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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뭐니 뭐니 해도 벚꽃이 가장 화려하다. 큰 나무에 잎이 나기 전 연분홍의 봉오리가 맺히고 흐드러지게 필 땐 눈처럼 하얗다. 바람에 떨어질 때도 눈처럼 흩날리며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지고 바닥에 쌓이면 그것대로 참 예쁘다. 봄이면 떠오르는 노란 개나리도 얼마나 화려하고 따뜻한가!

보라색 제비꽃도 여러 해를 지내며 커진 꽃무더기는 너무도 소담스럽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자기를 마음껏 뽐내는 꽃이 있는가 하면 찾아보지 않으면 시기를 놓쳐 꽃이 피었는지조차 모르는 식물이 있다.

필자는 4월이 되면 항상 무덤가를 기웃거린다. 올해도 '꽃이 피었나', '얼마나 피었나' 궁금해하며 찾는 식물은 할미꽃이다. 강원도 영월 동강의 오묘한 분홍색 동강할미꽃은 절벽 바위틈에서 자라지만 우리가 아는 할미꽃은 무덤이라는 특이한 장소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털이 빽빽하게 나 모습이 특이한 자주색의 할미꽃
털이 빽빽하게 나 모습이 특이한 자주색의 할미꽃 ⓒ 용인시민신문

아래를 보며 피는 큰 자주색 꽃과 잘게 갈라진 잎, 털이 빽빽하게 난 모습이 참 특이하다. 할미꽃 전체를 덮고 있는 흰털을 보면 강아지 쓰다듬듯 만져주고 싶다. 눈에 띄게 피는 꽃이 아니라서 무덤가에 피어있는 할미꽃도 그냥 지나칠 수 있다. 발밑을 조심하며 사뿐사뿐 걷다 보니 올해도 뒷산 무덤을 덮을 듯 피어있는 할미꽃 군락을 볼 수 있었다.

할미꽃은 꽃이 필 때는 꽃대가 구부러진 모습이지만 열매를 맺고 나면 하얀 노인의 머리 같은 열매를 꼿꼿이 세운다. 흰머리를 생각나게 하는 열매 때문에 '백두옹'이라 하지만 흰머리를 한 할미꽃은 오히려 허리가 꼿꼿한 것이다.

필자의 할머니는 증손자도 보시고 오래 사셨다. 걸을 수 있으실 때까지 허리가 꼿꼿하고 머리는 백발이었다. 할미꽃 같으셨다. 어머니는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수발들며 함께 사셨다. 며느리가 되어보니 어머니가 얼마나 큰 일을 하셨는지 비로소 느낀다. 덕분에 할머니와 함께한 기억이 많아 늘 감사하다.

어릴 적 밭 가운데에 있었던 고조·증조할아버지 산소에는 작은 할미꽃은 없었다. 시간 날 때마다 올라가 산소를 돌보던 할아버지,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이다. 보기 좋게 핀 한 무더기 큰 할미꽃이 기억에 남는다.

요즘 산소에 할미꽃이 여기저기 필 수 있는 것은 자주 산소를 돌보지 못하고 가을에만 찾을 수밖에 없는 바쁜 현실 때문일 것이다. 땅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관리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산소가 점점 줄어들고 무연고 묘가 많아지고, 납골묘가 점점 커지는 것이 아닐까.

뒷산 할미꽃이 많은 무덤에서 항상 고라니 똥을 발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미꽃이 매년 늘어나는 것을 보면 고라니는 할미꽃을 먹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할미꽃은 미나리아재비과 식물이다. 많은 미나리아재비과 식물에는 독이 들어있다. 투구꽃, 동의나물은 대표적인 미나리아재비과의 독성식물이다. 고라니가 살아도 할미꽃이 번성하는 이유이다.

봄꽃은 유난히도 개화 시기가 짧다. 봄꽃을 기다렸던 겨울이 길기도 하고, 점점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계절의 양극화가 심해진 것도 한몫 한다. 크고 화려한 여름꽃에 비해 작고 단정한 봄꽃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목련도 큰 꽃잎을 떨어트리고 열매를 충실히 준비하고 있다.

사계절 줄줄이 꽃필 시기를 계산하고 있는 식물이 많이 있다. 그러니 지금 피어있는 꽃을 충분히 즐기며 보내고 싶다. 매년 같은 곳에 같은 꽃이 피지만 언제나 다른 모습이다. 그 기세가 커지거나 작아지고 때론 약간씩 움직이기도 한다. 필자가 매년 같은 무덤에서 할미꽃을 찾듯 많은 사람이 나만의 장소에서 점점 달라지는 식물 하나를 알길 바란다. 알고 살펴서 나와 그 식물이 공유하는 이야기가 생기면 좋겠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다면 즐거울 것 같다. 필자도 올해 할미꽃이 지기 전에 아이들과 할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할미꽃을 구경하러 가야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가 할미산성까지 이어지길 바란다.
 
 무덤가 주변에 피어 있는 할미꽃
무덤가 주변에 피어 있는 할미꽃 ⓒ 용인시민신문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생태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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