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2명, 6.1 지방선거가 배출한 당선인 수입니다. <오마이뉴스>는 그중 눈길이 가는 지역 일꾼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
'더불어민주당 82.0% vs. 진보당 0.9%'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이 지난 1월 20일부터 22일까지 사흘간 순창군민에게 물은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다(전북 순창군 거주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을 참조하면 된다).
'손충호 50억 8885만 8000원 vs. 오은미 40만 3000원'
지난 1일 치러진 순창군 전북도의원 선거에서 1대 1로 맞붙은 더불어민주당 손충호 후보와 진보당 오은미 후보의 재산신고액이다.
'더불어민주당 손충호 44.07% vs. 진보당 오은미 55.92%'
더불어민주당 지지가 압도적인 순창군의 전북도의원 선거 결과다. 오은미 후보는 55.92%(9977표)를 득표하며 44.07%(7862표)에 머문 손충호 후보를 2000표 넘게 앞섰다. 정치는 지역 기반이 탄탄해야 하고 선거를 치르려면 자금이 있어야 한다는 통설을 감안했을 때 손충호 후보와 오은미 후보가 처한 여건은 비교 자체가 안 된다. 그런데도 진보당 오은미 후보의 승리라는 결과가 나왔다.
"제가 2004년부터 정치를 시작해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8~9대 (순창군) 도의원을 하면서 전국 최초로 '밭직불금'을 만들어 냈고, 그때부터 농민수당 연 100만 원 지급을 제안했어요. 농민, 노동자,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지만 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누군가는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보의 가치는 결코 포기할 수 없어요."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5월 20일 오은미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압도적인 순창에서 진보당을 고집해 출마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방선거 사전투표 이틀째인 지난 5월 28일 선거사무소에서 다시 만난 오 후보는 "바닥 민심이 어떠냐"는 질문에 이런 답을 내놓았다.
"우리가 놓지 않았는데 스스로 놓아서, 자생적으로 어떤 들불이 번지고 있는 그게 민심이지 않나요? 그동안 힘 있는 민주당을 계속 믿어봤는데 그게 아니고, 이젠 제대로 진짜 우리를 위해서 일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아시고, '제대로 일해라', '오은미, 이제 네가 가서 주민들을 위해 일을 해야 되지 않냐' 이런 민심이 자생적으로 들불이 되어 번지는 것을 느껴요. 책임감이 막중한 만큼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공무원들이 긴장하고 있다"
오은미 전북도의원 당선자는 당선 확정 이후 순창군민들에게 감사 인사하랴, 회장을 맡고 있는 전북여성농민회연합 회의에 참석하랴, 지방을 다녀오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 4일 저녁 9시가 넘어서야 순창읍에 있는 선거사무실에서 오은미 당선자를 만날 수 있었다. 1시간 40분간 오 당선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8년 만에 전북도의회에 입성하게 된 소감은 어떤가요?
"한 번도 민심을 의심해본 적은 없어요. 드디어 기회를 주셨는데 준비도 되어 있고 잘할 자신도 있어요. 기자 분들이나 도청과 의회 공무원들이 문자와 전화를 많이 주세요. '공무원들이 긴장하고 있다'고요.
예전 동료 의원들도 연락하셔서 '오은미가 들어가면 의회가 진짜 의회다워지겠다', '의회가 자기 기능을 못 했었는데 오은미가 예전처럼만 하면 된다' 등 격려를 주시니까 자신감이 더 생기네요."
- 2006년 비례의원, 2010년 지역구 도의원을 하고 8년이 지나 당선됐는데 그때와 바뀐 건 무엇인가요?
"2009년도에 쌀값이 완전 폭락했어요. 직불금 조례는 우여곡절 끝에 통과시켰는데 예산을 안 세웠어요. 예산을 세우라고 단식했죠. 전북 쌀직불금을 6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증액시켰어요. 2010년 선거 때 어르신들이 '농민 위해서 밥 굶어준 사람은 오은미밖에 없다'고 그러셨어요. 주민들이 '우리가 이번에 오은미를 도와야 된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절대 밥 굶지 말라'고 우시는데, 진짜 감동이었죠.
순창 분들이 2012년도에는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을 당선시켜 주셨어요. 순창은 늘 새로움과 변화에 대한 갈급함이 있어요. 이번에는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더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어요. 지역에서 유지를 하고 기득권을 가지셨던 분들도 새롭게 표를 주셨어요. 그 표정이 되게 좋은 거예요. 마지못해가 아니라 '난 너에게 이제 기꺼이 표를 줄 수 있어' 이런 표정이요."
- 신고한 재산이 40만 3000원이던데 정치를 어떻게 계속해 왔나요?
"그것도 남편 거지, 제 재산은 마이너스 통장 6000만 원이에요. 어떻게 살아가느냐, 좀 더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하기 때문에 재산이 없는 건 큰 문제는 안 되는데, 이제는 민폐가 걸리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가치와 신념이 있더라도 정치인의 입장에서 설득력이 떨어질 수도 있고, '너희들도 저런 식으로 살면 저렇게 돼' 손가락질당할 수도 있다는 게, 여전히 물질, 돈의 가치가 우선이다 보니까 심적으로 많이 힘들 때가 있죠."
"손 흔들어준 아이들한테 4년 후 제대로 평가받고 싶어"
- 지난 1월 <열린순창>이 실시한 순창군민 여론조사를 보면 진보당 지지도가 0.9%였는데요.
"제가 민주노동당 때부터 했던 운동이 거의 20년 되잖아요. 더불어민주당의 아성을 깨지 못한 건 맞아요. 주민들에게 '너네는 옳기는 하고 좋긴 하고 고맙긴 한데, 마음은 주지만 곁을 줄 수 없는' 그런 존재였어요. 이번에는, 그동안 변함없이 주민들을 위해서 좀 더디고 볼품은 없지만 꾸준하게 일을 해왔다는 점을 알아주시고, 제대로 일해보라고 선택해주신 것 같아요."
- 사전 투표일에 만났을 때 '민심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고 표현했는데, 어떤 민심을 느꼈나요?
"어르신들이 전폭적으로 '여하튼 무조건 오은미야 오은미' 하세요. 다들 놀라시죠. '왜 이렇게 오은미 오은미 하냐'고. 다른 후보 운동원과 지지자들도 저한테 '여기 가도 저기 가도 오은미밖에 모른다'고 이야기를 해주세요. 저는 그게 민심이라고 느꼈어요. 진보정당의 몫이 있고 진보정당이 제 역할을 해줬을 때 기존 정당도 변해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 전북도의원 지역구 당선자 36명 중에서 35명이 민주당이고 혼자 진보당인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게다가 36명 중에서 22명이 무투표 당선이에요. 의회 기능은 비판과 견제인데, 일당 독점인 상황에서 많이들 걱정하고 계시죠. 실제로 예전에는 아무리 좋은 조례라도 '쟤네, 쟤한테 주면 안 돼' 하는 게 있었어요. 그땐 도민의 여론을 모아서 일했죠. 지금은 3선이라는 무게감도 있고 함부로 무시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 전북도의회에 가면 가장 먼저 어떤 일을 할 계획인가요?
"두 가지가 있는데 순창군을 포함한 인구소멸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1인당 연 120만 원 '거주수당' 지급을 새롭게 제가 공약했잖아요. 7월 첫 회기가 개원하자마자 거주수당에 대해서 이슈를 좀 만들어 의제화, 공론화하려고 해요. 인구소멸이 농촌에서 심각한 문제인데 해법이 뚜렷하지 않아요. '농민수당'은 기존 정책을 더 확대하려고 해요."
- 4년 후에 어떤 평가를 받고 싶나요?
"청소년들이 정치에 새롭게 눈을 뜨는 걸 느꼈어요. 저를 연예인 보듯이 반갑게 손 흔들어주고 응원해 준 아이들한테 4년 후에 제대로 평가받고 싶어요. '진짜 잘했어요' 그런 이야기를 꼭 듣고 싶어요. 아이들의 눈에 비친 정치, 정치인의 모습이 어떤 건지 확실히 보여줘야죠. 아이들이 순창에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게 뭘까 진지하게 공부하고 노력해야죠."
오은미 당선자는 주민들 이야기를 할 때면 울컥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는 이야기와 함께 주민들과 찍은 사진들이 숱하게 올라온다. 한 주민은 "어딜 가도 오은미는 어김없이 나타난다"며 "순창군민과 도민들이 잘살아갈 수 있도록 더욱 힘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선거사무실 한쪽 벽에는 2009년 단식하던 때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있다. 그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오 당선자는 "주민들과 함께하겠다"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