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드론의 궤적으로 허공에 쓴 글씨 ‘얼룩’
드론의 궤적으로 허공에 쓴 글씨 ‘얼룩’ ⓒ 이뿌리


"언어는 상징체계를 구사하는 인간이 피워낸 꽃이다. 그리고 그것을 좀 더 먼 시간들 속에 피워낼 수 있게 하는 씨앗과 산들바람이 '씀'의 흔적이 아닐까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농경사회를 '크로마(chroma)'라는 개념으로 상징화하고, 다양한 매체를 거쳐 온 씀의 모습들을 통해 미래의 일상적인 씀을 상상한다."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오는 3월 11일까지 열리는 <쓰지 않은 글씨 전(展)>에 작가 특유의 독특한 작품을 선보인 이뿌리(31·본명 이근요) 작가가 '언어'와 '씀'을 규정한 전시회 작가노트의 일부다.

허공 글쓰기, 씨앗·산들바람의 '씀' 포착

전북 순창군 풍산면 용내리가 고향으로 순창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미디어 아티스트 이뿌리 작가는 전시회에 영상작품 '크로마 프리퀄(chroma prequel)'을 포함해 관객들의 동선으로 글씨를 쓰는 '인터랙션 작품'을 출품했다. '크로마 프리퀄'은 "1채널 파노라마 비디오, 1400x400(cm), 인터랙션 시스템, 7분24초" 작품이다.

"전시회 천장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전시장을 오가는 관객들의 동선을 실시간으로 캡처하고, 움직임이 곧 글씨가 되는 인터랙션 설치를 통해 '삶을 걷는 사람'과 '글씨를 쓰는 사람'이 맞닿아 있는 어떤 태동에 대하여 질문하고자 했다."

이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상호작용으로 또 다른 글씨를 만들어내는 '인터랙션 작품'을 이렇게 설명했다. 글씨를 쓰는 사람은 작가 본인을 말하고, 삶을 걷는 사람은 관람객을 일컫는다. 작가는 '작품과 관람객의 소통'을 통해 또 다른 글씨를 만들어낸다.
 
 움직임이 곧 글씨가 되는 인터랙션을 설치한 ‘쓰지 않은 글씨 전(展)’
움직임이 곧 글씨가 되는 인터랙션을 설치한 ‘쓰지 않은 글씨 전(展)’ ⓒ 이뿌리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는 '허공 글쓰기와 존재탐구 : 이뿌리 행위 작업' 글에서 이뿌리 작가를 이렇게 평했다.

"자연공간을 바탕삼아 물리적 조건이나 규칙에 매이지 않는 행위의 흔적을 글씨로 담아내기로 했다. '책상에서 걸어 나온 무법의 서예'라 이름한 이 작업은 모필과 먹 대신 광섬유뭉치나 갈대뭉치에 반사되는 빛의 작용을 드론 카메라로 기록하면서 허공에 휘젓는 행위의 궤적을 글씨로 삼았다. 때로는 드론의 궤적으로 드넓은 하늘에 커다란 글씨를 쓰기도 했다."

영상매체를 화선지 삼아 쓴 글씨

이뿌리 작가는 지난 18일과 19일 <열린순창>과 전화 통화에서 "제가 하는 작품은 '과정으로의 글씨'라고 할 수 있다"면서 "활자화된 문자 형태 대신 영상매체를 화선지 삼아 글씨를 쓰는 게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드론으로 허공에 글씨를 쓰는 작품에 대해서 "관객이 허공을 보면 드론으로 쓴 글씨가 보이지 않지만, 현장에 설치한 영상매체를 통해서 보면 드론의 궤적으로 쓴 글씨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연을 배경으로 이뿌리 작가가 자신의 움직임으로 쓴 글씨 ‘겨울’
자연을 배경으로 이뿌리 작가가 자신의 움직임으로 쓴 글씨 ‘겨울’ ⓒ 이뿌리
   
이 작가는 "대학교 은사님이신 신영복 교수님께 정말 많은 감명과 영감을 받았다"면서 "대학 졸업 후 2019년 예술의 전당 공모전에 '글씨 미디어아트'가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그 무렵 고향 순창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 작가에게 그의 작품과 같거나 비슷한 작품을 하는 예술가가 또 있는지 물었다. 이 작가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답을 했다.

"제가 3년 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어요. 저처럼 허공에 글씨를 쓰거나 자연을 배경으로 '씀'을 구현하는 작품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어요."

고향 순창에서 활동 "혹시 포획된 것 아닌가"

이 작가의 작품 중에는 '거미집'을 통째로 들어내 거미줄 위에 빨간색 채색을 한 독특한 작품이 있다. 이 작가는 거미줄 작품을 설명하면서 다소 복잡한 속내를 전했다.

"순창으로 돌아오면서 저는 고향에 정착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거미줄을 보니까 제 처지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거미줄은 채집과 포획, 함정 같은 의미가 있잖아요. 저의 상황과 비교해 보니까 제가 순창에 정착한 게 아니고 혹시 순창에 포획된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거미줄을 채집해 빨간색을 입힌 작품
거미줄을 채집해 빨간색을 입힌 작품 ⓒ 이뿌리
 
작은 시골 농촌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 생각처럼 여의치 않다는 고백으로 읽혔다.

이 작가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디지털콘텐츠와 미디어를 독학으로 공부했다. 신영복 교수 등의 영향을 받아 인문학을 탐구하며 서예도 익혔다.

광주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미디어아트 레지던시' 9기·10기 입주 작가에 선정되기도 했던 이 작가는 현재 순창군에 적을 둔 '미디어 한길' 대표를 맡고 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작품 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이뿌리 작가
아무도 가보지 않은 작품 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이뿌리 작가 ⓒ 이뿌리

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2월 23일자에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이뿌리#이근요#미디어 아티스트#크로마#인터랙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북 순창군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