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노동자, 시민들은 자본의 이익이 중심인 사회가 아니라, 상호 돌봄하며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소망하고 있지만, 현재 대선 국면에서는 상호 돌봄은 커녕 또 다시 성장 중심, 자본 중심의 경제를 구축하겠다는 공약들만 난무한다.
노동자도, 여성도 보이지 않는 대선을 앞두고 여성노동자회는 기획기사 <성평등노동 없는 대선, 여성노동자가 말한다>를 통해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7회의 기획 연재 기사를 통해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알리고,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대선 의제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자 한다.[편집자말] |
1981년생 A씨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무역 관련 업종에서 영업직으로 일했다. 2021년까지 단 한 차례 이직을 했고 동종업계 15년 경력직으로 직급은 과장이었다. 업계 특성상 남성들이 다수를 차지했고, 여성들은 일부에 불과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남성 중심적인 직장문화가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여직원들은 임신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거나, 출산전후휴가·육아휴직을 사용하더라도 복직 하지 않고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제가 했던 무역일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영작 간단히 하고, 서류는 한두 달만 배우면 할 수 있기 때문에 경력자나 관련학과를 안 나와도 되기 때문에 신입들을 많이 뽑아요. 그래서 굳이 출산휴가, 육아휴직 한 사람(경력자)을 복귀 시킬 이유가 없다고 했어요.
지난 2월 말 인터뷰를 진행한 그는 동종업계의 선배도 육아휴직을 사용했지만 복직은 못 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나라에서 돈이 나오니까 육아휴직은 보내 주지만 다시 복직 시켜줄 마음은 없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여직원들은 육아휴직 후 바로 퇴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육아휴직이라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육아휴직 후 퇴직이 수순... 관행이 되어버린 악습
A씨는 동종업계인 첫 번째 직장에서 일할 때 출산을 했다. 출산전후휴가는 법에 명시되어 있었으므로 당연히 사용할 수 있었지만, 출산전후휴가 기간 동안 A씨의 업무를 대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출산 후에도 재택근무로 50일간 일을 한 뒤 출산전후휴가 기간도 다 채우지 못한 채 복직했다. 당연히 육아휴직은 사용조차 할 수 없었다.
어린 아이를 친정 부모님께 맡기며 일터로 향했던 A씨.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지만 집과 회사가 멀어 오전 7시에 집에서 나와 밤 9시가 되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A씨의 남편도 근무시간이 길어 가사와 육아를 함께 하기는 어려웠다.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아이에겐 분리불안이 생겼고, 돌봄을 전담해주시던 친정 부모님 또한 건강이 좋지 못한 상황이라 계속 도움을 받기는 어려웠다고 했다.
회사에서도 인정받으며 일했기에 퇴사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회사에서 퇴사보다는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줘서 1년 동안 하루에 5시간 근무하게 되었어요.
당시에도 육아기근로시간단축제도가 시행되고 있었지만, 회사도 A씨도 잘 몰랐다고 했다. 근무시간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급여도 줄었다.
무역 관련 영업을 하다 보니 거래처가 외국기업이었어요. 단축근무를 하며 2시쯤 퇴근을 했는데 그 시간이 제가 담당했던 나라의 출근 시간이라서 업무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제가 했던 일은 자연스럽게 다른 직원들이 나눠 맡게 되었어요. 과장이라는 직급은 있었지만 근무시간이 줄어들게 되면서 중요한 업무나 결정에서 빠지게 되었어요. 선을 그어놓은 채 일을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줄어든 근무시간에 맞춰 일을 끝내기 위해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일했지만 회사 내에서 A씨의 자리는 점점 작아졌다. 사장의 무시나 업무배제가 느껴질 때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동안의 경력과 생계에 대한 부담으로 선뜻 퇴사를 선택하기도 어려웠다.
결코 선택이 아닌 선택
A씨는 2020년 3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회사에 육아휴직을 신청했고 1년동안 육아에 전념할 수 있었다. 회사도 A씨의 빈자리에 대체인력을 채용해 메워나가고 있었다. 육아휴직이 끝날 무렵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떠들썩해졌다.
육아휴직이 끝나기 전에 사장님께 연락이 왔어요. 코로나19로 인해 회사 일도 줄었는데, 조금 더 쉬면 안 되겠냐고 했어요. 사실 코로나19로 인해 복직을 머뭇거리고 있기도 했어요.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은 했지만 등교를 하지 못하고,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어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A씨는 육아휴직이 끝나자 자연스럽게 퇴사를 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회사에서 좋은 말로 사직을 권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오전 7시에 집을 나가서 밤 9시가 되어야 집에 들어올 수 있는 삶의 반복. 아이가 아프거나, 재난·위기 상황에 학교는 멈춰도 직장은 멈출 수 없었기에 워킹맘에서 전업맘이 된 그는 잠시 멈춤하며 돌봄에 집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에 대한 간절함도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는 저출생 대책이라면서 영아수당이나 출산축하금, 첫만남꾸러미제도 등을 만들고 있다. 이런 저런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지만 정작 왜 이렇게 저출생이 심각할까 근본적으로 생각을 해봐야 한다. 모든 대책이 개인에게 부담을 지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특히 엄마에게 짐 지우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여성노동자에게 필요한 건 배려가 아닌 당연한 권리
A씨는 말한다. 분명히 과거보다는 아동수당, 양육수당 등 경제적인 지원도 많고 어린이집 무상보육, 아이돌보미, 초등돌봄교실 등 제도도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과거보다 좋아졌다는 것이지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다. 어린이집이건, 아이돌봄서비스건, 초등돌봄교실이건 아직도 선별을 하고 대기를 하거나 탈락을 하고 개인이 부담을 해야 하고 주변의 눈치를 봐야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여성은 직장도 다니지만 가정으로 돌아가면 가사일, 육아, 돌봄 등을 다 도맡아 해야 하는 게 현실이에요. 일도 하고 가정도 아이도 돌봐야 하는 여성들의 고충을 모르니까 있는 제도도 못 쓰게 하거나 쓰기 어렵게 만들거나 퇴사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 업계에서 여성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근로조건들부터 개선되어야 해요. 아이가 아플 때나, 언제든 눈치 안 보고 연차 사용이 가능하면 좋겠어요. 또한 출산전후휴가, 육아휴직도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현재도 아이돌봄서비스가 있지만 꼭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신청자가 많아서 그런지, 대기기간도 생각보다 길었어요. 등하원 시간대에 더 많은 인력이 배치되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A씨의 이야기는 제도가 있으나 사용하기 어려운 현실, 코로나 재난으로 인해 돌발적으로 생기는 돌봄의 빈틈을 당연히 여성에게 메우라고 요구하는 문제, 여성의 노동을 소모품처럼 사용하는 관행, 남성의 돌봄권 박탈 등의 구조적 문제가 모두 결부되어 있다. 출산전후휴가, 육아휴직, 육아기근로시간단축은 회사의 배려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로 보장받아야 한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보장된 제도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 권리는 양육자 모두의 보편적 권리가 되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은 육아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직장으로 갈 수 있지만 남성은 직장에만 전념해야 하는 구조이다. 실질적으로 함께 생계를 부양하지만 남성이 생계부양자, 여성이 돌봄전담자로 규정지어진 사회에서 돌봄은 여성의 몫으로만 부과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돌봄을 나누는 일이다. 여성에게 돌봄이 전담된 구조는 여성이 일을 지속할 수 없게 만든다. 남성의 육아휴직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직은 대기업이나 공무원 중의 일부만이 사용하고 있다. 남성의 돌봄권이 보장되는 환경을 만들려면, 우선 성평등한 직장문화가 갖춰져야 한다. 더불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개개인의 삶이 보장되는 일터를 만드는 데 사회가 합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