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는 국민의힘 당대표 이준석과 대담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를 올렸다. 남성청년들이 주를 이루는 남성 커뮤니티에서 맥락 없이 툭하면 올라오곤 했던 '여성가족부 폐지'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일까. 그의 게시물에는 이미지 외에 논리나 설명은 없었다.
윤석열 캠프의 10대 공약 중 '여가부 폐지'는 청년공약이었다. 적어도 그가 사회에 관심 있는 사람이었다면, 여성청년의 존재와 그들의 요구를 모를 수 없었을 텐데 청년공약으로 여가부 폐지를 내걸다니...
윤석열의 나라에는 여성청년이 없는 걸까
2015년 전후의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뭉친 여성청년과 세력화된 페미니스트들은 극렬한 사회변화를 주도했다. 탈코르셋 운동, 디지털 성폭력 고발과 웹하드 카르텔 고발 및 입법 운동, 버닝썬 사태와 성구매 카르텔 고발, 텔레그램 N번방 고발과 피해자연대, 낙태죄 폐지 등 여성청년과 페미니스트를 주축으로 한 크고 많은 움직임이 있었고, 시민들의 일상과 관계, 회사와 학교의 조직문화, 정치권까지, 페미니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수많은 여성이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고 성차별과 싸웠으며 정치와 법을 바꾸었다.
미투 운동으로 인해서 유명 정치 인사가 퇴출당하기도 했다. 또한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성평등 가치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정치인들이 입법, 사법, 행정 전 분야에 여성주의적 영향을 미쳤다. 기성 정치권 또한 이러한 변화에 함께 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은 반복되는 당내 성폭력에 대해 자성 없는 태도를 일관하다가, 텔레그램 N번방을 고발한 추적단 '불꽃' 출신 활동가 박지현을 선대위에 영입하며 여성청년 유권자를 모으는 데 성공했다. 이후 진보 여론은 여성청년 유권자의 영향력을 크게 평가했다.
반대로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여성가족부 폐지, 무고죄 처벌 강화 등의 반여성 정책을 선택했다. 젠더 이슈, 노동 이슈 등 대선정국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2월 초, "국민의힘이 신남성연대를 통해서 조직적 댓글조작을 했다"며 더불어민주당이 신남성연대 7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늘 기득권을 위한 정치를 펼쳐오던 국민의힘과 여성혐오를 일삼았던 일부 남성 커뮤니티가 서로 통하는 게 있었던 것일까. 국민의힘은 여성가족부 폐지 논리가 굉장히 빈약한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정책과제로 잡았다. 먼저 그들이 외면한 여성청년들의 차별 현실을 보자.
고용성차별로 인해서 내쫓기는 여성청년
지난 2018년, 하나은행이 남녀 채용 비율을 4:1로 사전에 아예 정해 놓고 채용 절차를 시작했음이 드러났다. 최종 면접에서도 순위 조작으로 합격권인 여성 2명을 탈락시키고 남성 2명을 합격시켰다.
KB 국민은행도 남성 지원자의 점수를 임의로 올리고 여성지원자를 탈락시키는 등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했다. 지난 2015년, KB국민은행 인사팀장은 신입 행원 최종 합격자의 남성과 비율을 6대 4나, 7대 3으로 하라는 내용으로 지시에 따라 남성 113명의 자기소개서 평가 등급을 임의로 상향시키고 여성 지원자 112명은 임의 하향 조정했다. 동아제약 또한 2020년 하반기 채용 면접에서의 성차별을 인정했다.
2018년 고용노동부의 2017년 채용 전형별 합격자 성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공기관 채용에서 서류전형에 합격한 비율은 여성이 남성보다 근소하게 높았으나, 면접심사 뒤에는 68.6%로 줄어들었다. 능력이 같다 하더라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취업할 확률이 줄어든 것이다.
조직 내 성폭력, 성차별로 인해 직장에서 쫓겨난 여성청년
아직은 직장 내 성희롱을 겪은 후 회사를 떠난 노동자에 대한 통계나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다만,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9년 3월 8일부터 2020년 3월 7일까지 고용노동부 성희롱, 성차별 익명신고센터에 접수된 직장 내 성희롱 579건을 분석한 결과, 사건 이후 사직서를 제출하거나, 해고를 당한 경우가 전체 25.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한 피해자의 넷 중 하나는 자의, 타의로 일터를 잃었다. 서울여성노동자회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피해자의 72%가 퇴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성폭력은 안전만이 아니라 여성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었다.
2019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경력단절여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25~54세 여성 중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은 3명 중 1명이며, 경력단절 후 첫 임금이 전 임금의 87.6% 수준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육아 휴직 사용 후 직장으로 복귀한 비중은 43.2%밖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이 경력단절 이후 재취업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7.8년이었다.
2021년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분석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한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 19기간 동안 35~39세 여성고용률이 계속 하락한다. 이는 돌봄 부담으로 일터에 다시 복귀하지 못한 결과다.
여성 차별, 낮은 임금과 부불노동을 통해 배 불리는 자는 누군가
지난해 11월 한국여성노동자회 주최로 열린 '90년대 생 여성노동자 실태조사 토론회'에서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30대 여성 노동자들은 점차 저임금 주변부로 밀려나는 형국을 보였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4774명 중 취업난을 걱정해 실제 하향 취업했다는 응답이 43.9%에 달했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에서부터 실업으로 그렇게 한 단계씩 내려섰다. 통계청이 조사한 2020년 세대별 월평균 임금을 보아도, 전 세대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았다. 특히 임금 상승기에 찾아오는 경력단절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여성은 성차별과 성폭력으로 직장에서 자의, 타의로 물러나거나 진입하지 못하며, 더 낮은 임금의 일자리로 쫓겨난다. 그렇다고 노동을 멈추는 것도 아니었다. 가사노동을 계속 하고 있었다. 2014년 통계청은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연간 360조 700억 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명목 GDP의 24%에 달하는 액수다.
2022년, 현재에도 한국의 가부장제 자본주의는 여성의 저렴한 노동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고 있다. 일부 남성 커뮤니티들은 남성이 얻는 높은 임금과 권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국민의힘의 경제 논리인 신자유주의를 내재화했다. 국민의힘 또한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를 확산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 남성 커뮤니티의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논리를 받아들였다. 국민의힘의 경제 논리인 신자유주의와 일부 남성 커뮤니티의 여성혐오는 그들 서로의 자산을 지키는 데에 일조한다.
그렇다보니 여가부 폐지를 위한 구체화된 논리도 없다. 단지 더 많은 권력과 자본축적을 위해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강화하고 더 극심한 '백래시'를 행할 뿐이다.
여성을 둘러싼 구조적 성차별이 온존하는 사회에서 여성가족부 폐지와 같은 맹목적 백래시에 더 강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여성청년과 페미니스트는 앞으로도 여성이 성적으로 소비되지 않을 권리, 일한 만큼 임금을 얻을 권리, 출산을 이유로 노동에서 소외되지 않을 권리, 자신이 원할 때 임신할 권리, 혹은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위해 연대하고 행동할 것이다.
더 이상 여성이기에 희생당하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확장하여 어떤 사람이든 약하기 때문에 착취당하는 삶을 살지 않게 하기 위해 성차별과 싸울 것이다. 그래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반대한다! 구조적 성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성평등기구를 강화하라!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불꽃페미액션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