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자신의 삶이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한다. 죽음의 순간에 대해서도 인간은 말할 수 없다. 숨이 멎으면 동시에 삶도 끝이 나므로, 생의 마지막 순간이 어떠했는지를 증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이 멈추면 죽음도 멈춘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타인을 통해서만 경험되고 이해되는 낯선 사건이 아닐까. 그래서 살아있는 인간에게 죽음은 늘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닐는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평생을 거쳐서 천착한 문학의 주제도 바로 '죽음'이었다. 그것은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관념적인 죽음이 아니라 삶에서 경험하는 실재적인 죽음이다. 톨스토이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죽음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톨스토이에게 죽음은 삶과 연결된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은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고민케 한다. 톨스토이가 작품에서 죽음을 통해 그토록 삶의 진실을 보여주려고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바로 이러한 톨스토이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잘 담겨 있는 작품이다.
고위 관료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던 이반 일리치는 어느 날 갑자기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된다. 집수리를 하던 중 사다리에서 떨어져 옆구리를 다치고 점점 심해지는 통증으로 더 이상의 삶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죽음은 하루하루 그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는 이렇게 아프기 전까지는 죽음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살아왔다. 그에게 죽음은 추상이 빚어낸 관념일 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세상이 맞춰놓은 기준에 따라 단지 "열심히" 살았다.
이반 일리치는 사회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고 사교적이면서도 우아하고 고상한 품위를 잃는 법이 없었다. 동료와 부하직원들은 "과시할 만한 성공"에 그를 존경했으며, 그런 주변의 시선은 이반 일리치를 항상 기쁘게 했다.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한 삶이었다.
하지만 병세가 점점 심해지고 이내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이반 일리치는 '죽음'이 바로 코앞에 당도해 있음을 감지한다. 그제서야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전부 허울뿐인 거짓이었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가진 능력, 타인들에게서 받는 선망, 상류층으로서 갖추어야 할 품격 등 모든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투병 생활을 하면서 이반 일리치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육체적 고통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위선과 기만이었다. 병들어 죽어가는 그에게 사람들은 "치료만 잘한다면 곧 아주 좋아질 것"이라는 말을 둘러댔다. 사람들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으로 생겨나는 것들의 이해득실을 따지고,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하기에 바빴다.
아내는 이반 일리치가 죽은 뒤 받게 될 연금액을 챙기고, 동료들은 공석이 될 그의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반 일리치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증오심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몸이 아픈 이반 일리치는 무엇보다 가족과 친지, 동료들에게 진심 어린 위로와 보살핌을 받고 싶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자신을 불쌍하게 바라봐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의 고통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하인 게라심은 달랐다. 그는 병든 이반 일리치의 몸을 닦고, 오물을 치우고, 죽을 떠먹이는 등 그를 정성으로 보살폈다. 여기에는 주인과 하인이라는 위계도 없었고, 인간의 '잘남'과 '못남'도 무용했다. 병들어 죽어가는 약한 인간과 그를 불쌍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돕는 한 인간만이 존재했다. 그들은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대면할 뿐이었다.
이때 이반 일리치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게라심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진실로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이반 일리치에게 게라심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린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요. 그러니 수고를 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83쪽)
이렇게 한 인간이 죽어가는 모습을 통해 톨스토이는 삶의 중요한 진실 하나를 건져 올린다. 그것은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인간을 향한 마음 즉 '연민' 하는 마음이다.
'연민'이란 인간을 끝내 병들어 소멸할 존재로 바라보면서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이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을 가련한 존재로 여기고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감정이다. 그것은 값싼 동정의 마음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인 약함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인 것이다.
'연민'은 상대방의 성공이나 '잘남'을 전제로 성립되고 유지되는 관계에서 나오는 마음이 아닌, 인간의 실패와 '약함'을 끌어안고 품는, 한 차원 높은 삶의 방식이다. 이런 삶의 진실을 죽음에 가까이 가서야 깨닫지 말고 살면서 늘 기억해 두어야 한다고 톨스토이는 말하고 있다. 그것이 진실한 삶이 아니겠느냐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작가의 블로그에도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