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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옥(86) 어르신 댁 안전손잡이 설치 전과 후.
이순옥(86) 어르신 댁 안전손잡이 설치 전과 후. ⓒ 최육상
 
"주민자치위원회 행복도우미 사업 시작을 알립니다. 제1호는 도치마을에서 시작합니다. 도치마을 최고령 김문자(93) 어르신 댁. 안전손잡이 달아드린다 하니 '곧 죽을 것인디 뭣 하러 다냐'고 하시더니, '다리에 힘이 없는데 달아놓으니 좋네' 하십니다."

전북 순창군 풍산면 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이훈도)가 면민들 집을 분주하게 오가며 봄을 활기차게 열어가고 있다. 지난달 30일 주민자치위원회 구준회 총무는 "올해 주요사업으로 주민들의 생활 불편 사항을 개선해주는 '행복도우미' 사업을 시작했다"며 관련 사진과 내용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왔다. 비가 새는 집 지붕을 수리하는 모습과 집 마루 앞쪽에 안전손잡이를 설치한 사진 등이 있었다.

주민들을 위한 '행복도우미'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 궁금해 지난 4월 1일 오전 11시 풍산면 향가로에 위치한 목원농원에서 이훈도 위원장, 기옥종 위원, 구준회 총무를 만났다. 농원 앞 향가로에 줄지어 이어진 벚꽃나무들은 쏟아지는 햇볕에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분홍 꽃망울을 살랑거렸다. 이훈도 위원장은 풍산면주민자치위원회의 내년 계획부터 담담하게 꺼냈다.

"풍산에는 여기 벚꽃길이 만들어져 있잖아요. 올해 사업계획을 잘 세우고 준비해서 내년에는 면민들과 함께 저기 위쪽 향가터널과 다리, 오토캠핑장, 야외무대를 활용하는 '풍산면벚꽃대축제'를 열려고 해요. 위원들이 100% 찬성했어요. 먹거리장터도 운영해서 주민들이 하루 정도는 여기 와서 놀고 즐기도록 할 계획이에요."

이 위원장은 "각 면단위에 거점 사업이 있는데 풍산도 내년 12월까지는 완공될 예정"이라며 "올해와 내년 20억 원씩 총 40억 원이 지원되는데, 거점사업에 맞춰서 내년 봄에 벚꽃대축제를 추진해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기옥종 위원은 "저희들이 주민자치위원장실을 개방해서 어려운 사람들이 항상 상담할 수 있는 상담소 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구준회 총무는 "목사님(기옥종 위원)께서 행복 도우미 사업을 처음 제안해 주셨다"며 풍산면주민자치위만의 특징을 꼽았다.

"기존 여러 사회단체들의 구제 사업들이 중복되는 게 많아요. 주민자치위원회에서는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목사님께서 벌써 두 어르신 댁에 안전손잡이를 달아주셨어요. 주민자치위원들이 솔선수범하며 봉사도 하고 지역에서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해결해 가는 게 자치의 의미인 거잖아요."

2008년 시작된 풍산면 주민자치위원회
  
 비가 새는 지붕을 수리하고 있는 기옥종 위원.
비가 새는 지붕을 수리하고 있는 기옥종 위원. ⓒ 최육상
 
풍산면 주민자치위원회는 지난 2008년 순창군내에서 6번째로 시작했다. 이훈도 위원장과 기옥종 위원의 인연은 그 때부터 맺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기 위원은 10여 년이 더 된 기억을 더듬었다.

"이훈도 위원장님이 그 때 두 번째로 위원장님을 하셨고 제가 총무였어요. 재활용품을 아무 데나 내버릴 때였어요. 저희가 재활용품을 모아 고물상에 팔아서 자금을 만들었어요. 또 풀베기 사업을 해서 800여만 원가량 기금도 마련했어요. 자금이 있어야 사업을 하잖아요. 불우이웃돕기도 하고. 그때 우리가 사업 계획서를 군청에 넣어서 사업을 딴 거죠. 이훈도 위원장님 때 자치회가 가장 활발했어요."

기 위원은 이 위원장 뒤를 이어 부위원장과 위원장도 차례대로 역임했다. 기 위원이 위원장직을 내려놓고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주민자치회 활동에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기 위원이 다시 총대를 멨다.

기 위원은 "풍산면민들께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면서 '우리 자치회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해서 이훈도 위원장님한테 제가 강권조로 다시 한 번 위원장직을 맡아달라고 요청드렸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단호하게 현실을 직시했다.

"'주민자치위원회'가 앞으로 '주민자치회'로 가는 시점이잖아요. 풍산에서 다른 면에 앞서 뭔가를 시도해보자고 월례회 때 위원 별로 돌아가면서 발표도 하고 여러 가지 문제점도 파악하고 좋은 의견도 수렴했어요. 굉장히 호응도도 높았어요. 제가 위원장이지만 회의를 할 때마다 놀라요. 위원님들이 아주 유능하신 분들이라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가지고 계세요. 제가 이전에도 위원장을 했지만, 그 때보다도 더 뭔가 앞서가는 기분, 굉장히 마음이 들뜬 기분이에요."

풍산면 주민자치위가 주력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행복도우미' 사업은 전에도 했던 일이다. 다만, 이전과는 달리 많은 사회단체들이 하지 않는 일들을 추진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간단한 집수리라든지 전기나 전등 문제, 50년 이상 돼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집에서 낙상 사고 방지를 위한 안전손잡이 설치 같은 작지만 의미 있는 일들을 추진하며 풀뿌리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진정한 주민자치위를 대비하고 있다. 주민들의 호응도 높단다.

침체돼 있던 주민자치위를 꾸려나가기 위해 이 위원장과 기 위원은 각각 100만 원씩을 선뜻 내놓았다. 200만 원을 종자돈 삼아 도치마을과 지내마을 순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기 위원은 "풍산면의 독거노인을 파악해보니까 123가구였다"며 "행복도우미 사업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니까 우선은 80세 이상 어르신 댁부터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손잡이 자재비는 1만 원이면 되고 설치는 제가 직접 하기 때문에 추가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며 웃었다. 이 위원장은 이 대목에서 기 위원을 추켜세웠다.

"어르신들 댁에 가 보면 지붕에 비가 새고 전기 누전도 되는데 방치돼 있어요. 우리 목사님이 집도 짓고 수리하고 아주 기술이 다양해요. 어르신 댁에 안전 손잡이를 달아드렸더니 아주 좋아하시죠. 대부분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잖아요. 보행차도 모시고. 노인들은 한 번 넘어지면 뼈가 부러져요. 전등이 떨어져도 그냥 어둡게 생활하다 넘어지면 또 뼈 부러지고 그렇잖아요.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행복도우미 사업이 참 중요한 일이에요."

매월 정기모임 갖고 주민자치시대 준비
 
 왼쪽부터 풍산면주민자치위원회 구준회 총무, 이훈도 위원장, 기옥종 위원.
왼쪽부터 풍산면주민자치위원회 구준회 총무, 이훈도 위원장, 기옥종 위원. ⓒ 최육상
 
풍산면 주민자치위원회는 본격적인 주민자치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매월 정기모임을 꾸려가고 있다. 위원들이 돌아가며 각자 맡은 분야에 대해 공부한 내용을 30분씩 발표하고 서로 토론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구 총무는 실무자로서 "우리 각자 위원들의 전문 역량을 길러내는 게 필요하다"면서 "앞으로 주민자치회로 전환이 되고 주민자치 시대가 되면 자치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포부를 전했다.

이 위원장은 "코로나다 뭐다 그 핑계 대고 일을 하지 않고 그냥 그 해를 넘긴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하며 "우리 풍산면에서 뭔가를 다시 한번 찾아보자, 그 핵심을 찾아서 우리가 하자,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주민자치회로 전환될 때를 미리 대비해 보자, 우리 활동의 핵심은 그곳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기 위원은 "우리가 가라앉은 불씨를 다시 한번 지펴서 행복도우미 사업처럼 조그만 일부터 시작하다 보면 앞으로 더 큰 것도 기대할 수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이 위원장은 의미심장한 말로 말을 맺었다.

"누가 뭐래도 가장 중요한 게 주민화합이에요. 순창군수 선거 앞두고 벌써부터 분열, 갈등이 벌어지잖아요. 풍산면은 다르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도와준 사람도 행복해. 도움받은 사람도 행복해. 행복도우미 사업은 주민화합이 첫 번째예요."

세 사람과의 대화는 1시간 30분이 넘도록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쉼 없이 이어졌다. 풍산면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과 순수한 열정, 패기가 그대로 전해져 왔다. 풍산면 주민자치회 카카오톡 단톡 방에는 이런 글이 올라와 있다.

"이순옥(86) 어르신 댁.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건물로 민속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집입니다. 2년 전에 마루에서 토방을 거쳐 마당에까지 떨어져 뼈가 부러져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마당에까지 떨어질 일 없다'고 하십니다."

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4월 13일자에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전북 순창#풍산면주민자치위원회#순창#이훈도#기옥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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