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가장 맞닿아 있는 술 중 하나인 맥주. 우리는 맥주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문화로서의 맥주를 이야기하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기자말] |
'맥주 마니아'들은 흑맥주라는 말을 즐겨 쓰지 않는다고 한다. 똑같이 검은색 외관을 띠고 있어도, 스타우트와 다크 라거, 벨지안 에일, 둔켈 등 스타일마다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흑맥주의 이름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나는 3초 만에 '기네스'를 뽑을 것이다.
내가 가장 처음 만난 흑맥주는 기네스다. 맥주라 하면 황금빛 라거만 생각했던 나에게, 기네스의 외관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맥주가 검은색이라니!' 맥주캔 안에 질소 가스를 배출하는 플라스틱 공인 '위젯'이 들어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늘 그랬듯이 맥주를 캔째로 마셨는데, 절대 캔째로 마시면 안 된다는 친구의 훈수를 들었다. 잔에 따라 마실 때 맛이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말은 사실이었다. 캔째로 마셨을 때는 간장 맛이 났는데, 유리잔에 따라 마실 때는 구수한 맛과 부드러운 크림의 맛이 모두 느껴졌다.
투명한 유리잔을 통해 거품의 '대류'를 관찰하는 것도 즐겁다. 참고로 플라스틱 공이 들어있는 것은 '기네스 드래프트'다. '기네스 오리지널'에는 이 위젯이 없다. 질소 대신 탄산을 주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깊은 맛을 자랑하는 것은 오리지널 쪽이다.
기네스의 탄생
기네스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위치한 세인트 제임스 양조장에서 만들어진다. 볶은 보리를 통해 구수하고 쌉쌀한 맛과 짙은 색깔을 만든다. 기네스는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맥주다.
다양한 변형 레시피도 알려져 있다. 라거 맥주와 기네스를 섞어 마시는 '하프 앤 하프'로 오묘한 색깔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크림과 위스키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 '아이리시 카밤' 역시 유명하다.
기네스의 역사는 1759년, 아일랜드의 귀족인 아서 기네스에 의해 시작되었다. 기네스의 로고에 새겨져 있는 하프의 모습은 헨리 8세의 통치 이후 아일랜드의 상징물로 여겨진 것이다. 그러나 기네스를 단순히 아일랜드의 상징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주저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아서 기네스는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 신자였으며, 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식민 통치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가문의 기조는 20세기까지 이어졌다. 20세기 초반 기네스는 아일랜드 자치법안을 막고자 정치 자금을 후원했고, IRA(아일랜드 독립을 주장한 무장 조직)에 맞서는 영국군을 지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국가적 정체성은 희석되어갔다. 역사적 맥락과 상관없이, 많은 아일랜드 뮤지션들은 기네스의 팬이었다.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맥주지만 영국의 색깔도 강하다. 심지어 록의 거장 U2는 후배 아일랜드 밴드인 코다라인(Kodaline)에게 엄청난 양의 기네스 맥주를 선물했고, 기네스 맥주를 한아름 싸들고 밥 딜런을 만나기도 했다.
뮤지션들이 사랑했던 기네스
이 맥주에 탐닉했던 대표적인 뮤지션 중 록밴드 오아시스(Oasis)를 빼놓을 수 없다. 오아시스는 1990년대 브릿팝 운동을 상징하는 록밴드로서, 국내에서도 많은 마니아를 보유하고 있다.
이 밴드의 주축인 갤러거 형제(노엘 갤러거, 리암 갤러거)는 아일랜드 이민자인 부모에게서 자라난 이민자 2세대이며, 노동 계급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기도 하다. 오아시스는 공연 전날, 그리고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기네스를 물처럼 마셨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아시스의 첫 내한 공연이 펼쳐진 2006년, 노엘 갤러거는 몸 관리 비법을 묻는 한국 기자들의 질문에 '고기 많이 먹고, 담배 많이 피고, 맥주 많이 마시고 늦게 자면 된다'고 대답했다(그는 9년 후 이 인터뷰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내용을 기억하지 못 했다).
노엘 갤러거가 많이 마신다고 했던 맥주는 바로 기네스일 것이다. 그는 여러 차례 기네스에 대한 애정을 고백했고, 여러 차례 이 맥주를 마시는 모습과 함께 목격되었다.
노엘 갤러거의 동생이자 오아시스의 메인 보컬이었던 리암 갤러거 역시 기네스에 대한 사랑을 여러번 고백했다. 오아시스 해체 이후 결성한 '비디 아이(Beady Eye)'가 실패하고, 영국의 한 펍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팬들을 만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그때도 그의 옆에는 기네스가 있었다.
솔로 가수 리암 갤러거의 모습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As It Was'에서도 그는 자신이 한번에 30파인트 잔의 기네스를 마실 수 있다고 으스댄다(영국에서는 1파인트는 0.57리터에 해당한다. 아마도 허풍이 섞여있지 않을까 싶다). 오아시스는 갤러거 형제의 심각한 반목과 대립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기네스에 대한 두 사람의 애정은 변함없다.
기네스는 오아시스를 닮았다. 구운 맥아가 만들어내는 야성적인 풍미, 그리고 크림의 부드러운 맛이 공존한다. 오아시스도 그렇다. 언제나 투박한 로큰롤 스타가 되기를 고집했지만, 언제나 그들의 음악에는 밝고 부드러운 멜로디가 담겨 있었다. 오늘 밤은 오아시스의 'Live Forever'를 들으면서 기네스 한잔을 마셔보는 것은 어떨까. 록 음악은 더 아름답게, 기네스는 더욱 맛있게 느껴질 것이다.
You and I are gonna live forever
(너와 나는 영원히 살 거야)
- 'Live Forever'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