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보수 국가 콜롬비아가 반세기 만에 '변화'를 선택했다.
30일(한국시각) 치러진 콜롬비아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개표 결과에 따르면 좌파 후보 구스타보 페트로(62)와 '포퓰리스트' 기업인 로돌포 에르난데스(77)가 각각 40%, 28%를 득표해 1, 2위를 차지했다.
두 후보 모두 당선 확정에 필요한 50%를 얻지 못하면서 내달 19일 양자 결선 투표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둘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콜롬비아 역사를 새로 쓰게 된다.
반군 게릴라 출신 페트로, 콜롬비아 첫 '좌파 대통령' 도전
페트로는 콜롬비아의 첫 좌파 대통령에 도전한다. 1960년대 이후 정부군과 좌익 반군의 내전이 이어진 콜롬비아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게릴라 출신, 좌파 대통령이 나온 적 없다.
현직 상원의원인 페트로는 젊은 시절 좌익 게릴라 단체 M-19에서 반군 활동을 했고, 정계에 입문해 수도 보고타 시장을 지냈다. 2018년 대선에서 이반 두케 현 대통령에 패한 그는 이번 선거에 세제 개혁과 빈곤 해소, 친환경 정책 등을 내세워 재도전했다.
최근 중남미는 좌파 물결이 일고 있다. AP통신은 "지금의 경제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중남미 유권자들이 변화를 선택하면서 페루, 칠레에서 지난해 좌파 대통령이 승리했다"라며 "올해 10월 대선을 치르는 브라질에서도 좌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라고 전했다.
콜롬비아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 위기와 인플레이션 등으로 빈곤율이 악화되자 국민적 불만이 커졌다. 이달 초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75%가 "콜롬비아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라고 답했다.
페트로는 환경 운동가인 프란시아 마르케스를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로 내세워 좌파에 거부감을 보였던 여성, 농촌 유권자의 표심을 파고들었다. 만약 페트로가 당선되면 마르케스도 콜롬비아 최초의 아프리카계 여성 부통령이 된다.
다만 미국과의 관계는 껄끄러워질 전망이다. 페트로는 2012년 발효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농업이 몰락했다며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과도 관계 회복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페트로의 당선 여부에 주목하는 이유다.
틱톡 앞세운 기업 출신 에르난데스... '콜롬비아의 트럼프'
이에 맞서는 에르난데스는 페트로와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부동산 재벌 출신이자 포퓰리즘 성향을 내세워 '콜롬비아의 트럼프'로 불린다. 그러나 기성 정치권에 반발하며 부패 척결을 내세운 것은 페트로와 같다.
무소속 후보인 에르난데스는 정당 경선에 출마하지 않은 탓에 다른 후보들보다 언론 노출이 적었다. 하지만 77세의 고령에도 젊은층이 주로 사용하는 소셜미디어 '틱톡'으로 유권자와 소통하고 공약을 알리는 것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비슷하다. 그의 틱톡 계정은 팔로워가 50만 명에 달하고, 게시물은 400만 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는다.
선거 초반까지만 해도 페트로가 여유있게 앞서다가 최근 에르난데스가 치고 올라왔다. 1차 선거에서 3위로 탈락한 중도우파 페데리코 구티에레스 후보가 곧바로 에르난데스를 지지 선언한 것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지난 2004년 당시 23세였던 에르난데스의 딸이 무장 반군 중 하나였던 민족해방군(ELN)에 납치돼 살해당한 것도 동정표를 끌어모으고 있다.
영국 BBC는 "중남미에서 가장 보수적인 콜롬비아 유권자 상당수가 현상 유지를 거부하는 것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혐오 때문"이라며 "특히 에르난데스의 예상치 못한 인기는 우파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페트로와 에르난데스는 수십 년간 기성 정치권이 장악했던 콜롬비아를 변화시키겠다고 약속했다"라며 "그러나 두 후보의 배경과 정책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결선 투표에서 어떤 종류의 변화를 원하는지 결정해야 한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