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엄마와 산 지 4년, 서로 늙어감을 이해하게 된 엄마와 딸의 이야기. 그리고 비혼인 50대 여성의 노년 준비를 씁니다.[기자말] |
우리집 강아지는 훈련이 잘 되어 있다. 어디에 있든지 우리가 "하우스" 하면 제 집인 하우스로 쏙 들어가곤 한다. 그 자그마한 집이 안식처로 여겨지는지 밤에 잘 때가 되면 늘 하우스로 들어가서 잔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하우스에 들어가서 자는 빈도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하우스 안에 푹신한 방석을 깔아주었는데도 소파 위 담요 위에서 자는 일이 많아졌다.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내가 혼잣말을 했다.
"요즘 왜 하우스에서 안 자지?"
내 말이 끝나자 엄마가 대답했다.
"세 줬대. 내가 돈 없다고 하니까 자기 하우스 세 주고 돈 받아서 나한테 준대."
그리고 우리 둘이 서로 마주보며 깔깔깔 웃었다.
엄마와의 사소한 대화
엄마와 지내다 보면 효도용 시청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엄마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한두 개 정도는 같이 보는 걸 말한다. 웬만해선 "재미대가리 없다"고 하는 엄마여서, 까다로운 엄마의 취향에 맞는 프로그램이 나올라치면 엉덩이를 붙이고 같이 보곤 한다.
점점 줄어가는 엄마와의 대화거리를 만드는 데 이보다 좋은 건 없기 때문이다. 한때는 <미스터 트롯>이었고, 작년에는 <싱어게인>이었고(지금은 <싱어게인2>가 방송중이긴 하다), 요즘은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였다.
가끔 엄마의 취향에 놀랄 때가 있는데, 한동안 엄마는 아이돌 그룹 샤이니 민호의 팬이었다. 옛날에 민호가 운동 프로그램에 나오는 걸 보고 반하셨다(!). 엄마는 그때 그룹 샤이니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엄마는 텔레비전에 민호가 나올 때마다 손주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시선 고정이었다.
이번에 놀란 건 여성 댄서들의 경연 프로그램인 <스트릿 우먼 파이트> 일명 '스우파'였다. 먼저 시작한 건 나였다. 뒤늦게 재방송으로 스우파를 보기 시작했는데, 엄마가 옆에 와서 앉으셨다.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리려는 나에게 "괜찮아. 그냥 봐" 하시는 게 아닌가.
엄마는 꽤 집중해서 보셨고, 내가 강아지와 산책하고 돌아오는 동안에도 채널을 바꾸지 않고 보고 계셨다. 80이 넘은 할머니가 스우파라니. 난 궁금해서 물었다.
"엄마 재밌어요?"
"그래. 요리 프로그램보다 낫다. 내가 이 나이에 새로 요리할 것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엄마는 요리하는 프로그램보다 여행을 한다든지, 노래하는 프로그램을 더 좋아하셨다.
"어떤 팀이 제일 좋아?"
"난 아이키인지 뭔지가 제일 좋더라."
"왜 좋은데?"
"다른 팀 할 때도 제일 열심히 응원해 주는 것 같아서 좋아."
엄마와 나는 TV를 같이 보다가 이런 대화를 종종 한다. 생활 속에서 주고 받는 사소한 대화. TV를 보다가 나누는 사소한 잡담. 그러다 문득 같이 웃고, 또 문득 진지한 속내를 이야기하게 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사소하다는 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 전 <유퀴즈>라는 TV 프로그램에 강창무 췌장암 전문의가 나와서 암으로 일찍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신의 손'을 갖게 된다면 20여년 전으로 돌아가 엄마의 병을 고쳐주고 싶다고. 그러면서 어머니와 사소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지고 볶더라도 같이 사는 게 제일 좋다는 말에 나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배우고 싶은 엄마의 유머
학창 시절, 종종 전철역으로 마중 나와서 내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곤 했던 엄마. 그런 엄마의 팔짱을 끼고 집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수다 보따리가 풀어지곤 했다. 그날 학교나 직장에서 있었던 일, 나를 속상하게 한 친구의 흉, 엄마도 아는 내 친구의 안부 등 엄마와 참 많은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지금도 엄마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지만,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엄마가 속상할 만한 이야기나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는 속으로 삼키는 경우도 많고, 대화의 결도 달라졌다. 예전에 비해 인지력이 떨어져서 같은 걸 보고도 다르게 이해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다. 엄마와 대화가 '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
그만큼 엄마하고 나누는 사소한 대화들이 새삼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분명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는 요즘, 엄마가 아직까지 지키고 있는 건 '유머'다. 밥 먹을 때마다 자주 흘리셔서 내가 "식탁 밑에 밥풀이랑 조기 잔치 열렸네" 하면 엄마는 "가만히 둬. 이따 점심 때 먹으려고 남겨 둔 거야" 하신다.
잘 모르는 분이 "아저씨는 어디 계세요?" 하면 엄마는 돌아가신 지 벌써 30여년이 된 아빠를 "멀리 유럽여행 가더니 거기가 좋다고 30년째 안 오고 있어요" 하며 유쾌하게 대답하신다.
이런 농담을 던지며 엄마와 함께 웃는 순간들. 한바탕 말다툼을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농담을 던지며 풀어지는 순간들. 엄마가 잘 못 이해해서 설명에 설명을 더해야 하는 순간들. 50이 넘어서까지 엄마와 같이 살게 되면서 느끼는 사소하면서도 소중한 행복이다. 그리고 나이 들면서도 유지하는 명랑함과 유머. 이런 것들은 엄마가 나에게 몸소 가르쳐 주는 나이듦의 미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