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정지용의 시에 김희갑이 작곡을 하고 이동원과 박인수가 듀엣으로 부른 향수의 첫 구절이다. 정지용은 이상(李箱)의 시를 세상에 알렸으며 청록파 시인들을 등단시켜 현대 시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향수는 대중가수와 성악가의 콜라보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노래다. 당시 군사정권 하에서 '빨갱이 작가'로 낙인 찍힌 월북 시인 정지용의 작품은 1988년 민주화를 이루어내면서 금서 목록에서 해제된다.
이동원은 삼고초려하여 당대 최고의 작곡가 김희갑과 서울대 음대 교수였던 테너 박인수를 설득하여 이듬해에 향수가 담긴 앨범을 발표한다. 노래는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박인수는 국립 오페라단에서 제명되는 고초를 겪는다. 속칭 '딴따라' 판에 들어가 품위를 훼손했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에서였다.
이보다 앞선 1981년에는 존 덴버와 플라치도 도밍고의 'Perhaps Love'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는 크로스 오버라고 해서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놀이판을 즐겼다. 엉뚱한 것을 엮어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것은 한국인들이 가진 특성 중 하나다. 비빔밥과 김치를 생각해 보라. 지금 세계를 홀리고 있는 씽씽밴드와 악단광칠, 이날치 밴드도 있다.
향수에서 얼룩배기 황소는 젖소가 아니고 범무늬를 가진 칡소를 뜻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목장의 이미지는 한가함일 것이다. 얼룩배기 황소가 어슬렁대며 풀을 뜯고 흰구름이 두둥실 파란 하늘을 흘러가고 외양간에 앉아 되새김질을 하는 장면말이다.
풀숲에 매어 놓거나 달구지를 몰고 가거나 논갈이를 할 때에도 소는 항상 꼬리를 흔들어댄다. 왜냐하면 소등에(쇠파리)라고 불리우는 성가신 파리를 내쫓기 위함이다. 소나 말, 염소 같은 가축에 들어붙어 피를 빨기 때문에 영어권에서의 명칭은 말파리(horsefly)다. 별칭으로 쪼는파리(gadfly)라고도 불리운다.
벌을 의태하여 천적을 피하고 피를 빤다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드라큘라는 작가 브램 스토커의 창작이다. 그는 루마니아의 영주였던 '블라드 체페슈' 백작의 공포스런 사형 방식과 피를 마셔댔던 프랑스 귀족들의 기묘한 습성을 잘 버무려 흡혈귀를 만들었다.
친인척끼리 결혼을 했던 당시의 프랑스는 혈우병과 같은 유전 질환을 가진 아이들이 태어났고 피를 보충하기 위해 피를 먹었다. 이후 과장되고 변형되며 덧붙여져 오늘날의 드라큘라로 발전해왔다.
곤충계의 흡혈귀는 모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흡혈 곤충 중에서 모기를 제외하면 소등에가 있다. '등에'의 사전적 설명은 '피를 빠는 파리의 총칭'인데 어원은 아주 단순하다. '소 등에' 앉아서 피를 빨므로 소등에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꽃 위에 앉아서 흡밀하는 곤충이 '꽃등에'다.
왕소등에의 몸길이는 30mm에 이르는데 벌과 흡사하게 생겼을 뿐만아니라 나는 소리도 벌을 흉내내어 보통사람은 말벌과 착각하기도 한다. 쇠파리는 과거 소를 키우던 시절에는 흔하게 접하던 놈이었다. 소등에한테 물리면 모기한테 쏘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
모기가 주사기처럼 침을 꼽고 흡혈한다면 소등에는 주둥이(순판)로 살갗을 자른 뒤에 피를 마신다. 독은 없기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처음에 쏘였을 때는 상당히 아프다. 사람에 따라서는 예민하게 반응하여 부어오를 수 있으며 멍이 들면 2주 정도 흔적이 남는다.
모기와는 달리 밤중에 은밀하게 접근하지는 않는다. 말벌처럼 붕붕 거리는 소리를 내며 주변을 선회하므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소가죽을 뚫을 정도로 날카로운 입을 가졌기에 긴 옷을 입었더라도 물리고는 한다.
그러나 도시민들이 쇠파리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으므로 안심해도 된다. 소등에도 모기와 같이 암컷만 피를 빤다. 알을 낳기 위해서는 고단백 영양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암놈은 겹눈 사이가 벌어져 있으나 수컷은 붙어있기에 맨 눈으로 구별할 수 있다. 애벌레는 계곡물에서 살다가 봄에 성충으로 날개돋이하여 가을까지 활동한다.
서양에서도 소등에의 이미지는 좋지 못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쇠파리에 비유했다. 쇠가죽 만큼이나 두터운 '아테네인들의 무지를 일깨우는 존재'라는 의미에서다. 그는 상대방이 귀찮아 할 정도로 질문을 하여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만들었다. 오늘날 융합과 통섭의 시대에는 이질적인 것을 엮어서 새로움을 만들어야 한다. 철학과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가 펴낸 책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사진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