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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 20주년을 맞이해 2007년 6월 9일 오후 성공회대성당 마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 신부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6월민주항쟁 20주년을 맞이해 2007년 6월 9일 오후 성공회대성당 마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 신부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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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이 8년여 만에 돌아왔을 때 한국은 흡사 유럽 중세기 신정국가와 같았다.

1969년 3선 개헌으로 장기집권의 길을 튼 박정희는 1972년 10월 친위쿠데타로 영구집권에 나서 1인 독재의 유신지배체제를 구축했다. 

김포에서 여의도로 들어오는데 곳곳에 헌병들이 총을 들고 서 있었다. 며칠 뒤 6.25 기념일에 학생들이 서울역에서 동대문운동장까지 반공 궐기 행진을 하는 모습은 당시 유럽과는 딴 세상이었다. 귀국한 지 한 달쯤 지나서 연희동성당 보좌신부로 발령받는다. 

나는 사제가 되었습니다. 단조로움 속에서 키워 왔던 꿈을 펼쳐야 합니다. 나는 첫 번째로 연희동 보좌신부로 임명되어 왔습니다. 이곳도 많이 변한 동네 중의 하나였습니다.

"신부님, 저쪽은 제2의 도둑촌입니다"
누가 일러 줍니다.

"말은 많이 하지 말고 주로 듣기만 하세요!"
또 다른 이가 귀띔해 줍니다.

"웃어른이나 전임자를 비방하는 분을 특히 조심하십시오!"
또 다른 가르침입니다. 나는 이론과 경험, 상아탑과 사회란 의미를 되씹으며 이 모든 말들을 새김질하고 있습니다. (주석 1)

그가 사제가 되고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발표한 <공범자>라는 글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그의 올곧은 비판 정신, 불의와 부정에 참지 못하는 정의감의 싹수가 이때부터 나타난다. 어느 날 모니카회에서 산정호수로 가을 소풍을 갔다. 당시 관광버스의 풍경대로 노래자랑, 특기 연습 등 흥겨운 시간이 진행될 즈음 경찰관의 손짓에 버스가 멈춰섰고 운전기사가 내리더니 경찰관 손에 500원을 쥐여주고 올라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가다가 보니 검문소가 눈에 띕니다. 헌병이 버스를 멈추게 하더니 옆에 있던 경찰관 한 명이 늠름한 자세로 지켜 섭니다. 운전사는 차를 세우고 뒤를 향해 한마디 합니다.

"누구 한 분 나가 보세요!"
뒤에 앉아 있던 내가 일어서서 나가려니 옆자리의 교우 한 분이 나를 잡고, 또 다른 이가 알려 줍니다.

"이럴 때는 신부님이 나가시면 안 돼요!"
이 사이에 벌써 한 분이 내려갔고, 종이 한 장이 그 손에 쥐어진 다음 올라왔습니다. (주석 2)

이는 당시 한국의 현실이다. 가는 곳마다, 관청마다 뇌물과 촌지 없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헌병대에서 군 복무를 할 때 봤던 군대의 비리가 사회에서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던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우리는 각자 짐을 들고, 상품 등 많은 짐은 어느 지게꾼 아저씨가 짊어졌습니다. 약 이삼십 분 올라가는데 단풍든 모습이 하나도 아름다워 보이질 않았습니다. 

지게꾼 아저씨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이렇게 한 짐을 나르는데 300원의 삯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 삯을 치르려고 하자 회계를 맡은 분이 안 된다고 하며 재빠르게 300원을 줬습니다. 이왕이면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버는 이분에게 500원을 다 주라고 말했습니다. 200원을 더 받은 이 지게꾼 아저씨는 진심으로 고마워했습니다. (주석 3)

나라에서 월급을 받은 검문소의 경찰관과 헌병이 차를 세우자 시민들은 알아서 그들에게 돈을 바쳤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위해 땀 흘리며 일하는 지게꾼에게는 더없이 박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그는 자신이 '공범자'라고 자처합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땀 흘려 버는 이 아저씨와 검문소의 경찰관, 거기에는 분명 격분을 자아내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회 구조에 대한 아무런 부질없는 격분, 그러나 이 격분을 꾸짖은 소리가 또 있습니다.

"신부님, 사회란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정말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나요? 강론대에 올라서면서 '사회'란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신자들에게 정말로 무엇을 외쳐야 하는지, 나는 생각해 봅니다. (주석 4)


주석
1> <공범자>, <사목>, 1974년 1월. <함세웅 신부 삶>, 253쪽, 제3기획, 1984. (이후 <삶> 표기) 
2> 앞과 같음.
3> 앞과 같음.
4> 앞과 같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함세웅, #함세웅신부, #정의의구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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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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