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를 지닌 변호사 우영우(박은빈)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화제다. 편견 없이 대해주는 동료들과 '변호사'가 아닌 '자폐인'으로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 선 영우의 모습은 매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영우의 사랑스러움과 주변인들의 따뜻함에 흐뭇해하다가도, 우리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들이 만날 땐 뜨끔해하며 이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
자폐가 있는 동생 정훈이 형을 죽였다는 오해를 산 사건을 다룬 3회 방송분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아들의 변호를 맡은 자폐인 변호사 영우에게 정훈의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참 못난 말인 거 아는데 변호사님 보니까 우리 부부 마음이 조금 복잡했어요. 변호사님도 정훈이도 똑같은 자폐인데 둘이 너무 다르니까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자폐가 있어도 머리 좋은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듣긴 했는데 이렇게 실제로 보니까 마음이 이상했어요. 왜 자폐는 대부분 우리 정훈이 같잖아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기에는 너무 오래 걸리잖아요."
이 대사를 접하고 나는 한 친구가 떠올랐다. 아이를 갖고, 그 아이가 태어나고, 자폐가 의심되고, 자폐로 진단받고 이를 받아들이기까지 모든 과정을 나와 나눈 친구. 자폐가 있는 아이의 엄마인 내 친구는 과연 이 드라마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친구와의 대화는 이 드라마와 자폐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점검하게 해줬다. 대화 내용을 친구의 허락을 받아 공유한다.
자폐인도, 그 가족들도 '천차만별'입니다
- 잘 지냈어? 나 드라마 보다가 네 생각 많이 났어.
"그거 봤구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 그거 보면서 좀 어땠어?
"난 사실 좀 불편한 면이 있었어. 일단, 주인공이 상위 1%에 해당하는 고기능 자폐잖아. 하지만 대다수의 자폐인들은 고기능 자폐와는 반대로 지능저하가 동반돼. 드라마에서는 대체로 극적인 스토리를 위해서 고기능 자폐를 다루는데 사실 자폐인 부모들에게 그런 모습은 일종의 로망이거든. 무언가 박탈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아.
또, 고기능 자폐인에게조차 말투나 행동 등에서 정형화된 자폐인의 모습을 찾으려고 애쓴 흔적이 보여서 그런 점도 불편했어. 사실 고기능 자폐인, 특히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상위 1%에 해당하는 서번트증후군과 유사한 자폐인은 행동과 말투가 도드라지지 않아.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자폐인'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해 어눌한 말투나 어색한 행동 등을 일부러 강조한 것 같아."
- 그랬구나. 하지만, 이 드라마에 대한 호평도 많은 것 같아. 자폐인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리던데.
"좋은 면도 많아. 자폐의 다양한 증상들을 비교적 잘 묘사하고 있더라고. 자폐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 예민한 감각, 반향어, 집착할 만큼 좋아하는 대상이 있는 것 등은 잘 다룬 거 같아. 영우는 예상치 못한 맛이나 자극에 놀랄까 봐 김밥처럼 재료가 다 드러나는 음식을 선호하고, 바깥의 자극을 차단하기 위해 헤드셋을 쓰잖아. 이런 모습들은 예민한 감각을 지닌 자폐인들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장치들이거든.
다른 사람의 말을 반복하는 '반향어'를 설명해준 것도 좋았어. 실제로 많은 자폐인들이 반향어를 사용하는데 그러면서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거래.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기도 해. 또 무지무지 좋아해서 완전히 꽂혀 있는 대상이 있다는 걸 보여준 면도 좋았어. 이런 것들은 자폐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 같아."
친구는 발달장애 부모들의 온라인 카페에서 드라마 관련 반응을 복사해서 카톡으로 보내왔다.
'영우가 너무나 사랑스럽게 그려진다는 걸 높이 사고 싶어요.'
'저는 힐링되는 거 같아요. 울고 웃고 하면서 매번 감동받네요.'
'저는 드라마 보면 마음이 너무 복잡해져요. 감동적이고 힐링되면서도 희망고문을 받고 있는 이랄까.'
'비교적 자연스럽게 자폐인의 모습을 잘 담은 것 같아요. 이를 통해 자폐인을 대하는 시선이 좀 부드러워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출처 : 네이버의 한 발달장애 부모 카페 게시물
- 근데 부모들의 반응이 다 너 같은 건 아닌데? 힐링되고 감동된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럼, 다들 다르게 보지. 아이의 장애 정도, 장애를 받아들인 정도, 그 밖에 서로 다른 심리적 환경적 요인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다 다르게 보지 않겠어? 우리가 서로 다르듯, 자폐인들도 그 부모도 다 달라. 자폐인이니까 이럴 거야 생각하는 게 편견이듯, 자폐인 부모니까 비슷한 생각일 거라고 여기는 것도 일종의 편견 아닐까.
이런 드라마들이 나올 때마다 우려되는 건 드라마 속 인물이 자폐인이나 자폐 가족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비친다는 거거든. 우리가 모두 다 다르듯이 자폐인들도 그 가족들도 모두 다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해."
친구의 말을 들으니 드라마의 3회 영우가 내뱉은 한 대사가 떠올랐다. 영우는 '당신이 자폐인이니 자폐가 있는 의뢰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하는 정명석 변호사(강기영)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폐의 공식적인 진단명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입니다. 스펙트럼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자폐인은 천차만별입니다."
이 대사야말로 우리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 '극복' 성공 스토리는 이제 그만
- 드라마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있어?
"'아스퍼거'에 대해 설명해준 장면이 좋았어. 드라마에서도 나오듯이 자폐를 최초로 연구한 사람 중 한 명이 한스 아스퍼거인데 그 사람은 나치에 부역한 우생학자거든. 한때 고기능 자폐에게 '아스퍼거'라는 진단명을 내리기도 했고, 여전히 어떤 병원이나 기관에선 '아스퍼거'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해. 하지만 나는 이 말은 정말 쓰면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해. 드라마에서도 나오듯 '살 가치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하던 사람의 이름을 자폐인들에게 붙이다니 말도 안 되지."
- 나도 종종 듣던 말이었는데 그런 의미가 있었다니. 알려줘서 고마워. 이 드라마를 사람들이 어떤 시선을 봤으면 좋겠어?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이 자폐에 대해 친근하게 느끼는 건 좋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드라마 속의 모습에 끼워 맞추려고 하는 부분들이 느껴지거든. 실제로 일반 학교에 다니는 자폐 아동의 경우 드라마 방영 전엔 그냥 '좀 다른 특징을 지닌 아이구나'라고 받아들여지다가, 드라마에서 자폐인이 나온 후 '저런 게 자폐구나'라는 꼬리표를 받게 된 경우도 있더라고. 매체 속의 모습에 자폐인들을 끼워 넣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이야기를 '장애를 극복한 성공 스토리'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거야. 장애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특징으로 가지고 있는 거잖아. 나는 우영우 변호사가 장애를 극복했다기보다는 자신만의 특성을 살려서 특별한 관점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고 생각해. 자폐인의 다른 시선들이 지닌 가치를 읽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드라마의 첫 회. 우영우 변호사를 채용한 법무법인 한바다 한선영 대표(백지원)와 정명석 변호사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혹시 뒷장도 보셨습니까. 자폐라고 적혀 있던데요." (정 변호사)
"변호사님이야말로 뒷장에만 꽂혀서 앞장 안 본 건 아니에요?" (한 대표)
지금 우리는 '앞장'과 '뒷장' 중 어느 쪽에 초점을 두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시청하고 있는 걸까. 우리가 우영우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마도 실제 자폐를 비롯한 장애를 지닌 이들을 대하는 시선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스스로의 시선을 점검해보기를 바란다.
이런 성찰을 통해 우리 자신과 이웃들의 다양함을 보다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드라마에서 영우가 활약하듯, 자폐인의 '다른 시선'이 사회 속에 어우러져 보다 다채롭고 풍성한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친구와 나는 이런 세상을 그려보며 통화를 마쳤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즐거워지는 듯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