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암환자가 되고 나서야 제 삶을 더 사랑하게 됐습니다. 반려자의 보살핌 덕에 더 너그러워졌고, 치료 과정 중 느낀 점을 춤으로 표현하며 밝아졌고, 삶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나를 살리는 춤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기자말] |
함덕 서쪽 해변 입구에서 솟아난 물이 발가락 사이사이를 드나들었다. 큰도물(큰개 입구에서 솟는 물)이라는 제주의 이름을 가진 용천수였다. 물아래 모래는 발 딛는 부분마다 일렁였다. 제주의 바다와 돌이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제주의 자연 속 즉흥춤을 추는 축제에 참여한 지 3일 차, 아침 공연 <굿모닝 즉흥>이 무르익은 때였다.
함덕 큰도물을 동그랗게 에워싼 현무암 층층 안에서 고개를 위로 올렸다. 내 키보다 조금 더 높이 쌓인 돌담 위에선 춤벗들이 동그랗게 선 채로 출렁였다. 손과, 팔과, 어깨와, 고개가 자유롭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 반대편에 앉은 제주 사람 몇몇은 우리의 공연을 지켜봤고 어떤 이는 함께 돌 위에서 춤을 추었다.
그들을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발아래 담을 어루만지며 나 역시 움직였다. 천천히, 조심스레, 모든 순간을 만끽하던 중 발견했다, 모래 바닥 위에 박힌 알루미늄 캔을.
음료 캔은 마치 갈비뼈를 드러낸 사체 같았다. 캔의 몸체를 구성하던 부분의 반이 바깥쪽으로 고개를 쳐든 모양이었다. 캔을 끄집어 내자 그 속에 담겼던 모래와 물이 흘러내렸다. 텅 빈 캔의 뱃속이 보였다.
너는 어쩌다가 이런 모습으로 여기에 있게 된 거니.
한 손에 캔을 들고 다른 손으로 돌담을 쓰다듬으며 춤을 이어갔다. 어제 들은 이야기가 마음속에서부터 올라왔다. 이곳은 아주 드물게 남아있는 용천수 터라고, 지금은 물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썰물 때 안으로 들어오면 바닥으로부터 보글보글 올라오는 용천수가 보인다고. 공연 시작 전 지나친 표지판도 떠올랐다. 이곳으로 내려오는 돌계단 옆 설치된 안내판이었다.
'큰도물. 용천수는 제주 마을 형성의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소중한 자연유산입니다.'
누구나 출입할 수 있도록 열어놓은 곳, 그 옆에 공간의 이야기를 전하는 표지판. 그 안에서 발견한 캔 쓰레기. 누가 여기까지 들어와서 캔을 버리고 갔던 걸까. 그런데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만남이 이어졌다.
돌담 사이에 손바닥만 한 그릇 조각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캔을 발 옆에 내려놓고 두 손으로 조각을 잡았다. 힘을 다해 당겼지만 뽑아낼 순 없었다. 단단히 끼어 있었다. 너는 또 어떻게 여기 있게 된 거니.
어쩌면 누가 여기까지 와서 버리고 간 게 아닐 수도 있겠다. 어제 저녁 근처에서 봤을 때 이 안은 완전히 바닷물에 차있었다. 어쩌면 언젠가 누군가 바다에 쓰레기를 버렸고, 그 흔적이 밀물에 휩쓸려 여기까지 온 걸 수도 있겠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낮은 확률로 이뤄진 우리의 만남. 이상하게 이 쓰레기들이 신경 쓰였다. 이들과 춤을 추고 싶었다.
모든 것들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배가 드러난 캔을 들고 해변가로 향했다. 물에 젖은 현무암을 밟고 지나가는데 돌 사이 폭죽 껍데기가 걸려 있었다. 들어보니 종이로 된 부분이 바닥으로 축 쳐졌다. 양손으로 잡아당기면 바로 찢어질 것처럼 물렁했다.
이 해변가 바로 앞에 자리 잡은 숙소에 묶은 어젯밤, 폭죽 소리를 들었다. 제주 밤바다를 비추는 빛과 웃음소리라니. 아름답다 여겼다. 그 시공 속 사람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 로맨틱이 사라진 자리에는 폭죽 껍데기만 남았다.
왼 손가락 끝으론 캔을, 오른 손가락 끝으로 폭죽 포장지를 들고 돌 사이를 빠져나갔다. 돌과 물과의 일체감 속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울 때, 이 쓰레기들을 만났다. 예전이라면 혀 한 번 끌끌 차고 지나쳤을 테다. 이들에게 마음이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다르다. 내가 만나는 모든 것들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없으면 큰일 나는 휴대전화, 거실 창 너머 에어컨 실외기 위 뿌려놓은 빵 조각을 쪼아대는 동네 새들, 집 앞 나뭇가지 잎이 하늘에 만드는 잎 그물들, 내가 사랑하는 동반자 '한몬'과 반려묘 '웅미', 포인트 적립을 위해 내 이름을 불러 확인하는 동네 마트의 매니저님까지 모든 게 귀하게 보인다.
이상한 일이다. 몸 둘 바 모를 만큼 이 순간에 만나는 모든 존재에 감사할 때도 있다. 이런 감각은 낯설다.
사람이 크게 아프고 나면 삶을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진다고, 한 친구가 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가 보다. 갑작스럽게 암 진단을 받았던 이전의 방식으로 내 몸과 삶을 대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몸에 삶을 맡겼다. 우선순위는 내부의 느낌과 감각 그리고 움직임이다. 내부 감각의 이끌림 대로 몸 부분부분을 움직이다 보면 가벼워진다. 스스로 목에 매달았던 인정 욕구, 머리로만 겨냥했던 이상적인 목표들이 땀 흐르듯이 배출된다.
춤에 삶을 맡겼다. 움직임이 춤이 되는 예술을 배우며 얻은, 나와 춤벗들이 움직임으로 어우러지며 느낀 깨달음(1~5편에 느꼈던 것들)을 일상으로 가져왔다. 그러자 이전과 다른 가치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상식이 흔들렸다. 인간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돈을 벌며 삶을 꾸려가야 한다고 배웠다. 경쟁에서 우위에 설수록 칭찬받았다. 하지만 항암 치료를 받던 때의 나는 독립적인 삶과 거리가 멀었다. 주변의 돌봄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했다. 지금도 무수히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과거라고 아니었을까. 나와 연결된 무수히 많은 이들이 한 손, 한 손 이어져 나의 성취가 가능했다. 나 혼자 잘나서 내 능력으로만 가능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3년 내 재발률이 높은 암이기 때문에 3개월마다 검진을 받아야 한다. 한의학에서는 5년은 지나야 몸이 회복된다고 말한다. 가능성의 일이긴 하나, 암의 재발은 평생 나와 함께 할 것이다. 생의 문제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이전처럼 주 5~6일 회사를 사랑하며 일하는 방식은 이제 나에게 적합하지 않다. 노동의 대가 역시 이전처럼 안정적으로 월 삼백 가까운 돈을 받지 못할 것이다. 충분한 화폐 자본을 벌지 못하는, 독립적인 삶이 불가능한 나는, 현대 사회의 인간인가? 나는 이 시대에 적합한가? 나는 인간이 맞는가?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성인 여자'라는 단어에 연상되는 특정한 이미지가 내 안에 있었다. 하지만 항암 치료를 받던 때의 나는 성인 여자라고 보기 어려웠다. 머리카락을 비롯해 온 몸의 털이 빠졌다. 난소 기능은 정지됐다. 즐겨 입던 페미닌 스타일 원피스를 도저히 입을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여자로 볼 수 있나? 그때는 아니고 털이 자란 지금은 여자인가? 난소 기능 회복으로 여성 호르몬이 나와야 여자인가? 나는 여자가 맞는가?
질문들 속에 내가 당연시했던 '인간'과 '여자'에 대한 관념을 부술 수밖에 없었다. 아픈 사람이나 장애가 있어야만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생명은 누구나 도움받아야 사는 존재다.
'독립적인 경제 주체로서의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그런 인간이 되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털의 길이와 자궁의 여부, 난소 기능 여부 따위로 특정 인간을 여자로 부를 수 없다. 그런 기준으로 인간을 평가하고 정체성을 재단할 수 없다. 인간은 생명일 뿐이다.
그 생명의 파노라마 위에서 우리는 또 다른 생명인 바다에 쓰레기를 흘려보내고, 습관적으로 소모품을 쓰레기로 버린다. 그 세상에서 내 안의 또 다른 작은 생명인 세포는,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처럼 무한 증식하며 암세포로 변해버렸다. 아이러니하게 그들이 죽음을 거부하며 늘어날수록, 그들이 살고 있는 내 몸은 죽음에 가까워졌다.
P53이라는 암 억제 유전자가 있다고 한다. 인간 몸속 세포가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상황에 처했을 때, 몸의 컨디션이 정상이라면 암으로 가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수술과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받기 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P53이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미리 내 몸을 돌봤으면 좋을 텐데.
우리 인간도 지구에 그랬으면 좋겠다. 지구 몸속 생명이 암으로 바뀌기 전에, 암세포가 전신에 퍼져 무한 증식하다가 결국 지구와 함께 죽어버리기 전에 알았으면 좋겠다.
만약 지구의 암이 이미 모든 땅과 바다에 퍼져있는 상태라면, 끝장이 나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 나와 너와 우리가 함께 움직이며 몰입하는 기쁨을 느끼다보면 누구나 알 것이다. 뭐가 제일 중요한지.
[곽승희의 암과 함께 춤을]
① 삭발하고... 애인과 부모님 앞에서 춤췄습니다 http://omn.kr/1yc2e
② 시장통 농협 앞에서 춤춘 날, 그는 눈을 떼지 못했다 http://omn.kr/1yl8a
③ 항암 약물을 거부하는 몸이 알려준, 그래도 괜찮은 삶 http://omn.kr/1yu32
④ 혼자 살 땐 몰랐다, 내 짝꿍이 '요리 천재'라는 걸 http://omn.kr/1yy58
⑤ 벌레, 개미, 말... 작은 것들의 삶에서 내가 깨달은 것 http://omn.kr/1z88c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