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일, 제20대 대통령선거 이후 85일만에 전국동시지방선거(이하 지선)가 실시됐다. 이번 지선은 사실상 대통령 선거의 시간 속에서 진행되면서, 언론은 연일 떠오르지 않는 선거 분위기를 기사화했다.
특히 부산광역단체장 선거의 경우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불거진 의혹과 공약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있음에도, 부산지역 언론은 지난 1년에 대한 평가와 검증보다는 '후보 인터뷰', '후보가 후보에게 묻다' 등의 기사 형식을 통해 입장을 단순 전달하는 것으로 선거보도를 갈음했다.
그런가운데 부산MBC '예산추적프로젝트 빅벙커'는 4월 28일과 5월 5일 두 차례에 걸쳐 '부산·대구시장 공약 이행 점검' 편을 방송했다. 지방선거기획 5부작의 마지막 편으로 부산·대구시장 공약 이행 예산 62조 3334억 원을 점검했다. 이 가운데 박형준 부산시장 1호 공약인 '15분 도시 부산'에 대한 집중 점검이 이뤄졌다.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박형준 후보의 지난 시정을 평가하고 검증하는 보도가 전무한 가운데, 부산MBC 빅벙커의 해당 방송이 핵심 공약 예산 집행 내역을 근거로 후보를 집중 점검해 유권자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2022 지방선거보도 민언련감시단은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행사에 도움이 될 좋은 선거보도로 해당 방송을 추천하기도 했다(참고
<민언련 PICK! 유권자를 위한 지방선거 보도>).
왜 부산시는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했나
재선 출마 의사를 밝힌 현직 시장의 주요 공약에 대한 검증 보도가 방송되고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2022년 5월 10일, 부산시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신청을 했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상당 분량 방송됐다며, 5월 26일 1차 조정에서는 13가지 쟁점에 대한 정정보도를, 6월 16일 2차 조정에서는 5건에 대한 반론보도를 요구했다.
부산시는 선거 기간 후보의 공약을 비판적으로 검증한 방송을 상대로 A4 3장 분량의 정정보도문 전체를 '진행자가 통상적인 진행 속도보다 빠르지 않게 낭독'할 것을 요구했다. 유례가 없는 지나친 정정보도 요구다. 부산MBC는 부산시장이나 부산시 관계자가 빅벙커에 출연해 '15분 도시 부산'에 대해 후속 논의할 것을 제안했으나 최종적으로 부산시와 부산MBC 간 조정은 불성립했다. 다음은 부산시가 8월 29일에 발표한 보도자료 내용이다.
A 방송사 측에서 부산시장이 B 프로그램에 출연해 토론하라는 대안을 제시한 것과 관련해, 피해자인 부산시는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는 사실관계가 틀린 방송을 한 책임이 방송사 측에 있고, 부산시는 중요한 정책의 신뢰도가 왜곡 방송에 의해 훼손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하는 피해자의 입장임으로, 사과와 방송내용 정정은 피해자가 희망하고 요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방송에서 틀린 사실관계를 바로 잡는 것은 토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거부한 것입니다.
부산시는 해당 보도자료에서 부산시는 선거기간 유권자를 대신해 후보와 공약을 검증한 언론 보도를 상대로 스스로를 피해자라 지칭했다.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를 '잘못'이라고 인지할 때에만 나올 수 있는 단어 선택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권력 감시 역할은 핵심적이다. 특히 선거기간에는 유권자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후보와 공약을 검증할 것이 요구된다. 언론의 권력 감시와 비판에 대해, 부산시와 부산시장은 스스로 스스럼없이 '피해자'라 지칭함으로써 부족한 공적 인식 수준을 드러냈다.
지난 보궐선거 당시 2021미디어감시연대는 박형준 부산시장의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홍보비서관 경력에 대해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언론 노동자와 시민을 탄압한 과거를 반성하"고 "나아가 지역언론을 지역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협력자이자 감시자로서 존중하고 적극 소통할"것을 촉구했지만, 우려는 현실이 된 셈이다.
부산시는 언론중재위의 조정이 불성립함에 따라, 이후 부산MBC를 상대로 반론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9월 7일 1차 변론기일이 예정돼 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PD연합회 부산지부는 8월 24일 '정당한 비판을 틀어막으려는 부산시를 규탄한다'는 성명을 통해 '시장의 핵심 공약이자 적어도 수천억원의 혈세가 투입될 정책에 대한 비판을 원천 차단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부산시의 태도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언론공공성지키기부산연대도 8월 29일 '언론 재갈물리기 나선 부산시장 규탄 및 소송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시가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권력 감시, 시정 감시를 막고 시청자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심각한 문제라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도 8월 31일 성명을 내고 '지역언론의 정당한 방송보도에 대한 법적 소송을 즉각 취하하라'고 부산시에 촉구했다.
선거 기간 후보를 검증한 보도를 상대로 한 부산시의 반론보도 청구소송에 대해 언론노조와 언론시민단체, 지역정당은 성명, 기자회견을 통해 비판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지역언론은 이를 지역민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8월 29일 기자회견 관련 단신 2건, 31일 민주당 성명 관련 단신 1건이 전부였다(참고 [표1]).
엑스포 홍보 행보에 가려진 부산시와 부산시장 언론관
최근 부산지역언론, 특히 지역신문의 주요 이슈는 2030부산엑스포다. 8월 한 달만 놓고 봤을 때, 미군 55보급창 이전,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8·15광복절 특사, 박형준 시장 1심 무죄 선고와 같은 현안 모두 '2030엑스포'로 귀결되는 보도 경향을 보였다.
구체적인 기사로는 <55보급창 이전, 북항·엑스포 청신호>(KNN, 8/3), <삼성 이재용·롯데 신동빈 사면 부산엑스포 유치전 탄력 기대>(8/16, 국제신문), <'사법 리스크' 부담 던 박 시장, 엑스포 유치 속도 낸다>(부산일보, 8/22) 등이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언론공공성지키기부산연대가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시장을 규탄한 다음날에도 지역신문의 1면은 2030부산엑스포로 채워졌다. 국제신문은 <엑스포 역량 시험대 될 'BTS 콘서트'>를, 부산일보는 <"BTS 대체복무에 공감대">를 실었다. 2030부산엑스포와 관련해 지역언론은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고 있다. 엑스포 홍보를 위한 이재용 회장의 해외출장이 1면에 실리는가 하면(국제신문, 9/2), 박형준 시장이 엑스포 홍보·협력 요청을 위해 호남에 갔다는 사실이 1면에 실리기도 한다(부산일보, 9/2).
이는 부산시의 '2030부산엑스포 유치' 홍보에 치중한 명백한 정보의 불균형이자, 지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보도 행태다. 박형준 시장의 호남 출장을 두고 '호남을 향한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교류 행보'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기사화하면서도 정작 언론을 향한 입막음성 소송에는 지역언론이 이상하리만치 침묵하고 있다.
여기서 진짜 피해자는 부산시민이다.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없는 일로, 시민이 모르는 일로 만들고 있는 지역언론 탓에, 시민의 알권리가 침해 받고 있다. 지역언론에게는 부산시장의 언론관에 대해서도 전달해야 할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