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는 지리산권 지역에 필요한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과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민간 지원단체로, 아름다운재단과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리산권 지역에서 직접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 모임, 공간, 네트워크를 소개하는 글을 싣습니다. 이 인터뷰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기자말] |
시골마을에 살아보니 정말로 앞집, 옆집, 뒷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꿰고 있을 만큼 이웃의 존재가 가깝다. 도시에서의 삶에 비해 얼굴과 얼굴이 마주할 일도 잦고, 이웃들은 나를 돕든 간섭하든 지켜보든 내 삶의 일부로 톡톡히 존재감을 갖는다.
얼핏 도시보다 더 많이, 잘 연결돼 있는 듯 했지만 최신 영화나 베스트셀러, 요즘 유행이 무엇인지 등 시시콜콜한 것부터 우리동네 하천은 왜 공사중인지, 뒷산은 무슨 일로 깎이고 있는지, 이번 지방선거 후보들이 내놓은 정책은 어떤지까지 너도나도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광장은 참 많이 부족하다.
경남 하동에는 이런 갈증을 해소하고자 만들어진 주민신문 <오!하동>이 있다. 이 신문은 하동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고 담는다. 지난 4월, 갓 발행된 따끈따끈한 <오!하동> 창간준비호 10호와 함께 왕규식 편집장, 김건해 기자를 만났다.
"이전에도 지역 언론은 한 5개 정도 있었죠. 그런데 이 신문들은 대단히 행정과 군정 소식 중심이에요. 예를 들어서 누가 장학금을 얼마 냈다, 이번에 무슨 모임의 부회장이 누가 됐다, 누가 뭐 무슨 상을 받았다, 뭐 이런 지역 유지들의 소식이 주민들 소식으로 다뤄지고, '군수가 이런 일을 했다'와 같이 군정을 다뤄요.
그러니까 신문을 넘기면 군수 얼굴이 안 나오는 면이 없는 거죠. 이런 신문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요. 제대로 된 언론, 그러니까 군민들의 이야기를 담는 신문은 없었다고 봐야죠. 그래서 <오!하동>을 만들기 시작한 거고, '우리가 우리 이야기를 하자' 이게 핵심이에요." (왕규식 편집장)
농민, 어민, 청년, 결혼이주민 등 다양한 하동 사람들 인터뷰가 담긴 창간준비 1호의 기획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하동사람들'이었다. "아들은 아무것도 하지 마라 캐. 내가 뭐 하는 줄 알믄 아들이 난리나"라는 할머니의 목소리, "하도 바빠서 내가 몇 살인지도 모르겠다! 하하하!"라는 농민의 목소리, "살고 있지만 사는 거 아닌 것 같아요"라는 결혼이주민의 목소리가 지면에 그대로 실렸다. '이것도 기사가 될 수 있을까' 했다는 김건해 기자의 고민이 무색하게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오!하동>은 2021년 6월 창간준비 1호의 '오늘을 살아가는 하동사람들'로 시작해 지금까지 달마다 하동의 관광, 의료, 쓰레기, 교통, 섬진강, 교육 등 한 가지 주제를 정해 특집기사들을 다루고 있다.
"하동에는 하동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꺼내 놓을 수 있는 공론장이 전혀 없어요. 소위 거버넌스라고 하는 것들이 형성돼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군에다가 개개인이 하소연하는 방식뿐이죠. 여러 협회들이나 시민사회단체들도 자기 목소리 내는 정도이지 하동의 어떤 문제들을 공론화시켜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걸 정책화시키는 시도들은 전무합니다. 그런 것들이 어떤 형식으로든 필요했기 때문에 <오!하동> 같은 신문이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왕규식 편집장)
<오!하동>을 만드는 사람들과 땀
"처음엔 두 분(이순경, 김경구)이 먼저 하동에 이런 지역 언론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내시고, 지역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이런 신문을 함께 만들어 볼 능력과 문제의식을 가진 분들을 찾았어요. 모은 사람들과 뜻을 합해보자 하며 시작한 게 2021년 1월 쯤 첫 회의였죠." (왕규식 편집장)
농사짓는 사람, 빵 굽는 사람, 아이들 가르치는 사람, 집짓는 사람, 텃밭 일구는 사람, 대나무 공예 하는 사람... 하동 토박이부터 2년차~20년차 귀촌인, 40대부터 70대, 다양한 생활방식과 직업을 갖고 살아가던 평범한 아홉 사람이 <오!하동>을 만들고 있다.
"신문이라는 게 방향이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그 방향을 맞추려면 생각의 차이를 좁혀 나가야 되는데 생각 차이를 좁히는 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알고 지낸 지가 그다지 오래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각자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새롭게 만나서 방향을 맞추는 게,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서로 합쳐 나간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러는 과정이긴 하지만 이제 서로에 대한 신뢰는 좀 깊어졌죠." (왕규식 편집장)
온라인으로 할 것인지 오프라인으로 할 것인지, 누가 기사를 쓸 것인지, 어떤 의제를 다룰지부터 판형, 발행 부수 등 무궁무진한 의논거리를 두고 일요일마다 모여 머리를 맞댔다.
한번 시작한 회의는 대여섯 시간을 넘기는 게 기본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신문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열정과 땀으로 태어났다. 창간준비호 1호부터 10호까지 논의와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회의시간은 줄어들고 있지만,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각자의 고민과 노력은 계속된다.
"자기 내면의 생각을 개인의 글로는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겠지만, 기자라는 이름으로 신문의 기사를 쓴다는 건 굉장히 책임감도 있고 만만한 일은 아니죠. 다들 그게 제일 힘들었을 거예요.
첫 신문을 만들 때의 부담감이 가장 컸고, 호를 거듭하고 기사를 쓰면 쓸수록 자신의 문체를 버리는 연습을 했던 것 같아요. 신문에서는 독자가 가독성 있게 얼마나 쉽게 본질에 빨리 접근하고 인식하게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지 내 문체나 내 생각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이걸 바꾸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왕규식 편집장)
<오!하동>의 기자들은 아기를 품고 기르며 엄마가 되어가는 것처럼, 신문을 준비하고 만들며 계속해서 기자가 되어가는 중이다.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강의를 듣기도 하고, 책을 함께 읽고 논의하며 기사 쓰는 법을 머리로 몸으로 부지런히 익혀가고 있다.
하동의 목소리를 찾아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떻게 병원을 이용하는지 인터뷰해 노인 의료현실을 살펴본 '어르신 병원 가는 길!', 악양, 화개에 방문한 가족단위 관광객의 목소리를 담은 '관광객이 말하는 하동',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진행한 설문을 바탕으로 '하동군민들이 원하는 하동' 김건해 기자의 기사는 이렇게 하동 사람들과의 밀착 만남을 통해 목소리를 듣고 담은 기사들이 주를 이룬다.
"1호에서 동네 할머니를 인터뷰하는 기사를 제가 맡았고, 그 기사의 평가가 좋아서 '어르신 병원 가는 길!'이라는 또 다른 인터뷰 형식의 기사도 제가 맡게 됐어요. 여러 번 기회가 생기다보니 '인터뷰가 나하고 잘 맞나보다' 하게 됐어요.
다른 분들 기사는 제가 흉내 낼 수가 없어요. 그 부분에 대한 지식이 많지도 않고, 깊게 생각해본 적 없는 부분들에 대해서 다루는 건 꿈도 못 꾸죠. 그런데 저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실어주는 게 조금 더 잘하는 부분이구나 알게 되면서 그걸 맡게 되는 것 같아요." (김건해 기자)
"또 다른 면에서는 귀촌 20년차인 김경구 기자처럼 지역에서 오래 살다 보면 그 삶에서 우러나온 관점이나 문제의식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분들은 어떤 의제를 자연스럽게 다룰 수가 있어요. 반면에 김건해 기자님은 구성원 중에서는 귀촌연차가 좀 짧은 편이고, 어떤 의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정말 군민들의 정서와 합치되는 문제의식인지 나만의 문제의식인지 머뭇거려질 수 있죠." (왕규식 편집장)
김건해 기자가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 목소리를 담아오는 한편, 군민들이 직접 기고한 글도 실린다. 텃밭 농부, 문화관광해설사, 시인, 자영업자, 초등학생 등 다양한 독자들을 신문으로 직접 모셔오는 건 홍마리 기자다.
"홍마리 기자님은 저희 최연장(70세) 기자님이신데요. 처음에는 기획 특집에 맞추어 취재 기사를 위주로 썼었는데, 취재를 하다 보니 우리가 심층 취재하려고 하는 부분만 너무 강조되는 것 같다, 신문에 재미가 없다는 고민을 하셨어요. 신문이 좀 숨통도 좀 트이려면 지역 사람들 목소리도 실어야 하니까 '독자기고란' 지면을 만들어서 거기에 사람들의 목소리를 싣자고 하셨죠. 그래서 6면에는 고정으로 독자들의 글이 실리고 있어요." (왕규식 편집장)
용어 하나 허투루 쓸 수 없는, 끊임없는 논쟁과 검토 후에 나오는 정확하고 날카로운 기사와 함께 말랑말랑하고 생생한 군민의 목소리가 듬뿍 담긴 것이 <오!하동>이라는 신문의 참맛이다. '노션'이라는 세련된 툴을 활용한 온라인 페이지를 보았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다. 지역신문 치고 디자인과 온라인 페이지를 활용하는 틀이 '신세대스러운'데 내용에는 역시나 연륜과 깊이가 느껴지는 것. 음식점에서 '반반'을 주문할 때 느끼는 두루 갖춰졌다는 만족감과 완벽함 같은 것.
한 부의 신문이 나오기까지의 세세한 이야기들도 키워드 위주로 들어보았다.
#편집실의_한달
"첫째 주 화요일 인쇄가 된 신문이 수요일 저희 손에 도착합니다. 그러면 일요일에 모여서 이 신문에 대한 평가를 하고, 다음 호의 주제를 설정하며 주제에 대한 난상 토론을 해요. 첫째 주에 주제와 방향을 잡으면 집에 돌아가서 각자 생활하면서 취재의 내용을 연구하죠. 그래서 둘째 주에는 취재 계획을 발표하는 거예요. 어떻게 취재할 것이며 어떤 관점으로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요. 그때 서로 부족한 점, 잘못된 점을 채워줍니다.
셋째 주는 취재 계획대로 기자들이 현장에 나가서 취재하고 초고를 작성해서 일요일에 모여요. 그러면 초고를 검토하고 보완하는 논의를 하게 되죠. 그러면 넷째 주에 완고가 모이고, 그때부터는 기자 중에 교정교열까지 맡은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이 교정교열을 보고, 편집디자인을 맡은 사람에게 넘겨요. 그러면 넷째주 일요일 날 밤에 최종 검토를 하고 인쇄소로 넘기죠. 굉장히 바쁘게 돌아갑니다." (왕규식 편집장)
#무광고 #무가지
"저희가 비용 면에서 결정한 것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광고 없이 한다', 두 번째는 '무가지로 한다'예요. 광고를 실으려면 에너지가 만만찮게 들기도 하고, 신문이 유료인지 무료인지가 이 신문을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와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아서요. 유료로 한다는 건 결국 읽는 사람에게 부담만 줄 뿐이죠. 우리 기사의 가치를 돈으로 매길 수도 없고요. 오히려 이러한 기사를 다룸으로 해서 이게 동네에 파급 효과를 줄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은 거죠. 이 두 가지를 일단 결정했습니다." (왕규식 편집장)
#제작비용 #언론협동조합
"신문 만드는 비용은 크게 인건비, 사무실 유지비, 제작비, 배포비 이렇게 되는데요. 그중에서 기자들의 인건비, 배포비는 무료 봉사로 해결하고 있고 사무실은 다른 시민사회단체의 사무실을 빌려 쓰고 있어요. 제작비는 인쇄비인데, 현재까지는 (설립 예정인 언론협동조합의) 이사장님(이순경씨)이 해결했어요.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고, 이제 언론협동조합 설립을 위한 행정절차를 마무리하고 있어요. 저희가 창간호를 낼 때쯤일 것 같아요. 그때쯤에는 아마도 조합비와 후원 회원들의 후원 회비로 운영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왕규식 편집장)
'네 문제야'에서 '우리의 문제야'로
왕규식 편집장에게 <오!하동>이 가져다 준 개인의 변화를 물었더니, 귀향하고 2017년부터 꾸준히 써온 농사일지를 못쓰고 있다고 했다. 그마저도 질문에 답하며 생각이 났다고. 그만큼 바쁘다는 얘기다. 반농반X가 유행이라는데, 왕규식 편집장의 삶은 '완농완X'에 가깝다. 작지 않은 규모의 농사를 지으면서도 신문 만들기에도 빈틈없어 보인다. 다른 구성원들의 삶도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척박한 안팎의 조건 속에서도 신문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
"도시에는 젊은이들을 통해서 SNS를 바탕으로 한 쓰기와 읽기 문화가 보편화돼 있는 거잖아요. 여기는 그렇게 하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상대적으로 상당히 힘들죠. 취재원 구하는 것, 제보를 받는 것, 취재 후에 평가를 듣는 것... 모든 것들이 도시에서의 신문 만들기보다 훨씬 더 어려운 조건이죠.
더욱이 하동은 해방 이후에 한 번도 진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정치세력이 있었던 적이 없어요. 후보 자체가 없었어요. 줄곧 보수당이 집권을 해왔죠. 나의 문제를 지역과 사회의 문제로 인식하는 게 절대적으로 빈약하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지역과 사회의 문제도 '너 개인의 문제야'라고 해왔던 세월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항상 행정과 기득권 중심의 세월을 살아온 이 하동이기 때문에 권위주의의 요소가 너무 많아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지역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거에 익숙지가 않아요. 맨 처음에 공론회장이 전무하다고 했던 말 기억하시죠. 그게 신문을 만드는 동기이자 신문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어려움이기도 하죠." (왕규식 편집장)
왕규식 편집장의 말처럼 <오!하동>을 만드는 것은 변화에 대한 간절함이 아닐까. 내가 사는 지역에 더 비옥한 소통의 땅을 일구어 보고 싶은, '함께 산다'는 감각이 열매 맺길 바라는 마음 말이다. 신문 이름처럼 군민들이 신문을 읽으며 '오!'하며 무언가 잊고 있던 것들을 알아차리는 순간들, '오!'하며 하동에 사는 삶에 감탄할 수 있는 순간들을 함께 기다려본다.
글 | 푸른
사진 | 임현택
기획/진행 | 누리
Author 푸른
내 이름도 별명도 살고 싶은 모습도 '푸른'. 나는 따뜻하거나 뜨거운 사람.
어린이의 벗 되어 살고 싶다. 어린이 해방을 꿈꾸며 산청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