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이었다. 캐니다 몬트리올에서 세계이동권 워크숍에 참여했을 때였다. 어떤 섹션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질문을 하면서 한국의 장애여성운동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잠시 후 독일에서 페미니스트활동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이 다가와서 한국의 장애여성운동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여러 질문을 했다. 특히 장애여성성폭력사건에 대한 관심이 컸다. 무엇보다 장애여성 성폭력사건 대응에 있어서 페미니즘 관점의 중요함을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 장애여성운동의 성과를 그녀는 놀라워했었다. 특히 전국에 장애여성만 전문으로 하는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가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도 놀라워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외국에 나가서는 한국의 장애여성운동 성과를 자랑도 하지만, 국내에서는 답답할 때가 많다. 마치 장애여성이 자기 집안에서는 목소리 내기가 어려운 것처럼. 국내에서 특히 여성전담부처인 여성가족부(아래 여가부) 관계자들을 만날 때면 장애여성운동가로서, 당사자로서 막막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장애여성은 여성이 아닌가
장애여성운동을 처음 시작하던 초창기, 어느 해였다. 한국의 '여성정책 몇 개년 계획'을 제안하는 자리였다. 이때 나는 모든 여성에 관한 정책이니까. 장애여성정책도 필요하다고 제안을 하였다. 그런데 전체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것 같은 분위기.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또 어느 때인가, 여가부 회의에 참석했다. 여성지원에 대한 회의였다. 역시 나는 장애여성 지원에 대한 안건을 냈다. 그러자 '장애여성은 보건복지부에서 지원받을 수 있지 않느냐'라는 말을 여가부 공무원이 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화가 나서 '장애여성은 여성이 아니냐? 왜 장애여성은 보건복지부여야만 하느냐?' '언제까지 장애여성을 복지부 담당이라고 떠넘기고, 복지부는 여가부에 가라고 하고, 여가부는 복지부에 가라고 할 것이냐', '대체 언제까지 장애여성도 여성이라고 말을 해야 하느냐'는 말을 남기고 나왔다.
장애여성성폭력 피해자를 가족으로부터 분리해야 하고, 그러려면 긴급하게 쉼터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상담원들은 마음이 조급해진다. 비장애여성 피해자 쉼터는 전국에 있다. 그러나 장애여성도 여성이니까 라며 마음 놓고 편하게 연락해 볼 수가 없다. 혹시 쉼터 입소 가능성을 알아보면 '장애'라는 말을 하는 순간 '우리는 장애인은...' , '우리는 돌볼 수가 없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전히 장애여성은 보호와 돌봄 의존적인 장애인으로만 대우할 뿐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아니, 장애여성이 겪는 성폭력 피해에 대해서, 가정폭력에 대해서 상상이라도 했다면 돌봄의존적이라도 쉼터 입소가능성을 열어놨어야 하지 않나.
장애여성이 이동을 하면서 경험하는 것들에 대하여, 장애여성이 활동지원을 이용하면서 경험하는 것에 대하여, 장애여성이 노동현장에서 경험하는 것에 대하여, 장애소녀가 교육현장에서 경험하는 것에 대하여, 장애여성이 시설 안에서 경험하는 것에 대하여, 장애여성이 가족 안에서 경험하는 것에 대하여, 장애여성이 지역 내에서 경험하는 것에 대하여 여성인권전담부처인 여가부는 어디쯤에서 있었을까. 그 거리는 가늠하기도 어렵다.
장애여성을 각 장애 유형과 각 장애 정도와 상관없이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가진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오로지 보호와 돌봄의 대상으로 여전히 타자화하면, 장애여성의 성폭력 피해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조차 불가능하다.
젠더관점으로 장애여성의 인권에 접근하는 정부부처가 필요
장애여성이 자기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젠더 관점에 기반을 두지 않으면 장애여성의 삶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 여가부가 비장애인중심의 관점으로 접근했기에 장애여성들은 여가부가 내놓은 정책에 대해 실망할 만했다. 장애여성도 여성으로서 가부장제의 억압과 차별에 고스란히 놓여있음을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여가부의 태생적 숙명 과제는 차별받는 여성의 인권을 젠더관점으로 평등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장애인정책으로 표상되는 남성중심적 복지정책으로는 장애여성의 삶을, 장애여성의 인권을 보장하기 어렵다. 젠더관점으로 장애여성의 독립과 활동지원, 주거지원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성평등추진체계는 필요하다. 장애여성은 여전히 여성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며,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논의 밖에 있다. 성폭력상담이나 해결과정에서 장애여성의 입장에서 장애여성을 대상화하지 않는 방법을 정부를 비롯한 국가기관은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불쌍한 장애여성으로만 취급하거나 피해를 호소해도 의심하는 경찰이나 검찰, 재판부 등 국가기구의 태도로 인해 장애여성의 결정권이나 주체성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여가부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다. 여전히 장애여성은 가부장적 억압에서 자유롭지 않기에 여가부를 폐지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리고 장애여성이 위치한 장애, 젠더나 섹슈얼리티 외에도 나이, 계급, 학력의 복잡한 차별의 사회구조에 주목하는 성평등추진체계가 필요하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겪는 성차별의 문제를 공동의 과제로 삼고 정책을 세우고 집행할 성평등전담부서는 필요하다. 장애여성에 대한 차별, 가부장적이고 비장애인중심적인 정상성 기준이 가로막고 있는 장애여성이 겪는 차별에 대해 더 진지하게 논의하고 심도 있는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성평등전담부서는 필요하다. 우리는 정상성 기준으로 운영되는 여성가족부가 아닌 다른 여성들이 공존하는 성평등정책을 수립하는 행정부처를 원한다.
누구도 장애여성에게 동등한 시민권이 있다고 말할 수 없기에, 여가부는 그나마 장애여성 인권을 유일하게 젠더관점으로 동지가 되어줄 행정부처이기에, 여가부 폐지에 동의할 수 없다. 그동안 장애여성에게 필요한 정책들을 제대로 마련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사라져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장애여성의 인권이 평등하게 보장되는 날, 그날 나는 여가부 폐지에 동의 할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