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스트레스의 원인은 다양하다. 음식 준비, 선물 준비, 막히는 교통편, 친인척 관계 속 감정노동 등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부모님이 오는 우리 집은 '집 청소' 스트레스가 가장 컸다. 시부모님은 별말씀 없는데도,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내 욕심에 며칠을 청소만 하며 혼자 버거워했다.
하지만 이번 설 명절을 앞두고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작년부터 지난 6개월간 꾸준히 해온 '물건 비우기' 덕분에 집이 여러모로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물건을 눈에 보이지 않게 감추려니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게다.
정리수납 컨설턴트 스도 마사코는 책 <물건을 절대 바닥에 두지 않는다>에서 "정리가 서툰 사람을 두고 흔히 '정리를 못 하니까 집이 지저분한 거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집이 지저분해서 '정리 못 하는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는다"(7쪽)라고 했다. 나도 그동안 나는 정리를 왜 잘 못 할까 늘 자책만 했는데,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 문제였다.
미니멀리스트가 되지 않아도
작가는 무조건 버리는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지 않는다. 하지만 깨끗한 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납할 수 있을 만큼만 물건을 남기거나 정리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하기'보다 '~하지 않기'를 정리법으로 권한다. '~ 하기'는 '해야 한다'라는 압박감을 받기 쉽지만 '이것만큼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몇 개의 규칙을 세우면, 가벼운 마음으로 정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하지 않기' 첫 번째 규칙은 '물건을 절대 바닥에 두지 않는다'이다. 수납공간이 가득 차 물건이 바닥에 놓이는 순간 지저분해진다. 물건의 자리를 정해놓으면 바닥에 놓을 일이 없다. 물건을 사기 전에 어디에 둘지를 먼저 생각하면 소비도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바닥에 놓인 물건이 없으면, 정리와 청소가 수월해진다.
내가 서점에서 이 책에 손이 간 것도 책 제목에서 2년째 놀고 있는 우리 집 로봇 청소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처음엔 로봇 청소기가 알아서 돌아다니며 청소해 기특했지만, 가끔 구석에 처박혀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때가 있다. 바닥 물건을 미리 치워 놓아야 하니 귀찮아서 점점 쓰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청소기가 아니라 거실을 차지하고 있는 가구와 물건이었구나! 외출할 때 들었던 가방, 장바구니, 택배 상자, 갠 빨래통 등등 바닥의 물건을 두지 않고 바로 정리한다. 덕분에 2년 만에 기지개를 켠 로봇 청소기는 요즘 거실을 잘 돌아다닌다.
책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다. 작가는 매일 닦아도 물때가 끼는 식기 건조대와 철제 받침 때문에 힘들어, 식기 건조대와 보조 선반을 치워보기로 한다. 그 대신 극세사 행주를 깔아 사용했더니 집안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물론 당연하게 여겼던 물건을 치울 때는 많이 불편할까 고민하고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릇은 꼭 식기 건조대에 말려야 할까?'라며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다.
나는 '글을 쓸 때 모든 일을 당연하게 바라보지 말자'라며 강의까지 해놓고, 왜 정리수납에는 적용할 생각을 못했을까? 나 역시 2단 식기 건조대와 받침의 물때가 항상 짐스러웠다. 베이킹소다나 구연산 등을 뿌려 매일 닦아도 금방 물때가 끼었다. 하지만 우리 집은 식구가 많아서 행주로 대치하기엔 힘들었다. '그럼, 식기세척기를 건조대로 이용해보자!'
가끔 쓴 그릇을 채워 세척기를 돌리면 물때도 자연스럽게 청소가 돼서 좋다. 식기 건조대만 치워도 주방이 훨씬 시원해졌다. 건조 공간이 많으면 자꾸 그릇을 쌓아놓고 선반에서 꺼내쓰게 된다. 건조 공간이 없으니 마르면 바로 정리하고, 선반을 채웠던 그릇도 더 비워낼 수 있었다.
물건에도 '제때'가 있다
책에서 제시한 46가지 하지 않기 규칙 중에 '정리를 위한 수납 용품 사지 않기'는 지난 6개월간 비우기를 하면서 몸소 체험한 것이다. 예전에 정리함만 있으면 깔끔하게 수납될 줄 알았다. 플라스틱, 부직포, 종이 등등 다양한 재질의 수납 용품을 사들였다.
문제는 물건의 개수였는데, 나는 '안' 쓰는 물건을 '잘' 정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잠깐 정리되었다가 또다시 정리해야 하는 정리의 굴레 속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지난 6개월간 물건을 정리하니, 빈 수납 용품이 많이 나와서 오히려 골칫거리다.
물론 지금도 유명 살림 블로거들이 같은 브랜드 정리함으로 통일해서 보기 좋게 수납해놓거나, 같은 용기에 담은 양념통, 같은 용기에 소분한 냉동실 등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용기만 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은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수납보다는 정리다. 이제는 어떤 용기에 넣느냐보다 냉동고에 넣는 음식을 줄이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이번 남은 명절 음식도 예전 같으면 상하지 않기 위해서라며 일단 냉동시키고 봤지만, 올해는 남은 갈비찜에 고춧가루와 청양고추를 넣고 매운 갈비찜으로 바꾸거나 남은 잡채에 칼로리가 적은 곤약밥을 넣어 볶음밥을 만드는 등 바로바로 먹었다. 냉동실에는 녹두전 3장만 들어갔다.
올해 추석은 9월! 앞으로 6개월간 계속해서 잘 비워보려고 한다. "물건에는 식품처럼 유통기한, 즉 '제때'가 있다. 제때를 넘긴 물건을 꺼내 쓸 일은 거의 없다"(22쪽)는 작가의 말을 새겨 '제때'를 지혜롭게 판단해 물건을 비워야겠다. 분명 더 가벼운 마음으로 추석 명절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