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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왕국박물관 이현만 대표
 기차왕국박물관 이현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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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기차를 실제 기차와 똑같이 만드는 것을 평생 천직으로 해 온 사람이 있다. 그는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자로 6번길 112-7(장수동 793-11)에서 '기차왕국박물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이현만(65) 대표다.

보통 사람들은 모형기차라고 하면 장난감 기차를 제일 먼저 떠올리겠지만, 이 대표가 만든 모형기차는 0.1미리의 오차도 없이 실제 기차와 똑깥이 만든 기차다. 그래서 그는 모형기차를 구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디테일의 제왕'이라 불린다.

1973년 2월, 장난감 기차 만드는 회사에 입사한 이 대표는, 그 회사에서 10여 년 간 근무를 하다가 혼자서도 충분히 기차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퇴사했다. 그는 32살 되던 해에 부평 성모병원 앞에서 10평 정도 되는 작은 가계를 얻고 기계를 장만해서 '로스트왁스주조'를 만들었고, 그 제품을 일 년여 간 다녔던 회사에 납품했다. 그러던 중 이 대표는 모형기차를 수입하기 위해 미국에서 바이어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미국 '파인아트모델'과의 인연​

"바이어가 묵고 있던 모 호텔 9층에 제가 만든 보트를 가지고 무조건 찾아갔어요. 당시 보여줄게 그 보트밖에는 없었거든요. 바이어를 만나서 모형기차를 다 만들 줄 아니까 오더를 좀 달라고 했어요. 그때 바이어가 저에게 요청한 것이 'Flat Car'​(장척의 대형화물수송에 쓰이는 차량)였고 그건 테스트용이었죠. 저는 바로 만들어서 보냈고, 그 후에 M1-A기차 145대를 주문받았어요."​

그때 그의 나이 34살, 독립한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그렇게 이 대표와 인연을 맺게 된 회사가 '파인아트모델'​(모형기차를 수입하던 회사)이다. 그 후 그는 이 회사의 기차를 거의 다 만들었다. 그는 누구보다 모형기차를 잘 만드는 사람으로 세계 바이어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미국 '파인아트모델'을 주 거래처로 하여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스위스 등 여러 나라에 그의 기차를 수출했다.

도면 공부를 따로 하지 않은 이 대표는 기차의 원리를 공부하기 위해 백과사전을 늘 끼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차가 전시된 세계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서 일일이 사진을 찍어가면서 공부를 했다.

"박물관을 지금까지 총 50회 이상 다녔어요. 영국에 가서 증기기관차를 리모델링할 때는 그 회사에 직접 가서 물어봤죠. 처음 그 영국 증기기관차를 만들었을 때 많이 놀라워했어요. 도면 한 장 가지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만들었냐고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 대표는 웬만한 기차는 보기만 해도 그 원리를 알 수 있게 됐다.
 
 이현만 대표가 '파인아트모델'로부터 처음 주문 받은 M1-A기차. 기계를 전혀 쓰지 않고 오로지 수작업으로만 완성했다.
 이현만 대표가 "파인아트모델"로부터 처음 주문 받은 M1-A기차. 기계를 전혀 쓰지 않고 오로지 수작업으로만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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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대륙 횡단열차 '빅보이'. 16분의 1크기로 5년 동안 만든 황동기차. 진열장 밑에 거울을 설치해 기차의 밑 부분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미대륙 횡단열차 "빅보이". 16분의 1크기로 5년 동안 만든 황동기차. 진열장 밑에 거울을 설치해 기차의 밑 부분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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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끼는 기차는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빅보이'

이 대표는 모든 기차를 장인정신으로 만들었다. 그가 만든 기차들의 디테일이 그것을 증명한다.

수많은 기차들 중 특히 이 대표가 스스로 걸작으로 꼽는 기차는 미대륙 횡단 열차 '빅보이(Big Boy)​'다. 16분의 1스케일로 만든 이 기차는 무게 200kg, 길이 255cm로 전부 황동으로 만들었다. 동력이 앞뒤로 두 개가 있어서, 이 동력을 연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이 특히 힘들었다는 빅보이 기차는 부품 하나하나를 일일이 깎아서 무려 5년 동안 만든 걸작 중의 걸작이다.

빅보이는 미국 ALCO에서 개발한 말렛 타입(관절형 기관차의 유형 중 하나)의 초대형 텐더 증기 기관차로, 상업 운전 역사상 최대 크기의 유니온 퍼시픽 1세대 괴물 기관차로 1941년부터 운행을 시작해 18년 동안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4년 전 미국 철도회사 '유니온 퍼시픽'에서 빅보이를 박물관 전시를 위해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었어요. 또 얼마 전엔 제가 거래하던 '콕스콤파니'에서 '우주왕복선'과 빅보이를 팔라고 했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빅보이는 너무 힘들어서 딱 한 대밖에 만들지 않았는데, 이 기차의 가격을 어떻게 책정하겠어요."​

그의 기차는 자세히 보면 볼수록 재미와 감동을 더한다. 숨어 있는 1미리까지 살려낸 디테일함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기차 안을 수리하기 위해 경첩으로 문을 만든 건데 안을 보면 파이프라인이 많이 보이죠.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와 위로 올라가기 편하게 발판까지 실제와 똑같이 만들어 놓은 거예요. 이 발판을 밟고 기차 위로 올라가면 되죠."

전시장에 진열돼 있는 이 황동 빅보이는 기차 밑에 거울을 달아놓아 모든 면을 편안하게 자세히 살펴 볼 수가 있다.

1800년대 제작 목탄 기관차부터 전기 기관차까지
 
 스위스 Ae814 기차. 소비자 가격 2400만 원을 호가 한다는 스위스 Ae8/14 기차는 창문이 모두 열리는 건 물론이고 판토그래프(외부 고압의 전선에서 흐르는 전기에너지를 차량에 공급하는 장치)도 조종기에서 직접 작동이 되도록 만들었다.
 스위스 Ae814 기차. 소비자 가격 2400만 원을 호가 한다는 스위스 Ae8/14 기차는 창문이 모두 열리는 건 물론이고 판토그래프(외부 고압의 전선에서 흐르는 전기에너지를 차량에 공급하는 장치)도 조종기에서 직접 작동이 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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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0년대 영국에서 처음 개발한 목탄 기관차 'John Bull'로 기차의 원조라 할 수 있다.
 1800년대 영국에서 처음 개발한 목탄 기관차 "John Bull"로 기차의 원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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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만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기차왕국 박물관에는 지금까지 운행되었던 세계의 모든 기차가 진열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M1-A 기차는 37년 전 이 대표가 제일 처음 만든 작품으로, 기계를 전혀 쓰지 않고 오로지 수작업으로만 완성한 기차이기 때문에 그에겐 더욱 특별하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 가격 2400만 원을 호가 한다는 스위스 Ae8/14 기차는 창문이 모두 열리는 건 물론이고 판토그래프(외부 고압의 전선에서 흐르는 전기에너지를 차량에 공급하는 장치)도 조종기에서 직접 작동이 되도록 만들었다. 

존불(John Bull) 증기기관차는 1800년대 영국에서 처음 개발한 '목탄 기관차'​로 기차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나무를 불에 태워 동력을 얻었던 증기기관차부터, 본격적으로 철도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석탄을 연료로 하는 증기기관차, 1900년대 접어들어 디젤을 연료로 쓰기 시작한 증기기관차, 기차 몸통이 유연해지기 시작한 전기 기관차에 이르기까지 기차의 모든 역사가 그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그 기차가 무려 250여대에 이른다.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나르던 기차 외에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포를 장착해 옮기던 '도라'라는 기차도 재현돼 있다. 독일에서 건조한 1350t의 800mm 대포를 장착한 기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실제 크기의 32분의 1로 제작된 이 기차도 꼬박 1년을 걸려 만들었다.

"기차 두 대가 끌고 가야 하는 거대 대포라서 레일도 두 개로 돼 있어요. 실제 도라 대포는 레일과 포를 만드는 데만 1500여명이 동원됐을 만큼 어머어마한 크기예요."​

이 대표는 기차뿐만 아니라 모형트럭, 모형 중장비들도 많이 만들었다. 트럭의 타이어도 일일이 수작업으로 제작했고, 중장비의 궤도도 부드럽고 유연하게 굴러가도록 만들었으며, 서스펜션(노면의 충격이 차체나 탑승자에게 전달되지 않게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까지 달아놓는 디테일함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포를 장착해 옮기던 '도라' 기차. 앞에서 두 대의 기차가 '도라'를 끌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포를 장착해 옮기던 "도라" 기차. 앞에서 두 대의 기차가 "도라"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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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만 대표가 재현한 모형트럭 및 중장비들
 이현만 대표가 재현한 모형트럭 및 중장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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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열게 된 모형기차 박물관​

"저는 원가 개념이 없었어요. 돈은 벌고 싶었지만,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품질이 안 좋은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저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정말 미련했죠."​

하루에도 몇 번씩 손에 마비가 온다는 이 대표는 몸을 돌 볼 줄도, 이윤을 남길 생각도 하지 않고,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러다보니 기차를 만들면 만들수록 은행에 빚만 늘어갔고, 급기야 2015년에 들어서 기차 만들기를 그만둘까 고민도 했다.

이 대표는 고민 끝에 250여 대의 기차를 사람들에게 공개하기로 마음먹고, 지금의 모형기차 박물관을 열었다. 

"기차 박물관을 처음 열었을 때, 보는 사람마다 함성을 지르며 놀라워했어요.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몇 년이나 만들었는지 등 질문이 끊이질 않았어요. 그 모습을 보니 참 흐뭇하더라고요."​

박물관에 들어서면 다양하게 꾸며진 디오라마에 여러 종류의 기차들이 힘찬 기적소리를 울리며 철로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기차들과 함께 시선을 끄는 또 다른 작품은, 금방이라도 하늘 위로 솟아오를 것 같은 '우주왕복선'과 '파리 에펠탑'​이다. 황동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에펠탑 안에는 엘리베이터까지 재현되어 있으며, 우주왕복선은 30분마다 발사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우주왕복선 올라갈 때 뿜어지는 연기는 특허 받은 것인데요, 스모그 머신을 이용했어요."​

카운트다운에 맞추어서 많은 연기를 뿜으며 하늘로 발사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우주발사대 현장에 와 있는 듯하다. 이 대표는 이 우주왕복선을 만들기 위해서 종이로 만들어진 모형을 미국에서 직접 구입하고, 인터넷에서 우주왕복선 사진을 출력해서 도면화 시킨 후에 72분의 1 크기로 2년 이상 걸려서 만들었다.

박물관 안에서는 커피 배달도 특별하게 이루어진다. 박물관 밖에서 주문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 지정된 나라의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커피배달 전용기차가 정확하게 그 위치로 배달을 해준다.
 
 기차왕국박물관 전경
 기차왕국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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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왕복선이 발사되는 모습.
 우주왕복선이 발사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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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팔도 역을 그대로 재현, 기차가 돌게 만들 계획"

지금의 2층 박물관이 좁다는 생각을 늘 해오던 이 대표는, 기존의 커피 스탠드를 밖으로 빼고 난 후, 그 자리에 현재 한강 위에 놓여 있는 철교들을 그대로 재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6대의 기차가 동시에 다닐 수 있도록 철길과 도로를 만들어 자동차와 기차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중인데, 4개월 후쯤이면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층에는 우리나라 팔도를, 기차역을 중심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에 있다. 부산 광안대교를 출발하여 경주 불국사를 거치고 대전역을 지나 서울 한강교를 건너서 구 서울역에 도착. 이어서 춘천댐과 설악산을 통과하는 기찻길이다.

2019년 4월에 파노라마 전개도는 이미 나왔고, 본격적인 공사는 내년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지금 그의 작업실에서는 이곳에 진열될 불국사를 비롯하여 미륵사 9층탑과 노틀담성당 등이 그의 손끝에서 모양을 갖추어가고 있는 중이다.

"기왓장 모형을 프레스로 찍어낼 때 황동 두 장을 한꺼번에 넣고 찍었더니, 기왓장을 겹쳐 얹을 때 맞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국수 가락 뽑듯이 황동 한 장을 기계에 집어넣고 돌리는 방법을 고안하게 됐어요."​ 

이처럼 그는 매 순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의 작업실에는 기차를 만들 때 사용되는 기계들이 여러 대 있다. 그 중 이 대표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는 '59년생 기계' 핸드 조각기 주위에는 많은 양의 쇳가루가 수북이 쌓여 있다.

"이 기계에서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어요. 지금까지 만든 기차 바퀴 금형은 전부 이 기계를 이용하여 만들었어요."​

이 대표는 이 작업실에서 이 기계들과 함께 39년째 밤낮없이 수많은 기차들을 만들어왔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기차는 제 인생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하는데 저는 뭐를 남겨야 할까를 늘 고민하죠."​

유난히 거칠고 투박한 손을 지닌 이 대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손에 마비가 오지만, 그럼에도 매 순간 만드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1층 전시실에 전시할 미륵사 9층탑을 재현하는 중.
 1층 전시실에 전시할 미륵사 9층탑을 재현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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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만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기차왕국 박물관 전경
 이현만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기차왕국 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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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물건을 만들었다는 뿌듯함은 장인들을 끝없이 성장시키는 힘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냈을 때, 굉장한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느낀다. 그것은 마치 달리기하는 사람들이 마약에 취한 듯한 기분을 느낀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와 비슷한 워커스 하이(Workers High)는 아닐까.

밤새우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 마약에 취한 것처럼 쉼 없이 49년 동안 노력하며 살아 온 그의 삶이, 이현만 대표를 '신의 손, 디테일의 제왕'​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며 모형기차 장인의 반열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그의 노력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글·사진 최시연 i-View 객원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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