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사는 졸업하고 찾아오는 제자가 없어서 서글퍼요."
몇 해 전 독서 모임에서 만난 특수반 선생님의 고백이 머릿속을 맴돈다. 교사는 만나는 학생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가르침을 인정받았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졸업해서 잘 큰 제자가 찾아오면 내가 키운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그러나 '교사'라는 직함을 나누고 있는 특수교사들이 이런 좋은 감정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것만이 아니었다. 특수학급, 특수교사, 특수학생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학교에서 특수반은 고립되어 있고, 그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은 소외되었다. 학교 건물에서 가장 접근하기 편한 1층에 특수교실이 있지만 찾아가는 사람은 적다. '통합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장애를 가진 학생이 교과 수업에 참여하지만 그들에게 맞는 수업은 아니다.
수업에서 소란이라도 벌어지면 특수교사가 호출된다. 올라온 선생님은 죄를 진 것처럼 아이를 데리고 특수교실로 숨는다. 보이지 않는 그들을 찾는 사람은 없다. 특수학급, 특수학생, 특수교사에 붙은 'Special'은 영문을 번역했을 뿐 학교에서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는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했다. 아니 모른 척했다. 조금 다른 학생들을 대하던 나의 행동을 돌이켜보자. 처음 만난 학생은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주로 자신이 느낀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했다. 나는 그에게 역사 수업이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특수반에 가서 그에게 맞춘 수업을 듣는다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만난 학생은 그냥 멍하게 있는 게 안쓰러웠다. 그래서 특수반 선생님께 책을 추천받아 읽도록 했다. 그다음에 만난 학생에게는 경험을 적용해서 만화로 된 쉬운 책을 가지고 들어가서 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나의 통합교육은 거기서 멈춰서 있다.
탬플 그랜딘의 경험
자폐를 가진 사람 최초로 자기 이야기를 쓴 템플 그랜딘의 경험은 달랐다. 1950~60년대 미국에서 공교육을 경험한 그녀는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을 학교에서 만났다.
"과학 선생님인 칼록은 고등학교 시절 나의 가장 중요한 스승이다. 내가 정규 고등학교에서 쫓겨나자 부모님은 정서 장애를 지닌 영재들을 위한 기숙학교에 나를 입학시켰다. 나는 열두 살 때 웨슬러 지능지수 검사에서 134를 기록했지만 공부에 완전히 흥미를 잃어 성적은 형편이 없었다. 학교의 다른 선생님들이나 전문가들은 내가 이상한 것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고 나를 정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칼록 선생님은 내 관심 분야를 이용해서 내가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문 같은 시각적 상징에 대해 이야기하자 선생님은 철학책을 갖다 주며 격려해 주었다. 또 심리학자와 의사들은 압착기를 없애 벌리고 싶어 했지만 칼록 선생님은 내 편을 들어주었고 한 걸을 더 나아가 내가 바른 길에 관심과 열정을 쏟을 수 있게 이끌어 주었다. 선생님은 압착기가 왜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지 알고 싶으면 과학 공부를 해보라고 말해 주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되면 왜 압력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지 알 수 있게 될 거라는 것이었다. 괴상한 장치를 빼앗아 가는 대신, 내가 공부하고 좋은 성적을 받아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자극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 템플 그랜딘,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120-121쪽.
칼록 선생님은 그랜딘을 정상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고, 그녀가 가진 특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것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왔다. 이후 그녀는 동물학자로 성장해 동물복지를 배려한 가축시설의 설계자가 되었다. 그랜딘은 창의적인 사람들과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이 자신을 성장시켰다고 분명히 말한다.
먼 나라와 옛날이야기만이 아니다. 신경 다양성 관점에서 개별화 교육을 실시하는 사례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나는 수업시간에 철민이에게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말할 때면 죄책감이 밀려왔다. 철민이가 괴로워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묵인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에 적어도 한 시간 정도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는 활동적인 수업을 계획했다.
예를 들어 수학 시간에 연습문제를 풀 때 아이들의 손등에 각자 다른 숫자의 스티커를 붙여주고 교실을 돌아다니다 친구를 만나면 그 친구의 손등에 붙어 있는 숫자로 함께 곱셈과 나눗셈을 하는 식이었다. 사회시간에 경제교류에 대해 배울 때는 모둠별로 상점을 차리고 다른 모둠을 방문해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팔도록 했다. 국어시간에는 친구들과 만나 상황과 장소에 맞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 사인을 보내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모두가 일어나서 수업을 하니 움직임이 큰 철민이가 전혀 눈에 띠지 않았다. 철민이는 아주 신이 나서 수업에 끝까지 참여했다. (중략)
움직이는 방식으로 구성된 수업과 짐볼, 스탠딩 책상, 밸런스 패드의 활용은 철민이를 위해 시작했지만 우리 반 모든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아이들은 짐볼과 스탠딩 책상이 자기 차례가 되기를 늘 기다렸다. 초등 단계의 아이들은 대부분 움직임의 욕구가 크다. 그중에서 철민이가 유독 움직임 욕구가 컸을 뿐이다. 그러니 신경 다양성 교실이 모든 아이들에게 잘 맞을 수밖에 없었다." _<민들레134>, 13-14쪽
한 아이를 위한 수업은 다른 아이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된다. 수업마다 새로운 주인공이 출현하면 아이들이 가진 다양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교과서에 있는 글자가 아닌 교실에 존재하는 사람을 배울 수 있다.
특별한 '자폐'만 있을까?
최근 서번트 증후군이 있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가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발달장애 중에서도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 중 10%정도가 서번트 증후군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장애인은 주변 사람들(특히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생활이 가능하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부모의 희생은 꼭 필요하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성장시키기 위한 부모들의 노력은 특별하다. 템플 그랜딘의 어머니는 자폐증의 원인이 엄마의 사랑이 부족해서라는 부정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꿋꿋이 딸을 위해 노력했다.
"내가 6개월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내가 안아주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안으면 몸이 긴장되고 뻣뻣해지는 것을 알아챘다고 한다. 몇 달 후 나는 어머니가 두 팔로 껴안으려 하자, 마치 갇힌 동물처럼 어머니를 손톱으로 할퀴었다. 어머니는 나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의 냉담한 행동에 마음이 상했다고 한다. 많은 아이들이 엄마 품에 안겨 옹알거리는데 우리 아이는 무엇이 잘못됐을까 하고 걱정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자신이 어리고 경험이 없는 탓이라고 생각했다. 자폐 아동을 가졌다는 것은 무척 두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엄마를 거부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을 테니까." _ 템플 그랜딘, <어느 자폐인 이야기>, 17쪽
자폐증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다른 사람의 차가운 시선보다 자녀가 자신을 거부하는 이유를 몰라서 더 힘들었을 것이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In a Different Key-The Story of Autism>에는 자폐증을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이 그 이유를 찾는 위대한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는 그날까지
특수교사가 아쉬워 한 졸업한 제자의 방문 이야기로 끝을 맺어보자.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졸업하고 인생이 잘 풀린 제자가 주로 찾아온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잘 가르쳐서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인과 관계는 잘 성립하지 않는다. 그 아이 스스로 잘 컸을 뿐이다.
교사는 혼자 잘 크는 학생은 그냥 둬도 되고, 삶이 덜컥거리는 아이와 계속 만나야 한다. 학년 말 헤어지는 학생들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당부하며 "평생 AS를 해줄게!"라고 꼭 말한다. 그 말을 기억한 제자에게 전화가 오면 충고하지 않고 가만히 귀를 열기만 하고 듣는다. 이야기가 끝나면 지지하고 응원한다. 그것이 내가 제자에게 힘을 주는 비결이다. 모든 사람은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