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이버대학교 피아노학과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네이버 카페 '피아노 사랑'을 통해서다. 이십만 명에 달하는 전공자와 취미생이 어우러져 소통하는 공간인데 회원 중에 피아노에 몹시 진심인 취미생이 많다 보니 늦은 나이지만 제대로 피아노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직업이 작가라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으니, 70대 나이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유명한 화가가 된 모제스 할머니처럼 다시 음대에 입학해 열심히 공부하는 내 모습을 상상한 적이 있다.
하지만 백수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전업 작가에게도 나름 소화해야 할 일정이 있는 데다가, 입시곡을 연습해서 경쟁을 뚫고 음대에 입학할 실력도 자신감도 없다. 그러니 만학도의 꿈은 언감생심이라 여겼다. '피아노 사랑' 카페에서 아래의 게시물들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 지인이 대학병원 교수님인데 얼마 전에 서울사이버대학교 피아노과 입학하셨어요. 자녀들 다 대학 보내고 본인 인생 즐기시겠다고요. 연주 영상 녹화해서 지원하시던데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지원 가능할까요? 사이버대학교에 피아노과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어릴 때 경제적 여유가 없어 피아노를 계속하지 못하고, 진로를 바꾸어 전혀 다른 일을 하는 비전공자입니다. 꽤 오래 피아노를 쉬어 손가락이 잘 따라가 줄까 걱정도 되고, 이제 나이도 너무 많긴 한데, 비전공자가 편입할 수 있는 서울사이버대학교에 대해서 이곳에서 정보를 얻어 희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사이버대학이면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 것 아닌가? 피아노를 온라인으로 배우다니, 그게 가능한가? 서울사이버대학교 피아노과로 검색을 해보니 따로 입시곡을 준비할 필요 없이 누구나 입학 가능하단다. 피아노실기 과목을 수강할 학생은 입학 지원 때 연주 동영상 제출이 필수이지만, 당락을 결정하는 요소는 아니고 지원자의 피아노 수준을 파악하는 용도란다. 그래?
만약 내가 음대에 진학해 제대로 된 수업과 지도를 꾸준히 받는다면 어느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피아노 실력을 이용해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는 어렵겠지만, 피아노를 전공생 수준으로 근사하게 연주하는 나 자신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한 보상 아닌가. 혹시 누가 알아? 내 안에 숨겨졌던 엄청난 잠재력이 발휘되어 대한민국 음악계의 모제스 아저씨가 될지도.
전공자도, 비전공자도 함께 공부하는 음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한번 제대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사이버대학교 피아노과에 연락해 취재 의사를 밝히고 약속된 시간에 방문했다. 비치된 홍보 책자를 집어 들어 살펴보니 여느 피아노과처럼 4년 교육 과정에 이론과 실기 과목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체계적이다.
교수와 학생 양측 입장을 모두 들어보고 싶어 피아노과 학과장인 윤소영 교수와 학생회장 장연주 씨를 따로따로 인터뷰했다.
둘의 얘기를 종합하면 피아노과는 2015년에 개설되어 2022년 5월 현재 재학생이 400명이 넘으며 그중 대다수가 직장 생활과 병행한다. 30,40대가 많고 50·60·70대 학생도 있다. 피아노과로서는 유례가 없는 온라인 학습 시스템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주목받고 있는데,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신입생이 많이 늘었고 학교의 교육 시스템에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고 한다.
에두르지 않고 불편한 질문부터 던졌다.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사이버대학에 대한 편견이 있지 않냐, 누구나 입학할 수 있다 보니 이곳에서 학사 학위를 받는다 한들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윤소영 교수와 장연주 학생회장이 공통으로 얘기하는 장점은 여기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다른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피아노에 열정은 많지만 늦은 나이에 입시곡 준비하는 게 어려운 사람에게는 그런 부담 없이 입학해 학사 학위 취득을 할 수 있는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게다. 피아노 관련 다양한 자격증을 따는 데에도 유리하다. 예컨대 특정 수업들을 이수하면 국가 공인 문화예술교육사 2급 자격증을 딸 수 있다.
장연주 학생 : "의외로 음대 전공하다가 여기 다시 오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교수진도 훌륭하고 학비도 적게 드니까요. 대학원까지 염두에 두고 오는 분들도 많습니다. 여기서 학사 과정 밟고 대학원을 지원하면 대부분 합격하더라고요. 일단 본인이 실력도 되고 열심히 하는 것도 있겠지만, 이곳 교수님의 티칭이나 레슨이 먹힌다는 거잖아요."
윤소영 교수 : "사이버대학교 피아노과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수준이 낮지 않습니다. 여기 교수들이 다 일반 대학에서 가르치시다 온 분들인데, 여타 학교들과 학생들 수준을 비교했을 때 뒤처짐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우리 피아노과 신입생들을 보면 기초적인 수준부터 아주 잘 치는 학생까지 골고루 있는데,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맞춤형 교육이 제공되고 있고 잘 치는 학생들의 비율이 낮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면면을 보면 의사, 경찰, 주부 등 각자 하는 일도 다양하고 나이도 많지만, 부산에서 비행기 타고 와서 2주에 한 번씩 대면 레슨 받고 가는 학생도 있을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한단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직장인인 40대 나이의 장연주씨 또한 그런 경우였다.
장연주 학생 : "2017년에 서울사이버대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아버지는 성악을 하시고 어머니는 교육자인데 제 이름을 '연주'라고 지어주실 정도로 제가 음악 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저도 피아노가 싫지는 않았지만, 다른 진로를 선택했는데요. 교회에서 성가 반주도 하고 지휘도 하다 보니, 뭔가 좀 갈증을 느꼈어요. 서양 음악사, 음악 이론, 화성학과 음악분석 같은 이론적인 부분을 좀 공부하고 싶었는데, 다른 교회 지휘자분이 서울사이버대학교 피아노과를 소개해 주셨어요. 제가 세 아이의 엄마고 직장도 다니니 전적으로 대학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저한테 딱 맞는 학교였어요."
원래 이론 강의 위주로만 들을 생각이었는데, 실기 교수진이 워낙 좋아 대면 레슨까지 신청하게 되었다고 한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실기지도 교수진을 보면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학장을 역임했고 피아니스트로서도 명성 높은 이경숙 교수를 필두로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들이다.
학교 연습실의 피아노도 야마하 그랜드이고 파이프 오르간도 있을 정도로(오르간실기 수업도 있다) 시설이 좋아 뭔가 제대로 배운다는 느낌이 들었단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게 아니고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 집에서도 사일런트 피아노로 새벽 2시까지 연습했다고 한다.
실기 수업은 수준별로 피아노실기1부터 피아노실기8까지 총 여덟 과목이 개설되어 있다. 실기 수업의 숫자가 올라갈수록 난이도 있는 곡을 배우는데, 각 과목마다 시대별로 다른 레퍼토리와 테크닉을 다루고 있어서 정해진 순서대로 수강해야 한다. 피아노 실기1을 소화하기 힘든 기초 수준 학생의 경우는 따로 기초 피아노 수강 안내가 나간다.
윤소영 교수 : "우리 학교는 실기 과제곡마다 콘텐츠가 다 만들어져 있습니다. 교수들이 미리 동영상을 찍어 놓는 거예요. 우리가 온라인 학교니까 다각도로 찍는 기술이 발달해 있어서, 그냥 대충 유튜브에서 나오는 그런 게 아니고 손의 움직임을 위·아래·옆으로, 그리고 페달까지 모든 움직임을 다 잡는 거죠.
이 수업을 온라인으로 들은 학생들이 오프라인 대면 레슨 일정을 잡아서 교수에게 일대일로 레슨을 받습니다. 지방이나 외국에 거주해 대면 레슨을 받기 어렵다? 그런 경우는 실시간으로 온라인 레슨을 받습니다. 학생 중에는 제주도, 카타르, 일본, 중국, 캄보디아, 미국 거주자도 있거든요."
대면 레슨은 한 학기에 4회, 6회, 8회 중에서 학생이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학생(9명)에게는 야마하 디스클라비어 자동연주 피아노를 이용해서 러시아 음악학교의 교수에게 직접 실시간 원격 레슨을 받는 기회도 제공한다. 장연주 학생은 2018년 1학기에 디스클라비어 수업에 참여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풀어놓는다.
장연주 학생 : "솔직히 상상이 안 됐어요. 어떻게 내가 치는 소리가 러시아까지 실시간으로 전달이 되는지 말이에요. 그쪽은 아침 시간이고 우리는 오후 시간이었어요. 화면을 통해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학교에 있는 디스클라비어 피아노로 연주하면 러시아에 있는 디스클라비어 피아노에서 제 연주가 실시간으로 건반 터치와 페달링까지 정확하게 재현이 되는 거예요. 그렇다 보니 섬세한 부분까지도 티칭이 가능하더라고요. 교수님이 통역을 해주셔서 레슨 받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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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사이버대학교의 야마하 디스클라비어 시연 장면 서울사이버대학교 피아노과에서는 야마하 자동연주 피아노 디스클라비어를 이용해 정기적으로 러시아의 명문 음악학교 교수로부터 실시간 원격 레슨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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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승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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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에 진심이라면... 길은 있다
미래의 후배들에게 학교생활 관련 조언을 부탁했다. 기본 교육 과정 외에도 특강이나 마스터 클래스, 연주회가 수시로 열리니 열심히 참여하면 연주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거란다. 마지막으로 윤소영 교수에게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윤소영 교수 : "제가 여기 처음 부임했을 때 받은 학생이 있는데, 이 학생이 한 마디 이상을 못 치더라고요. 우느라고요. 너무너무 긴장하는 거예요. 자기가 못 친다고 생각하고, 교수가 쳐다보고 있으니까 떨리고. 저희가 학내 연주회를 많이 하는데, 그 학생이 준비 과정에서 너무 많이 낙오했어요. 내내 긴장해서 우느라고요. 그런데 나중에는 상당히 어려운 곡을 완주하고 졸업했어요."
취재하고 나니 기대 이상이라 더욱 관심이 커졌다. 입시에 대한 부담감이나 무대 공포증이 있는 사람, 직장 때문에 대면 강의 참가가 어려운 이에게는 상당히 훌륭한 대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인터뷰 녹음 파일을 재생하며 글을 쓰다가 마침 옆에 놓인 서울사이버대학교 신∙편입생모집안내 책자의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한때 인상적인 광고 멘트로 인기를 끌었던 '서울사이버대학을 다니고 내 인생이 달라졌다'라는 문구가 들어왔다. 다만 '내 인생'이 '내 연주'로 읽힌 것은, 내가 피아노에 나름 진심이기 때문이겠지.
나이 오십이 눈앞이니 인생이라는 자동차에 연료가 생각보다 얼마 안 남았다는 조바심이 든다. 그렇다면 같은 궤도를 맴도는 차를 세워 더더욱 원하는 곳으로 곧장 달려가야 하지 않을까? 인생은 한 번뿐인데, 언제까지 하고 싶은 것 미루며 살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