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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에 인터뷰와 함께 실린 항일의병 사진 (1907년).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에 인터뷰와 함께 실린 항일의병 사진 (1907년). ⓒ 의병박물관
 
동학농민혁명이 좌절되고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울 때 전국 각처에서 의병들이 분연히 봉기하여 일제와 싸웠다.

동학농민혁명 때와 마찬가지로 의병들은 일제의 현대식 병기에 낡은 화승총과 죽창으로 맞서면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의병들이 일제와 싸울 때 민중들은 방방곡곡에서 <새타령> 등 구국항쟁의 노래를 당시 유행하던 판소리 형식으로 불렀다. 아리랑 계열은 아니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살피고자 두 곡을 골랐다. 판소리 <새타령>과 <농부가>는 지금까지 노랫말의 참뜻도 제대로 모르는 채 불려지고 있다. 

   남원산성 올라가 이화문전 바라보니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떴다
   보아라 종달새 이 산으로 가며 쑥국쑥국 
   저 산으로 가며 쑥국쑥국
   어야허 어이야 디야허 등가 내사랑이라.

여기서 말하는 '남원산성'은 전라도 남원의 지명이 아니라 '남은(餘) 산성(山城)' 곧 일제가 점령하지 못한 의병의 주둔지를 말하고, '이화문전(梨花門前)'은 이왕문전(李王門殿)의 뜻으로 조선왕조를 지칭한다. 수진이 (사냥매) 날진이 (야생매) 해동청 (海東淸) 보라매는 모두 한국의 전통적인 사냥매를 일컫는 것으로 여기서는 의병을 뜻한다. 

종달새는 백성 (민중)을 의미하고, '쑥국'은 수국 (守國) 즉 나라를 지키자는 의미이고 '어야허'는 조상신 호국신을, '등가 (登歌)'는 궁중의 종묘악으로 임금과 국태민안을 선왕에게 축원하는 아악을 말한다. 일종의 왕조시대 애국가인 셈이다. 

이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뜻이 담겨져 있다. "의병의 진지에 올라가 삼천리 강토를 바라보며 의병들의 활약을 목견하다. 민중들아 보아라. 이 산에서도 의병들이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서고 저 산에서도 일어선다. 열성조여! 함께 애국가 부르며 나라 지켜나가세." 
 
판소리 현대무용 적벽가 장면. 새타령을 부르며 죽은 군사들 사이를 배회하는 소리꾼의 모습은 반전의 이미지를 듬뿍 담아냈다 판소리 현대무용 적벽가 장면. 새타령을 부르며 죽은 군사들 사이를 배회하는 소리꾼의 모습은 반전의 이미지를 듬뿍 담아냈다
판소리 현대무용 적벽가 장면. 새타령을 부르며 죽은 군사들 사이를 배회하는 소리꾼의 모습은 반전의 이미지를 듬뿍 담아냈다판소리 현대무용 적벽가 장면. 새타령을 부르며 죽은 군사들 사이를 배회하는 소리꾼의 모습은 반전의 이미지를 듬뿍 담아냈다 ⓒ 김기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았을 때 의열지사들이 호국의 의지를 담아 부르던 이 노래가 후대에  이르러 원래의 애국정신은 간데없고 단순히 '새타령' 정도로 구성지게 불려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 다음은 모심기나 벼베기를 할 때 부른 <농부가>이다. 

 어라농부 말들어 어라농부 말들어
 서마지기 논베미가 반달만치 남았네
 일락서산 해 떨어지고 월출동령에 달 떠오르네 
 어화어화 상사디어 어화어화 상사디어.

이 노랫가사의 핵심은 '일락서산(日落西山)'과 '월출동령(月出東嶺)'이다. 일락서산에는 해 (일본)가 떨어지고 동녘에는 달 (초승달 : 조선)이 떠오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제의 패망과 조선의 독립을 갈망하는 소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옛부터 일본은 해(日)를 상징으로 삼고 조선은 달(月)에 남다른 정서와 애착을 보였다. 그래서 해와 달의 상징성을 내세워 일본의 몰락과 조선의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고 있다. 

가사 중에 '서마지기 논배미가 반달만치 남았네'란 구절은 "서(혀:남도지방의 방언) 빠지게 농사짓고도 수탈당하고 조금 (반달만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참상을 상징하는 은어이다. 농민들은 일제관헌의 단속을 피하는 수단으로 은어를 통해 노래를 부르며 힘든 농사일을 하고 항일의지를 불태웠던 것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되고 조선은 사실상 일제 식민지로 전락했다. 이완용 등 을사오적을 규탄하는 각종 노랫말이 나돌았다. 다음은 <권고 현내각>이다.

  이완용씨 드르시오 총리대신이면 지위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그 책임이 어떠할까
  수신제가 못한 사람 치국인들 잘할손가
  전일사(前日事)는 여하턴지 금일부터 회개하야
  가정풍기 바로잡고 백도(百度) 정무 유신하야
  중흥공신 되어 보소.

이런 식으로 송병준ㆍ박제순 등 오적을 비판ㆍ저주하는 노랫말로 이어졌다. 구한 말 친일단체 일진회(一進會)는 이용구ㆍ송병준ㆍ윤시병 등 매국노들의 집단으로 러ㆍ일전쟁 때 일본군의 앞잡이 노릇을 시작으로 1905년 을사늑약을 지지선언하고, 한국병탄을 공공연히 주장하였다.

순종을 비롯 이완용 내각과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에게 병탄을 상주하는 등 매국행위를 일삼아 민중들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일진회를 규탄하는 <일진회야>라는 노래가 불려졌다.
  
  일진회야 일진회야 너도 역시 인류로다
  선언서를 발표 후에 매국적만 될뿐이오
  아국(俄國)전쟁 종군시에 허다생명 피살하야
  타향 광혼(狂魂) 슬피운다 노예복역이 이러한들
  무슨 소득 있겠느냐 이해상의 관계로도
  번연 퇴회 할 것이오.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여 통감부를 설치하면서 모든 것이 그들에게 장악되었다. 따라서 친일 매국노들에 대한 직설적인 언어보다 은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시대가 각박해진 결과였다. 송병준에 대한 노랫가사이다. 

 떼 많은 송사리 호음 병(魚) 준치 흉
 일진(日辰)을 잘희여 회쳐 먹을까 아
 어리화 됴타 호응 지화자(知和者) 도큐나 흥.

 일배일배 장진주하여 회빈 작주하사이다
 유주무히(有酒無希) 하거들랑 고기잡아 회쳐볼까
 전천(前川)에 떼많은 송사리 병어 준치 모두 낚아.

송병준을 어물인 송사리ㆍ병어ㆍ준치에 빗대어 회쳐먹겠다는 민중의 소리였다. 

우리 농경시대에 농어촌에서는 단오절이나 추석 명절 때이면 여성들이 손에 손을 잡고 노래에 발을 맞춰 둥굴게 도는 유희를 강강수월래라 한다.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가 어원이다. 

강강술래의 유래는 첫째, 이순신 장군이 왜적의 재침을 막기 위해 위장전술의 하나로 여자들을 동원하여 유희를 하게 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설. 둘째, 이순신 장군이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민심통일의 한 방안으로, 이 유희를 창안했다는 설. 셋째, 아군의 사기와 대일 적개심을 앙양할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설이 나온다.
  
 저건네라 왕대밭에 강강수월래 큰 비둘기 알을나여 강강수월래
 지나가는 대별선이 강강수월래 바라보고 만져보고 강강수월래
 놓고가는 저선비야 강강수월래 첫아들을 낳거들랑 강강수월래
 전라감사 사란다네 강강수월래 둘째딸을 낳거들랑 강강수월래
 평안감사 아내주소 강강수월래. (강진지역)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문화열전 - 겨레의 노래 아리랑]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겨레의노래#겨레의노래_아리랑#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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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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