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이대로 가면 큰일난다.' '변화와 혁신으로 거듭나야 한다.' '새로운 가치를 정립해야 한다.' 6.1 지방선거까지 참패한 뒤 한달 여 동안, 더불어민주당은 '평가의 시간'을 보냈다. 비슷한 말들이 나왔고, 가리키는 방향도 동일했다. 그러나 실제 흐름은 달랐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빅데이터분석서비스 '빅카인즈'에서 6월 2일부터 7월 20일까지 54개 언론사가 '더불어민주당' 단어를 사용한 결과를 검색하면 모두 2만6675건이다. 이 기사들 중에서 '이재명'이 함께 등장한 경우는 7341건이다. 현재 당 지도부인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이 거론된 기사가 3899건, 박홍근 원내대표가 나오는 경우는 3293건인 점과 비교하면 가히 압도적이다. 즉 민주당 관련 뉴스의 중심에는 이재명 의원이 우뚝 서 있다는 뜻이다.
전당대회 국면을 살펴봐도 그럴 만하다. 이재명 의원이 당대표 선거 출마선언을 하기 전에는 출마선언을 하지 않아서, 그가 출마선언을 한 뒤에는 출마선언을 해서, 모두 '이재명'이란 세 글자를 좀처럼 입에서 떼어내지 못했다. 당권주자 중 한 명인 강병원 의원이 '이재명만 빼고 단일화'를 공식 제안한 7월 21일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설훈 의원 역시 이날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재차 '반(反)명 노선'을 명확히 하며 또 한 번 '이재명'을 입에 올렸다.
김병욱 제안에... 민주당이 시끄러워졌다
그런데 '이재명'만큼 뜨겁진 않지만, 나름 새로운 토론이 시작됐다. 바로 '재벌개혁'이란 단어다. 7월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대의원대회 준비위원회 강령분과 토론회에서 분과위원인 김병욱 의원은 당 강령 중 "지배주주의 사적이익 편취 방지, 지배구조 개선, 금산분리 원칙 견지, 부당 내부거래 해소 등의 재벌개혁을 추진하며 불법적 경제행위에 대한 징벌을 강화한다"는 대목에서 "재벌개혁"이라는 문구를 계속 사용할지 여부를 토론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재벌을 봐주자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라며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과독점을 통한 불공정거래라든지 사익편취, 불법적 거래 등은 당연히 규제해야 하는데, 재벌만 꼭 대상인가?"라고 말했다. 또 "다양한 기업형태가 나타나면서 오히려 빈틈이 생겼다"며 "네이버·카카오만 해도 재벌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재벌개혁이란 네 글자가 상징하는 게 워낙 크긴 하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2년 전 강령을 무조건적으로 물려받지 말고, 새로운 사고를 통해서 새로운 모습을 당원과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노력을 우리 스스로 하는 게 좋지 않겠나. 본질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보수·경제지들은 일제히 반겼다. <중앙일보>는 "김병욱의 도발"이라고 표현했고, <매일경제> 사설은 "신선하다"며 "대기업은 한국 경제의 고속성장을 이끌었는데 민주당은 이들을 경제성장의 동반자로 대접하기보다는 부당 내부거래와 같은 부정적 측면만 강조하며 개혁대상으로 내몰아왔다"고 했다. 반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20일 논평을 내고 "윤석열 정부의 친재벌 노선과 함께하겠다는 선언"이라며 맹비난했다.
당권주자들도 각자 견해를 밝혔다. '삼성 저격수' 별명을 가진 박용진 의원은 지난 15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정체성이 흐려지는 상황이라며 김병욱 의원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재벌개혁은 재벌과 대기업에 권한이 집중된 상황에서 몇 가지 제도 장치를 만드는 것이지 재벌 총수일가를 벌주자는 게 아니다"라며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빼자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강훈식 의원은 18일 페이스북에서 "민주당이 이념개혁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민생개혁을 하자는 것에 동의한다"면서도 "'재벌'이란 단어가 주는 이념적인 느낌과 달리 재벌의 행태는 철저히 우리 민생의 문제"라고 했다. 강병원 의원은 같은 날 <오마이뉴스>와 만나서 "우리가 대기업에는 개혁이란 표현을 안 쓰더라도 재벌에는 꼭 개혁이란 말을 붙이지 않냐"며 "총수일가 중심의 소유와 지배구조, 경영 등을 비판한다는 면에서 재벌개혁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친명-반명' 말고, '어대명' 말고
주제의 적절성을 놓고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민주당은 이런 토론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물론 연이은 선거 패배를 두고 누군가의 책임과 성찰을 따져 묻는 일을 마냥 무용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오직 그 얘기만 한다면 고물가·고금리·고유가에 신음하는 국민들은, 내로남불과 무능에 실망한 국민들은 그 정당을 무용하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평가는 이미 진행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가 2주 연속 32%로 주저앉은 7월 3주차 한국갤럽 조사는 민주당의 성적표이기도 하다. 주춤했던 국민의힘 정당지지도는 전주 대비 1%P 상승한 반면, 민주당은 그대로였다(33%). 1등도 여전히 국민의힘이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실망한 민심은 민주당을 대안으로 택하지 않은 채 부유하고 있다. 지방선거 당시 18%까지 줄어들었던 무당층은 꾸준히 늘어나 이번 조사에서 24%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전당대회'로 그친다면, 민주당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전당대회의 한가운데 '친명(친이재명)과 반명(반이재명)'이 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민주당은 혁신이 되는 것인가? 이것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의 진정한 반성과 혁신인가"라는 질문은 이미 안에서부터 터져 나오고 있다(관련 기사 :
민주당 청년들 "친명·반명 게임 그만, 민주화세대 정당 벗어나자" http://omn.kr/1zx2e ).
덧붙이는 글 | 기사에 인용한 여론조사 개요는 다음과 같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조사기간 : 2022년 7월 19~21일
- 조사대상 :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
- 오차범위 : 95% 신뢰수준에 ±3.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