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위성정당 사태로 얼룩진 미완의 선거제도 개혁. 선거제도개혁연대의 진단과 처방을 들어본다.[편집자말] |
20대 대통령선거를 70여일 앞두고 정치개혁의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21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아래 정개특위)는 지난 28일 '피선거권 연령을 현행 25세에서 18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31일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25세 피선거권 연령이 18세로 낮아진 것은 1947년 이후 무려 74년 만의 획기적인 정치개혁 조치다. 이는 지난 20대 국회에서 선거권 연령이 만 18세로 낮추어진 성과를 잇는다. 바야흐로 시민 참정권의 확대 흐름과 청소년 정치 활동이 한국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는 청신호이자 물꼬다.
참정권 확대 효과는 즉자적이며 가시적이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18세 청소년 유권자 약 55만 명'이 투표권을 거머쥐었다. 놀랍게도 18세 투표율은 67.4%로 전체 투표율 66.2%는 물론 20대(58.7%), 30대(57.1%), 40대(63.5%)를 훌쩍 앞질렀다. 유럽과 일본의 1020세대 투표율이 보통 45~60% 선이라는 점과 비교해도 이만하면 가히 '정치덕후' 격이다.
그들은 정치 신인이었으나 결코 서툴거나 주눅들지 않았다. 일부 기성세대가 꼰대스러운 호들갑을 떨며 호도했던 '잘못된 정치적 판단' '교실의 정치화 혼란' 같은 일탈은 일어나지 않았다. 18세 참정권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2005년 19세 선거권 하향 조정 이후 무려 15년 간 청소년 당사자들의 줄기찬 시민권 캠페인의 결과물이었다.
20대 국회가 '청소년 정치 19금'을 해제하고 정치 무대의 관객으로 초청했다면, 21대 국회는 그들을 무대의 주인공이 되도록 지평을 여는 것과 같다. '투표하는 시민에서 정치하는 시민으로의 변화'는 K-팝 퍼지는 속도만큼이나 빠를 것이다. 이미 세계 정치 무대에서 1020세대의 유쾌한 정치 반란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세계는, 한국은
그러나 '정치 19금 해제'를 통해 투표하고 출마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는 것만으로 과연 충분할까?
18~19세 유권자는 약 100만여 명에 달하지만 같은 연령대의 국회의원·지방자치의원은 아직 단 한 명도 없다. 청소년 학생 530여 만 명은 여전히 학업·학교·진로를 좌우하는 '나만의 교육감'을 직접 뽑을 권리가 없다. 1400여만 명의 1030세대 유권자는 대통령을 뽑을 수는 있으나 '내가 될 수'는 없다.
500여만 명의 10대 청소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에게 정치후원금을 내거나 정당에 가입할 수가 없다. 선거운동은 1도 못한다. 심지어 자신이 학교에서 매일 먹는 급식 안전성을 위한 주민참여조례에 청원 서명조차 할 수가 없다. 한국 정치에서 금기와 금단의 벽은 여전히 높고 단단하다.
우리는 종종 언론을 통해 해외 젊은 세대의 신선하고 혁신적인 정치 뉴스에 놀라워하며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곤 한다. 지금 세계는 젊은 정치인들의 돌풍과 지각변동을 '유스퀘이크(youthquake)'라 명명하기도 한다.
현재 유럽 27개국 중 10개국에서 30~40대의 대통령과 총리를 배출하고 있다. 유럽 각국 의회의 40세 미만 의원 비율은 평균적으로 30~40%에 이르지만, 한국은 4.3%라는 초라한 성적이다. 이 청년비율은 광역의회 5.58%, 기초의회 6.56% 정도여서 청년세대 과소대표성은 지극히 심각한 상황이다.
유럽의 젊은 정치인들은 선거를 앞두고 한국처럼 깜짝 이벤트로 인재 영입되지 '못'한다. 정당 정치의 경력이 없다면 검증도 어렵고, 유권자로부터 지지받기란 더욱 어렵다. 정당 공천권이 문제가 아니라 당원과 유권자로부터 경쟁력을 인정받기가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선거법 개정을 넘어 정치생태계의 변화가 필요하다
바로 지금, 투표하고 출마할 수 있는 권리와 기회의 확대를 넘어 '젊고 실력있는 좋은 정치인'을 다다익선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을 가꾸고 생태계를 만드는 정치개혁에 박차를 가하기 좋은 때이다.
동일한 출발선에 섰다고 좋은 경쟁력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기초 체력을 기르고, 지속가능한 운동 조건을 확보하고, 출전 문턱을 낮추며, 사회적 자원과 인적 투자를 받을 수 있는 환경으로 계속 변화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청소년 참정권의 기초는 정치학습과 경험, 훈련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백문이불여일견이듯 교과서가 아닌 체험학습 만큼 확실한 교육 효과는 없다. 이를 위해서 시급한 것은 정당법상의 '정당가입 연령제한'을 폐지하거나 조정하는 것이다.
한국의 정당법은 '국회의원 선거권이 없는 자'는 정당 가입도, 선거운동도, 정치후원금 납부도, 주민참여조례 청원서명도 원천 금지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대체로 법으로 규제하지 않고, 각 정당의 당헌·당규를 통해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유럽에서 20대 국회의원, 30대 총리, 40대 대통령이 배출되는 배경에는 청소년 시기부터 축적하는 정당 활동의 산 경험과 훈련이라는 토양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돈'의 장벽을 낮추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의 비싼 기탁금 제도는 악명높기로 유명하다.
1020 세대에게 출마 자격을 부여한다고 한들 광역단체장 5천만 원, 국회의원 1500만 원, 자치시·군·구 단체장 1천만 원의 출마기탁금은 턱 없이 과중하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 대다수 유럽 정치 선진국의 경우 기탁금 제도는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명목과 상징적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참정권 확대는 반드시 '선거공영제의 도입·확대'라는 정치개혁 조치와 궤를 같이한다. 선거공영제는 선거운동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여 기회균등을 보장하고 선거비용을 공적으로 부담함으로써, 선거의 공정성과 자력이 없는 유능한 후보자의 당선을 보장하려는 제도다.
이는 헌법 116조의 "선거에 관한 경비는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당 또는 후보자에게 부담시킬 수 없다"고 규정한 선거공영제의 헌법 가치를 준수하는 것이기도 하다. 투표하고 출마할 수 있는 기회의 보장을 넘어 일찍 정치를 학습하고 돈 없어도 정치할 수 있는 시민 기본권의 관점이 투영되어야 한다.
김영삼, 류호정, 그 다음
27세 최연소 비례대표 국회의원 류호정의 기록이 깨지길 원합니다.
최근 정치개혁 토론회에서 밝힌 소회다. 헌정사상 최연소 비례후보로써 자신의 당선이 운이 좋았고 많은 도움을 받았고, 한국 민주주의 진전의 한 장면임을 밝혔다.
한국의 최연소 국회의원 기록은 1953년 3대 총선에서 지역구에 출마해 만 25세로 당선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보유하고 있다.
이제 넘사벽 기록이 깨질 날이 멀지 않았다. 김영삼을 깨고 류호정을 넘을 새로운 시대의 정치 신인상의 주인공은 과연 누가 될까? 기회의 문이 열렸다. 먼저 바지런히 준비하는 사람과 정당이 신기록의 주인공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선거제도개혁연대 운영위원으로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