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랑은 '겨우'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인데요. 책 제목에서 꼴랑이란 말을 보니까 괜히 반갑더라고요. "야, 니 꼴랑 이거가꼬(이거 갖고) 그라나(그러니)?", "꼬올랑? 꼬올랑? 니 지금 내보고 꼴랑이라 했나?" 이런 식의 대화를 했던 어린 시절 생각도 나면서 말이죠.
이 책은 제목처럼 자신을 '꼴랑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엄마가 '일종의 어른'이라고 말하는 아들 둘의 '엉뚱하지만 뼈 때리는' 말 대잔치를 모아 만든, 육아일기 같은 책인데요. '꼴랑'이라는 단어처럼 뚱이, 뚱삼이(아빠는 뚱일)가 기발하고 웃기면서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어 술술 읽히는 책이었습니다.
정이 많고 똘똘한 아이들, 뚱이와 뚱삼이
보다가 웃겨서 화장실 가는 저희 엄마를 따라가며 읽어줬던 부분이 있어요. 크리스마스가 다 되어 작가인 엄마가 아들들에게 물어요. 이때 뚱삼이(초3)의 말이 재치가 넘칩니다. 경상도 억양을 상상하며 읽어보세요.
"너희들 산타한테 무슨 선물 받고 싶어?"
"엄마!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솔직히 진짜 솔직히 진심으로 말씀해주셔야 해요!"
"그래 알았어, 뭔데?"
"있잖아요, 엄마! 산타 없죠? 그거 엄마죠?"
"산타는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거야. 넌 선물을 주는 사람이 엄마면 좋겠어? 산타면 좋겠어? 당연히 산타면 좋겠지?"
"아니요~ 저는 당연히 산타가 엄마인 게 더 좋아요!"
"엥, 진짜? 왜? 그럼 산타가 사라지는 건데?"
"엄마! 생각해보세요. 엄마는 사랑하는 사람한테 받는 선물이 좋겠어요? 잘 모르는 할배한테 받는 선물이 좋겠어요?"
으하하, 산타를 졸지에 잘 모르는 할배로 만들어 버리는 부분에서 웃음을 참지 못했어요. "그래 뚱삼아, 잘 모르는 이모(?)도 본 적도 없는 할배말고, 사랑하는 엄마한테 받는 선물이 더 좋을 것 같긴 하다!"라고 저도 모르게 대답할 뻔했다니까요.
이렇게 아이가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을 보면서 저는 이 가족이 함께하는 풍경이 그려졌어요. 가만히 보면 엄마가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 말에 집중하며 대화해요. 거기에는 '존중'하는 마음도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고요. 아이들 말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말이죠.
그래서 어떤 말들은 버릇없다고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근데 대체 말대꾸가 뭐예요? 아니 물어봐서 대답 안 하면 대답 안 한다고 화내고, 물어봐서 내 생각을 얘기하면 말대꾸한다고 화내고. 도대체 우리 보고 어쩌라는 말이에요? 잘못을 뉘우치는 게 반성문 쓰는 일이라면 어른도 반성문 써야죠."
헉! 저도 예전에 아이들한테 했던 말인데요. 틀린 말은 아니죠. 그래서 요즘 애들은 이래도 혼나고 저래도 혼나니까 머릿속으로 딴생각하며 무조건 "네, 네" 하고는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난다고 하더라고요. 괜히 길어지면 버릇없다는 말까지 듣게 된다고요.
그런데 저도 무심코 쓴 저 '버릇없다'는 말도 생각해 보니 어른들이 유독 아이들에게 자주 쓰는 '부정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글을 쓰며 알아차렸어요. 작가가 제목에 왜 '꼴랑 어른'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죠.
자신의 존재 이유를 가볍게 생각하며 사는 '어른'들
생각해 보니 오래 전 후배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언니, 저는 우리 딸을 낳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자신이 세상에 존재해 온 이유가 딸을 낳기 위해서였다니. 자식을 낳는 것이 그렇게나 심오하고 벅찬 느낌을 준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렇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은 후배가 부럽기도 했는데요.
자식은 이토록 부모의 존재 이유가 될 정도로 귀한데, 왜 우리는 남의 자식을 볼 때 온전히 존중하지 않고, 마음대로 생각하고, 잘 모를 거라고 단정 지으며 바라볼까요. 내 옆에 있는 누군가의 존재 이유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게 아이일 때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이건 어쩌면 우리 자신의 '존재 이유'를 가볍게 생각하며 살기 때문은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꼴랑 어른' 밖에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죠.
하지만 작가는 이미 엄마로서 '꼴랑 어른'은 아닌 것 같아요. 아이들을 키우며 '제대로 된 대화와 진한 감동의 눈물'을 나누며 뚱이와 뚱삼이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니까요.
그런 점에서 보통의 책들과 다른 점이 이 책에 또 있더라고요. 책을 다 읽고 마지막으로 보게 된 표지의 뒷면에서였는데요. 책뒷면은 보통 이름 있는 작가가 추천하는 말이 적혀있잖아요. 아무래도 판매부수를 높이기 쉬운 방법이니까요.
그런데 이 책은 두 아이의 소감을 적어 놨더라고요. 엄마가 책을 출판하며 추천사 대신 자식들의 말을 써 놓은 것을 보며, 뚱이와 뚱삼이는 결코 '꼴랑 어른'으로 성장하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자기들을 소중하게 대하는 엄마를 보며 크니까요.
책은 '일종의 어른'을 키우는 분들에게는 "우리 애는 이만할 때 어떤 말로 우릴 웃게 해줬지?"라며 추억의 시간을 갖게 해 줄 테고요. 읽고 나면 '꼴랑 어른'이라는 말이 자꾸 생각나 자신을 뒤돌아보게도 해 줄, '그래봤자 꼴랑 어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