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다(소울리스)'라는 말은 보통 부정적인 어감이 강하다. 일반적인 직장 상사는 '영혼 없다'는 평가를 받는 부하직원과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직원과 일하게 됐다면 기운이 쫙 빠질 것이다. 남몰래 그에게 '월급 루팡'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성과는 기대도 하지 않을 터다.
'소울리스좌'에게 본 특별한 두 가지
하지만 최근 '소울리스'의 의미가 바뀌고 있다. 에버랜드에서 일하는 한 아르바이트생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부터다. 영혼 없는 눈빛, 상반되는 속사포 같은 말투, 경쾌하지만 자동 재생하듯 단조로운 춤사위가 인기를 끌면서 많은 이가 그에게 빠져들었다. '소울리스좌'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소울리스좌'는 '영혼 없음의 최강자'라는 의미다. 놀이공원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 김한나씨에 의해 그간 부정적 어감이었던 '소울리스'가 하나의 긍정 트렌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왜 사람들은 그에게 그토록 열광할까. 아마 자신이 가지지 못한 소중한 무언가를 그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소울리스좌'의 영혼 없는 겉모습에서 그 안에 담긴 노력과 열정, 즐거움, 행복, 치열함, 욕심 등 우리가 잡지 못하고 사는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울리스좌'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눈에 초점은 없으면서 말은 빨리하는 것 때문에 현대 직장인들한테서 느낄 수 있는 영혼 없음을 좋아해 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라고 말했다. 직장인들은 영혼까지 탈탈 털린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없고, 상사와 말은 통하지 않고 영혼이 가출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소울리스좌'에게는 특별한 두 가지가 있다. 최적화된 열정과 효율성이다. 일을 즐기면서 리듬을 타고 목소리를 낮추고 동작을 최소화해 에너지 소모를 줄인다. 자기 컨디션을 업무에 최적화했다. 많이 말하고 오래 서서 일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열정을 쉽게 소진하지 않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사회초년생에게는 분명 열정이 탑재되어 있다. 하지만 효율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열정은 독이 된다. 유효기간이 금세 만료돼 쉽게 나자빠질 가능성이 높다. 십수 년 차 직장인으로 나도 숱한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거쳤다.
열정에 익사할 만큼 미친 듯이 일도 해봤고, 자기합리화를 핑계로 온종일 딴짓도 해봤다. 직장생활은 결국 제로섬 게임이라는 걸 깨달았다. 한정된 열정과 효율성을 적절하게 분배해야 조금이라도 덜 지친다.
'소울리스'로 버틴 직장 생활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오랜 시간 직장에서 버틸 수 있던 것은 '소울리스' 덕분이다. 신입사원 시절, 업무 처리가 미흡했다. 눈치는 바닥이고 모든 일에 의욕만 충만해 몸이 고생했다.
입사하자마자 업무 성수기를 맞았다. 무척 바빴다. 메신저와 전화도 빗발쳤다. 야근과 주말 근무는 당연했다. 일하던 중 전화가 오면 포스트잇에 내용을 괴발개발 적어 여기저기 붙여 놓았다. 책상 주변에는 포스트잇들과 더불어 내 정신도 사방팔방 널브러졌다. 때려치울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OOO씨, 정신 좀 차리면서 일해. 다이어리에 적고 중요한 일부터 순서대로 처리하면 되잖아. 일 많다고 자랑해?"
지나던 선배가 나를 한심한 듯 내려다보며 말했다. 회사에는 나처럼 정신없음을 티 내는 '에너지 낭비형'이 있는 반면 많은 업무도 차분하게 처리하는 '효율형'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정한 원칙에 따라 머리와 책상 속 일을 분리수거 한다. 일에 따라 우선순위를 매기고, 많은 일이 쏟아져도 차근차근 업무를 처리한다. 선배가 말한 '중요한 일'만 잘 처리해도 일 잘하는 직원이 된다.
몰아치는 일을 효율적으로 쳐내려면 에너지 분배가 필요하다. 중요한 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위해서는 '영혼 없음'을 수시로 갈아 넣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할 때가 그렇다.
직장인에게는 매일 해야 하는 소소한 일, 루틴한 업무, 반복되는 문서 작업 등 눈 감고도 처리할 수 있는 일, 하지만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 일에 신입 시절의 나처럼 몰두하면 금세 지친다. '소울리스'로 업무를 처리하고 비축한 에너지를 중요한 일에 투자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루 이틀 일하고 말 직장생활이 아니라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다 중요한 일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해 중요한 일 처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회사에서는 늘 효율성을 심도 있게 논하지만, 개인에 대입하면 효율성은 비효율성으로 쉽게 변질한다.
작가 나이젤 마쉬는 TED의 강연에서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 할지라도 기업은 직원을 최대한 이용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기 마련이다"라고 했다. 나를 위해, 회사를 위해 스스로 '영혼 없음'을 장착해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이유다.
'소울리스좌'는 영혼 없이 일하는 표상으로 떠올랐지만, 누구보다 충만한 열정을 담아 할 건 다 하는 직장인이다. 열정의 유효기간을 스스로 조절할 줄 알고 최적의 효율을 찾아 일하기 때문에 더더욱 빛이 난다. 직장인에게 선택적 '소울리스'는 환영받아 마땅한 트렌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