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재 기사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현상의 변화를 파악한 것으로서 '패턴'을 다루려고 합니다. 패턴은 다양한 분야의 학계와 현장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저는 이 말을 '일정한 기간에 순차적,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이 연결된 관계'로 정의하고자 합니다. 이번 연재에서도 다양한 사회복지 현상을 다루기는 하겠으나 이 기사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회복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현상으로서 대학의 현안들을 연결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담당하는 '시간강사'라는 직업군이 있었습니다. 주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거나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학위논문을 쓰고 있거나 박사과정 중에 있는 대학원생이 출신 대학이나 그 대학의 선배가 교수로 근무하고 있는 대학의 강의를 몇 개씩 맡았습니다.
박사과정 중에는 수업을 따라가기도 바쁘기 때문에 하루 날을 잡아서 한두 과목을 하다가 수료하고 논문을 쓸 때는 1~3일 정도, 그리고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경력과 생계유지를 위해 더 많은 강의를 맡곤 했습니다. 물론 각자의 전공과 상황에 따라 시간강의를 하는 날의 수나 강의 시수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지금은 이 직업이 '강사'로 통합되었습니다. 고등교육법에 의해 대학교원은 교수, 부교수, 조교수 및 '강사'로 나눠지며, 대학은 필요에 따라 겸임교원이나 초빙교원 등을 더 둘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조교수에서 교수까지가 전임교원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대학들은 강사와 겸임교원, 초빙교원을 비전임교원으로 임용하고 있습니다.
초중등학교에서 시간제로 강사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고, 공공과 민간기관 등에서 특강 강사를 초빙하는 경우도 있으며, 학원에서도 주로 강사를 활용하기 때문에 그들과 구별하기 위해 이 기사의 제목에 '시간강사'를 집어넣었지만, 지금부터는 대학의 강사로 한정하여 '강사'로 부르겠습니다.
파문의 시작
파문은 2010년 당시 한 지방대의 시간강사가 열악한 처우와 임용비리 등을 고발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전에도 유사한 사건들이 간간히 발생했지만, 이때 더 충격이 컸던 것입니다. 이후 정부와 국회 논의를 거쳐 2011년 12월에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재정 부담을 주요 근거로 하는 대학들의 반발이 있었고, 그 때문에 여러 차례 유예되다가 2016년 1월에야 시행되었습니다.
여하간 그 사이에, 그리고 그 이후에 '일단' 강사가 된 사람들의 처우는 개선되었습니다. 교원이라는 지위가 부여되었고, 1년 이상 임용을 원칙으로 3년까지 재임용이 보장되었습니다. 주당 6시간 강의와 방학 중 급여지급, 사회보험 적용 등으로 급여수준도 전반적으로 안정되고 향상되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해피엔딩으로 1막이 끝나는 것 같지만 여파는 여기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일부 대학들은 그동안 상승한 강사료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부 지원금을 받아 처리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대학의 재정구조와 연결된 몇 가지 더 큰 맥락요소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2008년부터 시작된 대학 등록금 동결과 등록금 인하 압력이며, 둘째는 인구 감소와 대학입학 자원 감소에 대처하기 위해 교육부가 주도한 대학구조조정이고, 셋째는 지방대 '위축' 현상입니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규모와 재정 수준에서 국민들의 소득(재)분배나 빈부격차와 같이 매우 큰 차이와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서울의 주요 대학과 지방 국립대처럼 재학생 수가 많고 경쟁률이 높은 대학들은 재정 여력이 많지만, 다수의 대학들은 빠듯한 재정수준을 가지고 있고, 입학정원이 500명도 안 되는 소규모 대학들은 더욱 열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학교가 부실한 학교는 아닙니다. 따라서 강사에 대한 처우든, 등록금 수준이든, 구조조정이든 동일한 기준으로 모든 대학들을 판단해서는 안 되며, 설립취지와 주요 기능, 전체 교직원과 학생의 수, 재정수준 등에 따라 구별해서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강사법이 개정될 때 모든 대학들이 반발하기는 했지만, 서울 소재 주요 사립대학들은 재정부담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국립대학들은 정부 지원을 통해 이 부담금을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사립대학과 특히 소규모대학들은 실제로도 매우 큰 재정부담을 느꼈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가 된 것입니다.
변화에 대한 대책으로 인한 변화에 대한 대책
이야기가 더 복잡해지기 전에 강사법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실제 대학의 규모나 재정여력과는 큰 상관없이, 강사법 시행이 예고되자 대학들은 그에 대처하는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강사들이 담당하던 과목들의 일부를 전임교원들에게 떠넘겼습니다. 그러나 각 전공 내에서 전임교원이 담당할 수 있는 과목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머지 과목들은 선택된 강사들에게 더 맡기거나 겸임교원 또는 초빙교원 등에게 맡겼습니다.
겸임교원과 초빙교원은 다른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전제로 채용하기 때문에 사회보험료 등을 지급하지 않고, 강사료만 지급해도 되기 때문이죠. 전임교원들도 정해진 시수를 넘어서는 만큼의 초과강사료만 조금씩 지급하면 되기 때문에 부담이 크지 않습니다. 또한 그렇게 해도 남는 과목들 중에서 일부는 아예 폐강을 하기도 했습니다. 전공선택 과목이나 교양선택 과목들이 여기에 해당되죠.
그런데, 미봉책이라고 부를만한 이러한 대안들도 그리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며 충분하지도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파문에서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강사 수의 감소입니다. 즉, 원래 시간강사로 근무하던 사람들이 줄어든 것입니다.
실제로 강사법 유예기간과 시행 이후에 가장 논란이 된 사안은 대학들이 강사를 줄이고 있다는 점이었고, 그 때문에 많은 강사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공개채용 과정을 통해 선택된 강사들은 신분보장과 더 나은 처우를 받을 수 있었지만, 상당히 많은 강사들은 오히려 그나마 있던 강사 자리까지 잃게 된 것이죠.
이러한 변화를 부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전부터 오랫동안 대학 내외부에서 존재했던 불만과 비판은 절반이 넘는 강의를 전임교원이 아닌 강사들에게 맡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강사법 논의 이후로 전임교원의 강의담당 비율이 높아진 것은 긍정적인 변화일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이 사건의 다른 축인 대학구조조정이 등장합니다. 대학설립이 자율화된 이후 우후죽순으로 많은 대학들이 설립되면서 대학의 부실운영과 각종 부조리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인구 감소와 학령인구 감소, 거기에서 이어지는 대학입학 자원(즉 대학입학 지원자의 수)의 감소로 전체 대학 입학정원의 감축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조만간 우리는 전체 대학 입학정원보다 지원자 수가 더 많은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입학정원을 줄이면 문제가 해결될지 모르겠으나 그럴 일은 없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교육당국은 대학 입학정원을 줄이기 위해 대학구조조정이라는 인위적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막무가내, 일률적으로 정원을 줄일 수는 없기 때문에 대학들을 평가하는 지표와 체계를 마련하고 주기적인 평가를 수행한 뒤 그 결과를 토대로 구조조정을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여러 대학들이 문을 닫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평가는 다시 여러 가지 파문을 일으킵니다. 전체적으로 대부분의 대학은 선제적, 또는 사후대책으로 입학 정원을 줄여왔습니다. 입학 정원이 줄어들면 재학생 수가 줄어들며, 이는 등록금 수입이 감소하는 것을 의미하고, 결국 대학 재정이 감소합니다. 처음에 대학들은 지출 항목에서 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지우기 시작했고, 점차 중요한 것들도 칼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을 가로막는 장벽이 하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건비입니다. 교수와 직원에게 지급하는 순수한 인건비는 이미 오래 전부터 동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 줄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더 어렵게 만든 것이 대학구조조정 평가입니다.
우리는 앞서 강사법 시행과 맞물려 전임교원의 강의전담비율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대학구조조정 평가에서 중요한 지표 중 하나는 전임교원 비율이고, 살아남으려면 그 비율을 높여야 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이 전임교원들을 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들어오는 돈이 줄어드는데, 나가야 할 돈이 늘어가는 이 상황. 여하간 전임교원이 되려면 대부분 박사학위 소지자여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로 인해 강사 생활을 하던 박사학위소지자들이 전임교원으로 채용되었습니다. 일단 좋은 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다시 새로운 파문이 일었습니다. 입학 정원을 줄였고, 대학등록금도 오랫동안 동결해 왔는데, 강사들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줘야 하는 전임교원들이 한꺼번에 많이 늘었으니 대학으로서는 부담이 커졌습니다. 대학들은 이제 어떻게 대응할까요? 새로 채용하는 전임교원(거의 모두 조교수)을 '비정년트랙' 또는 연봉제 계약직으로 채용하여 이전보다 급여수준을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은퇴를 몇 년 앞둔 교수와 직원들의 조기퇴직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숨어 있는 다른 맥락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하위맥락을 더 연결해야겠습니다. 대학에는 교원만큼이나 숫자도 많고 꽤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는 (교)직원들이 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학의 재정 부담과 감소는 직원의 감소 또는 계약직으로의 전환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대학 입학자원은 감소될 수밖에 없는 추세였고, 따라서 입학정원도 줄여야 했으며, 이 때문에 대학의 등록금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변화가 현재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대학의 본질과 미래의 방향성이라는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논의 주제가 던져져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대학이 필요하기는 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제기에서부터 대학이 필요하다면 대학과 거기에 속한 당사자, 즉 교수들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대학교육은 어떤 구조와 내용으로 채워져야 하며, 어떤 학생들을 선발해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질문들에 대해 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거대한 화두이므로 여기에서 본격적으로 건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더 모순되는 맥락 하나를 살펴봐야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서열화'와 '비교'를 너무 좋아하는 탓에 세계 대학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국내 대학의 위치를 찾고, 뒤쳐져 있는 주요 대학들을 비난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 지적되는 한 가지 지표가 교수들의 연구실적, 특히 해외주요 학술지 게재 실적이었습니다. 그러자 언제인가부터 교수들에게 연구실적을 높이라는 압력이 가해졌고, 연구업적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거나 연봉을 차등지급하는 대학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 사회구성원들이 잘 생각하지 않는 측면이라고 생각되는데, 교수들은 대학에서 주로 4가지 기능을 수행합니다. 강의, 연구, 대외활동, 교내 행정업무입니다. 교수들의 일상생활 시간과 근무시간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두 가지 기능의 비중이 커지면 다른 기능들의 비중이 작아집니다.
연구를 갑자기 많이 하게 되면, 강의 시수는 줄이지 못하지만 강의에 투자하는 시간은 줄어듭니다. 강의 시수가 많아지면 원래 하기로 한 연구를 중단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하게 되겠죠? 대학 내에서 보직을 맡게 되면 거기에 투입되는 시간도 결코 만만치 않고, 시민사회단체나 언론 활동, 정부와 민간기관 자문 등 대외활동도 그렇습니다.
이 과정에서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이라는 분류체계가 등장했습니다. 전문연구자를 양성하는 대학들은 연구중심대학으로 선정하여 연구기능을 강화하고, 나머지 대학들은 교육을 중심으로 운영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구와 교육, 대외활동 중 대학교수의 주요 기능은 무엇일까요? 이 중에서 한두 가지만 해도 될까요?
가지치기는 그만하고, 이제부터 대학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애초에 일이 어떻게 전개되었어야 할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현재 서울의 주요 대학들은 별로 불안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대학의 교직원과 학생들이 그렇지 않다고 반응한다면, 다른 대학의 구성원들은 그들에게 '엄살 부리지 말라'고 핀잔을 줄 것입니다. 지방 국립대들도 입학정원을 못 채우는 미달 사태를 경험하고 있지만, 아직은 생존을 위협할 만큼 큰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서울의 소규모 대학들과 지방의 중소규모 사립대학들은 생존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답변, 그러나 복잡하게 엉켜 있는 현실
당사자가 아닌 입장이라면, 답은 간단합니다. 향후 인구 감소율과 대학입학 자원의 감소율에 맞춰 전반적으로 입학정원을 줄이고, 부실대학들은 과감하게 폐쇄하거나 통합하고, 나머지 애매한 대학들은 스스로 생존대책을 세우게 하면 됩니다.
주요 사립대학들은 법인 문제 때문에 공공화되는 것을 반대할 것이니 건실한 중소규모 대학들을 통합하면서 국공립대학으로 전환하면 됩니다. 그러면서 전임교원들을 체계적으로 채용하여 전임교원의 강의전담비율을 현재 지침 수준 이상이 되도록 하면 됩니다. 분과학문과 전공별 특성에 따라 필요한 경우 겸임교원이나 초빙교원을 두면 됩니다.
강사요? 우선 전임교원 채용계획이라는 큰 틀에 맞춰 전체와 지역사회 단위에서 대학의 박사과정 정원과 학위수여자 비율을 낮추거나 조정해야 합니다. 사실 전임교원이 되려고 하기 보다는 승진이나 자아실현 등 다른 목적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모든 박사학위소지자들을 잠재적인 교수 후보자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예 교수 등 전문연구자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을 위한 박사학위와 현장에서 다른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을 위한 박사학위를 구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장기적인 대학 입학자원(수요)을 예측하고, 그에 맞게 대학 입학정원(공급)을 조절하면서 은퇴하는 대학교수와 공공연구기관 연구원들의 수(수요), 그리고 신규 채용해야 할 박사학위 소지자의 수를 맞춰가고, 연구자의 길을 가려는 박사과정 정원의 수(공급)를 조절하면서 전임교원과 강사의 비율 지침(80% 정도?)에 맞게 교수채용 시장에 나온 박사학위 소지자들을 강사로 활용하면 될 것입니다.
순진한 생각이죠? 물론 이것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해외 유학파 박사'라는 또 하나의 큰 변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국내대학의 박사보다 해외 주요대학의 박사들에게 채용의 우선권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거대한 맥락이며 논의할 것도 많으니 슬그머니 넘어가겠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제동을 걸기 위해 교수채용에 여러 가지 쿼터제를 두기도 하지만 큰 효과는 없어 보인다는 점만 밝혀둡니다.
박사학위 과정에 있는 대학원생이나 박사논문을 진행 중인 후보생들에게는 전임교원이 담당하는 강의 중 일부를 맡기거나 보조 또는 협력 교원으로 같이 진행하도록 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이들을 주요 연구인력이나 연구보조원으로 활용하고 수당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수당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혼자 살기 부족한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박사과정 학생 중에는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모두의 생계를 책임져 줘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참여하더라도 생계유지가 어렵다면 공공부조 등을 통해 정부가 이를 보충해 줄 수도 있습니다.
이 정도만 얘기해도 꽤 멀리 나온 셈이고, 제법 복잡해졌으니 이 정도로 이야기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 대학 강사에 대한 처우와 고등교육법의 개정 역사를 되짚어보면, 행정부나 입법부나 적절하게 대응해 오지 못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것은 당장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가능한 도구를 사용해서 처리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체계적인 분석과 장기적인 안목,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로드맵을 그린 뒤, 특정 제도를 도입했을 때 여러 당사자들의 반응과 그들의 삶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하면서 제도를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언제쯤 우리는 '합리적이고 관대한 합의'를 이룰 수 있을까?
10년이 넘는 지난한 세월동안, 대학들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쥐들의 심정으로 눈치게임을 벌여왔습니다. 대학구조조정과 생존전략을 제로섬게임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대학의 교직원들은 10년이 훌쩍 넘게 급여가 인상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희생과 정부 지원으로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은 덜어졌으나 다수의 대학과 교직원들은 더 가난해졌고, 대학교육의 질은 낮아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강사법을 개정했을까요?
그리고 그때 그렇게 많던 강사들 중 강사 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서 어떻게 버텼을까요? 대학구조조정에 맞서 전임교원 비율을 높이던 때와 타이밍이 맞아서 마침 전임교원이 된 이들에게는 행운이 되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더 힘든 시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어떤 제도를 시행했을 때, 그로 인해 부정적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음을 예측하고 그들을 구제하기 위한 예방책을 미리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