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러분의 삶에 가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앞으로 5년간 우리 삶을 좌우할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국민이 어떤 공약을 원하는지, 지금 각 분야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대신 전달하려고 합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도 환영합니다. '2022 대선 정책오픈마켓', 지금부터 영업을 시작하겠습니다.[편집자말] |
322만 명.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 규모다. 전체 임금 노동자의 16%에 달하고 부산광역시 전체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보이지 않는 이들이 된 것만 같다.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역대 최저인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제도권 밖에 놓인 노동은 흔하디 흔하고, 여전히 적지 않은 수이다.
특히 최근 10년 동안 진행된 일자리 양극화는 소수의 고임금 일자리와 대다수의 저임금 일자리로 노동시장을 바꿔놓았다. 한국의 상위 10% 소득은 중위 소득(국민 가구소득의 중위값)의 2.32배로 나타나, OECD 40개국 중 9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반면 중위 소득과 하위 10% 소득의 비율은 1.69배로 20번째에 해당한다. 상위층과 중간층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격차가 있고, 대다수가 사실상 저임금 노동자와 유사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저임금 노동의 최근 양상은 더욱 쪼개지고 파편화되는 것이다. 이는 플랫폼에 의한 것만이 아니다. 방치되어온 노동법의 사각지대와 미뤄온 제도 개선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형태가 초단시간 노동이다.
아르바이트 쪼개기는 그만, 주휴수당 기본급화
일주일에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가 이제는 100만 명을 넘나들고 있다. 고령화와 노인 일자리 사업의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그 증가 추이는 그대로 두고 보기 어렵다. 최저임금으로 계산하면 월소득 60만 원 남짓으로 생계를 위해서는 최소 2개의 일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특히 20대 청년 아르바이트, 그 중에서도 여성의 일자리가 이러한 형태로 변화하였다.
주휴수당 등을 주지 않기 위해서 14시간 30분만 고용하는 것이 최근 아르바이트 노동시장의 표준인 것이다. 이러한 편법은 최저임금 인상을 회피하고자 급격히 늘어났다. 짧게 일하는 것은 부수적인 경제활동, 즉 용돈벌이이고, 이는 노동법으로 우선적으로 보호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오래된 인식에서 출발한다.
학업이나 다른 요인으로 경제활동을 주로 하는 상태가 아닐 거라고 간주하는 것은 구태의연하다. 고용 안정의 측면에서 특별히 더 보호해주지는 않을 수 있어도, 최소한의 근로조건에 차별을 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 짧게 일을 시킨다는 이유만으로 주휴수당과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사회보험 가입시킬 의무가 사라져선 안 된다.
하나의 일자리를 두세 개로 쪼개면, 주휴수당과 퇴직금에 사회보험료까지 33%에 달하는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마법'이 일어난다. 어떤 사업주가 이를 마다할까. 쪼개서 고용해도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은 일자리일수록, 저임금 저숙련 노동에 단순노무직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진다. 일자리 쪼개기, 주휴수당 회피하기가 알바 고용의 정석처럼 여겨지고, 주변부 노동시장의 규칙이 되어버린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해법은 어렵지 않다. 우선은 주휴수당 문제이다. 주휴수당이 계산 자체가 복잡하고 이럴 거면 최저임금에 합치자는 이야기는 이미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게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러한 방안이 사회적으로 분출된 것은 2020년 청년유니온이 이를 주장하면서부터였다. 이미 그 전에도 최저임금 관련 설문조사를 하다보면 흔히 의견으로 나오는 내용이었다.
경영계는 주휴수당을 한국에만 있는 제도라고 공격하며 폐지해야 한다며, 사실상 최저임금 16.7% 삭감을 주장해왔다. 노동계는 조금이라도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 이러한 개혁의 필요성을 외면해왔다. 하지만 늘어만 가는 초단시간 노동자들을 이제는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국회는 초단시간 노동자에 대한 차별 해소 입법을 진행하고, 최저임금위원회는 주휴수당을 최저임금에 포함시켜서 금액 수준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이는 노사 한쪽이 일방적인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체계 단순화는 노사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 초단시간 고용이 가장 빈번한 편의점과 같은 특정 업종에서의 고용 문제는 일자리 안정자금(영세 사업장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정부에서 사업주에 일부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사업)처럼 정책을 통해서 점진적 제도 적응을 유도할 수 있다. 주휴수당을 최저임금에 합치는 기본급화가 이루어지면, 2022년도 기준 시간당 1만1000원은 줘야 최저임금을 지키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므로, 플랫폼 노동과 같이 노동법 밖에 있는 노동자들의 간접적인 임금 상승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사회보험료 부담 방식, 법인세 방식으로
초단시간 노동자에겐 주휴수당뿐만 아니라 사회보험 적용도 필요하다. 물론 지금도 3개월 이상 고용하는 경우에는 고용보험은 가입하도록 되어 있다. 완전히 가입의무를 부여해도 사회보험 미가입이 많은데, 3개월 이상 고용이라는 단서를 달면 당연히 가입시켜줄 리가 없다. 소득 중심 체계로 전환하는 전국민고용보험 논의와 맞물려서, 고용보험의 가입범위에 모든 초단시간 노동자를 포괄하도록 하여야 한다.
사회보험료 부담방식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회보험의 취지에는 노사가 함께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꼭 절반씩 똑같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사회보험료 부담방식을 법인세 기반으로, 즉 이익 기준으로 바꾸는 데에 관한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고용은 영세 사업주가 하고 중소기업이 하면서, 이익은 대기업이 독식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비용절감 명목으로 고용이 큰 영역을 무분별하게 외주화 하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대다수의 저임금 노동자가 고용되어 있는 영세 사업장에서 사회보험 가입을 외면하는 현실을 바꿀 수 있다. 사회보험이 정말 필요한, 정말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안전망이 될 수 있도록 사용자 부담 체계도 바꿔야만 한다.
각자도생과 투기의 시대를 넘어, 다시 노동으로
저임금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대안을 원하는 목소리가 지난 대선에서는 '최저임금 1만원'에 모였었다. '최저임금'은 어느새 금기어가 되어버렸고, 지난 3년 동안 정치의 언어는 오직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없앤 원흉으로 만들어 왔다. 그 이후 한국 사회의 소득 격차와 저임금 노동에 대한 논의는 정치 영역에서 실종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가 '투자를 통해 돈을 버는 세상'을 말하는 디스토피아에 도착했다.
최근 주식시장에서 52조가 증발했다고 하고, 비트코인 가격이 떨어져서 하루 만에 155조 원이 사라졌다는 뉴스를 쉽게 볼 수 있다. 그 155조 원이 마치 내 것이 될 수 있었는데 사라진 것처럼 사람들은 말한다. 어쩌면 기계가 모든 노동을 대체하는 세상은 모두가 도박하듯이 투기에 몰두하는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미래를 피하려면, 노동을 어떻게 구성할지, 저임금 노동은 왜 늘어나는지,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하고 타협할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대선 후보들은 한국 사회의 저임금 노동을, 소득격차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이야기해야만 한다.
그 시작으로 일터가 쪼개지도록 강제하는 제도를 바꾸고, 사회적 안전망 강화를 어떻게 분담할지 논의해야 한다. 2022년을 살고 있는 지금 우리에겐 불안정 노동의 현실에 맞설 정치가 절실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영민씨는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으로, 2018~2019년에는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