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어딘가 남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서른에야 ADHD라는 병을 처음 알았고, 서른여덟에 성인 ADHD 확진을 받았습니다. 실체를 모르는 병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사람들 각자가 품고 사는 보이지 않는 아픔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거친 후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찾은 지금, 저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보이지 않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분들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손을 흔들어 봅니다.[기자말] |
성인ADHD를 가진 사람들에게 '가족'은 공통된 화두다.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이런 고민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검사 비용이 필요한데 부모님께 밝혀야 할까' '미성년자인데 부모님이 병원에 못 가게 하신다' '형제도 ADHD인 것 같은데 부모님을 설득하고 싶다' 등등.
고민되지 않을 수 없다. "혼자서 힘들었겠다"고 위로하는 부모님도 간혹 계시지만, 대부분은 의지박약에 핑계를 댄다거나 의학계의 상술에 넘어갔다 여기고, 정신병 혐오 발언을 하거나 윽박을 지르는 경우도 있다. 설령 이해받더라도 부모님이 상심과 자책에 빠지진 않을까 걱정스러운 게 당사자들의 마음이다. 그래서 수년째 숨겨 왔고 앞으로도 비밀로 하겠다는 이들도 있다.
부모님 세대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이렇다. 자식이 '정신병원'에 다녀야겠다고 하는데, 증상이라는 것들이 집중이 안 된다, 실수가 많다, 일을 잘 못 한다 따위다. 멀쩡히 지내다 어른이 된 것 같은데 갑자기 그게 아니었단다. 웬만큼 열려 있지 않고선 곧바로 믿기 어려울 거다.
내 경우도 비슷했다. 서른 넘어 ADHD란 말을 접했을 때, 괴로움의 이유를 찾은 기쁨에 넘쳐 어머니께 소식을 전했다. 어머니는 농담처럼 넘기셨다. "넌 그렇게 환자가 되고 싶냐?" 오빠에겐 작년에야 말을 꺼냈는데 '뭔 소리. 그런 사람 많음'이라는 명쾌한(?) 답장을 받았다. 가족은 가까운 듯해도, 서로의 가장 결정적인 고통은 쉽게 지나치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내가 왜 이럴까
병을 인정받지 못하는 ADHD인은 가족 대신 스스로의 지원자가 되어야 하고, 가족들에게 병을 이해시키는 교육자 역할까지 맡기 쉽다. 때로는 취업이나 퇴사 문제에서, 때로는 비혼을 택하거나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질병서사를 꺼내들어야 한다. ADHD와 공존질환의 무게를 혼자 버티는 동시에, 병 자체뿐 아니라 이 병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이해시키는 것까지 당사자의 몫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나의 경우, 부모님은 완벽주의 성향과 통제욕구가 강하셨다. 하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나사가 빠져 있다. 밥 먹듯 부수고, 잃어버리고, 다치고, 지각하는 나를 부모님이 얼마나 바꿔주고 싶으셨겠는가. 그러나 이 조합은 위험하다.
부모가 자주 개입할수록 자식의 문제해결능력은 떨어지고, 그럴수록 부모는 자기 역할에 책임감을 갖는다. 일상을 나누려 꺼낸 얘기에 매번 옳은 것,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반응이 돌아오면, 아이는 진짜 생각과 감정을 숨기게 되고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쌓는다.
몇 년 전부터 가족들의 말 한마디에도 며칠간 가슴을 쳤다. 벽에 머리를 들이받기도 했다. 다른 지인들과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왜 이럴까 싶었다. 요청하지 않은 조언을 받을 때, 누군가 습관적으로 날 걱정하거나 가르칠 때. 순전히 내 낮은 자기효능감이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심하게 불안해지고 분노가 올라오는 걸 어쩌지 못했다. 그건 '넌 부족한 사람이니까 누군가 채워줘야 해'라는 암시가 되어 평생 나를 어엿하게 살아갈 수 없는 사람으로 묶어두는 것만 같았다.
ADHD를 가진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는 ADHD아동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자존감을 타고 납니다. 뭉개지만 않으면 돼요." 아이의 관심사에 맞장구 쳐주고 긍정적 메시지를 주는 것이 자존감의 발판이 되며, 좀 내버려 둔다는 마음으로 키우는 게 좋다는 설명이다.
죄책감은 이중의 괴로움이 된다. 성인이 되어도 지속되는 과도한 잔소리에 저항할 때, 자식은 자신이 '나쁜 아이'라고 느낀다. "부모는 다 그래"라는 내리사랑의 고정관념과 "날 위한 건데"라는 효의 강박 사이에서, 자식은 자식이 되기 위해 자신을 잃는다. 남은 삶의 가장 중요한 밑천인 정서적 안정감, 자율성, 주도성을 잃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 아버지의 인생을 연민했다. 나는 불화가 심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내가 어떤 영향을 받는 줄도 몰랐었다. 부모님 삶에 뚫린 구멍을 내가 조금이라도 메우고 싶었고, 자녀에게 도움이 되어 부모로서 얻는 존재감을 지켜드리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심리상담에서 선생님이 말했다. "거꾸로 됐네요. 아이가 어른을 보살피려고 한 것 같잖아요." '손 많이 가는, 나잇값 못하는 어른아이'라는 생각에 항상 부끄러웠는데, 나는 의존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내 힘만으로 나에 대한 믿음을 키우기 어려워 주변의 도움을 받는다. 다른 평가 없이 '그렇구나' '그랬구나'라고 말해달라 부탁하기도 했고, 얼마 전엔 친구에게 이런 말도 해 봤다.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말이 너무 듣고 싶은데, 넌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친구는 내 뜻을 정확히 알아듣고 공들여 말해 주었다.
지지와 수용의 과정
자식은 부모로부터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모두 흡수하며 자란다. 성인이 된 자식은 긍정적 영향을 이용해 부정적 영향을 스스로 지워갈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을 어느 정도 해냈을 때 진정 독립된 존재가 된다. 부정적 영향을 극복하려 애쓰고 있는데 계속 같은 영향이 쌓여갈 때는, 한 개인으로서 사는 데 쓸 에너지가 위태해진다.
죄책감을 무릅쓰고 변화를 시도하는 건 자기 정체성을 바로세우는 과정이다. 가능하다면 가족의 어떤 행동에 자신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갖는지 반복해서 전달해야 한다. 부모 자식의 관계가 10년간의 문제였다면 다시 10년은 조정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나는 정말로 10년 정도 걸렸다. 관계의 문제점을 수없이 호소하고도 그것이 가벼이 넘겨지고 잊히는 과정이 되풀이됐다.
지칠 대로 지쳤을 때, 그간 심리학 영상과 책을 통해 알게 된 것과 직접 느껴온 것을 A4 한 장으로 개괄해 어머니께 전송했다. 기대하진 않았는데 힘든 모습을 많이 보여서 그런지 잘 받아주셨고, 더 용기를 내 만화로 된 성인ADHD 안내서를 보내드릴 수 있었다. 문제 상황은 여전히 반복되곤 했지만, 부모님의 소통 방식도 조금씩 변했다(오늘 하루 집안 물건을 3개나 망가뜨렸지만 탓하지 않으셨다). 노력해주시는 데에 나도 감사를 표한다.
결정적으로 가족들이 병을 직시하게 된 건 이 연재를 하면서다. 부모님은 첫 연재기사를 읽고 "글로 보니 훨씬 이해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몰라줘서 미안하다며 날 안아주기까지 하셨으니, 성인ADHD인 중에서는 크게 복 받은 경우다.
삶의 서사는 이해를 끌어내는 힘이 있다. 만일 병과 관련해 소통이 꼭 필요하다면 한 사람으로서 ADHD를 겪어온 이야기를 정확한 정보와 함께 정리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읽지 않는 부모님들도 계시고 오히려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가족 문제에 정답이 있을 리 없고, 아직은 혼자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도 아쉬운 노릇이다. 하지만 진짜 혼자는 아니다. 사정은 달라도 비슷한 고민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알고 보면, 혼자가 아닌 우리
허무하게도 죄를 물을 대상이 없다. ADHD의 원인이 유전에 있다 해도 유전인자를 부모가 빚어낸 건 아니며, 우린 물려받지 '않은' 병도 많다. ADHD라는 병의 존재를 모르고 정신적 문제에 시야가 좁았던 것도 그들 탓은 아니다. 굳이 찾자면 삶과 시대의 속성이 죄일까.
그러나 그건 당신 탓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수고를 안다. 혼자서 감당한 것들이 독으로 쌓였지만 자체 해독하며 삶에 대한 면역을 키워온 과정을. 이제 우리에게는 자신을 지킬 힘이 있다.
부정적 자기인식을 갖기 쉬운 ADHD인에게 가까운 사람의 지지와 수용은 특히 중요하다. 까놓고 말해 보자. 사랑하는 건 사랑하는 거고, 힘든 건 힘든 거다. 고통인 줄도 모르고 마음을 다 갉아먹는 고통도 있는 법이다.
그 '가까운 사람'이 꼭 혈연일 필요도 없다. 어떤 분류를 떠나 우리 모두는, 날 더 나은 나로 만들려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곁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더 나은 내가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 연재 화 순서가 바뀌어 대인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몇 주 후에 다루게 되었습니다. 사과 말씀 드리며 양해를 부탁 드립니다.
* 브런치에도 연재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adhdwo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