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농사는 별로 신경을 못 썼는데, 고맙게도 오이가 아주 잘 자라주었다. 심어 놓고 집을 두 주일 비웠건만, 돌아왔더니 오이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우리는 이웃집과 서로 마당 관리를 해주곤 하는데, 이웃집에서 물을 잘 준 덕분이리라.
후배에게 들려 보낸 오이소박이
캐나다에서 한국 오이를 먹기는 쉽지 않지만, 작은 텃밭을 가꾸면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어서 좋다. 연일 달리는 오이 덕에 우리 집을 거쳐가는 사람들도 오이를 몇 개씩 얻어갔다.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에도 오이를 갖다 주고... 물론 식탁에는 다양한 오이 반찬들이 매일 올라왔다.
피클도 하고, 오이지도 하고, 렐리쉬도 만들고, 생으로 쌈장에 찍어 먹고... 그래도 제일 많이 해 먹은 것은 오이소박이다. 손이 많이 가지 않아도 김치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여름 냉장고에서 아주 유용한 반찬이다. 오이가 주렁주렁 달린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오이소박이 얘기를 적었더니, 이웃동네 사는 후배가 한탄을 했다. 어렵게 한국 오이 사서 오이소박이 했는데, 어쩐지 오이가 물렀다는 것이다.
공부하느라 바쁜 후배인데 그 말을 듣고 나니 짠해서, 얼른 오이소박이 겉절이를 담갔다. 정식으로 오이소박이를 만들면 좀 시간이 걸리지만, 같은 재료로 하되 간단하게 섞어서 겉절이처럼 하면 시간이 훨씬 절약된다. 물론 먹기도 더 편하다. 자르는 번거로움 없이 쉽게 집어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오이와 부추가 늘 있으니 따로 장을 보지 않아도 금방 만들 수 있었다. 바로 그날 만들어 놓고는 다음 날 후배에게 외출했다가 들어가는 길에 들러서 가져가라 했다. 마침 전에 후배가 사골국 끓였다며 큼직한 병에 한가득 담아다준 적이 있기에 그 병에 담았다. 신나서 가져갔는데, 보내 놓고 나니 어쩐지 갑자기 불안해졌다.
나 먹자고 할 때에는 그냥 대충 해도 되지만, 누구 주려고 하다 보면 꼭 실수도 하고, 평소같이 잘 안 되는 일도 많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집에 가서 먹어보니 입에 좀 짜다는 것이다. 하루 이틀 지나서 익으면 괜찮을 거라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괜한 오지랖을 부렸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남김없이 다 담아줘 버려서, 얼마나 짠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며칠 지나서 다시 연락이 왔다. 다 익고 나니 너무 맛있다는 것이다. 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다시 며칠 후 사진과 함께 문자가 왔다.
"언니, 이제 3개 남았어요! 맛있어서 매일 먹었어요! 레시피 주세요!"
음식을 해주고 나서 제일 기분 좋은 말이 이것일 것이다. 사실 오이소박이처럼 손도 별로 안 가는 것이 이런 즐거움을 주니 나도 신이 났다. 무엇이든 나누면 기쁨이 두배인데, 상대가 좋아하면 다시 거기서 기쁨이 두배 더 커지는 기분이다.
망칠 일 없는 오이소박이 팁
오이소박이는 정말 쉽다. 약간의 팁이라면, 옛날에는 소금을 뿌려서 절였지만 언젠가부터는 절임물을 사용한다. 절임물의 비율은 부피로 기준했을 때, 소금의 10배 물을 잡으면 된다. 그리고 오이지 할 때처럼, 팔팔 끓는 소금물을 부어서 절여주면, 잘 무르지 않고 끝까지 아삭하게 먹는다.
또 하나의 팁은 양념 재료를 준비할 때, 부추는 제일 나중에 넣는다는 것이다. 부추를 많이 치대면 쓴 맛이 나거나 풋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만 유의하면 망칠 일이 없다.
겉절이가 아니고 속을 채우는 정식 소박이로 한다면, 부추를 너무 짧게 썰지 말고, 한 2cm 정도로 썰면, 나중에 속 채울 때 덜 쏟아진다.
어느덧 추석도 지나고 이곳 밴쿠버에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오이는 끝물이라서 구부러지고 못생긴 것들이 주로 열리지만, 그래도 오이소박이는 언제나 가능하다. 그래서 오늘도 오이소박이 한번 더 담가야겠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무설탕 오이소박이]
절임물 (물 5컵+천일염 반 컵), 오이 5개, 다진 마늘 3쪽, 생강 1/2작은술, 고춧가루 2~3큰술, 새우젓 1~2큰술 (금방 다 먹으려면 1큰술, 좀 오래 두려면 2큰술), 멸치액젓 1큰술, 양파 1/2개, 잘게 썰어서 준비, 부추 반 줌
1. 오이를 깨끗하게 씻어서 원하는 모양으로 자른다. 오이소박이 모양도 좋고, 한입 크기도 좋다.
2. 절임물을 팔팔 끓여서 준비된 오이에 붓는다. 20~30분 정도 기다린다.
3. 그동안 양념을 준비한다. 부추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먼저 섞어준다.
4. 부추는 잘라만 놓고 아직 섞지 않는다.
5. 오이를 구부려봐서 휘어지면 다 절여진 것이므로 체에 밭쳐주고, 찬물로 두세 번 헹궈준다.
6. 채반에 걸어 물기를 빼주고, 준비가 되면, 양념장에 부추를 섞어준다.
7. 오이소박이 스타일로 한다면, 사이사이 부추를 넣어서 세워서 통에 담아주고, 간단하게 먹으려면 오이와 양념장을 가볍게 섞어준다.
8. 실온에서 하루 익히고 냉장고에서 마저 익힌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비슷한 글이 실립니다. (https://brunch.co.kr/@lachoue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