 그리고 서식 환경

양찬수, 명정구, 양인철 (지은이), 지성사(2021)


#우리바다가 품은 온갖 이야기#지성사#바다#낚시#김성호의 독서만세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