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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병원의 좋은 환경에서 좋은 컨디션으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병원을 옮기고 이틀째 되던 날, 갑자기 누가 만지기만 해도 발목이 아파왔다. 또 며칠 후에는 엄지 발가락과 발바닥 앞부분이 전기 통하듯 찌릿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수술의에게 물어봤더니 골반 깨진 곳이 신경이 많은 부분인데, 거기에 깨진 뼛조각들이 있고, 그것들이 신경을 건드려서 생기는 증상일 수 있다며 좀 지켜보자고 했다. 다행히 이런 증상들은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앞으로도 이렇게 갑자기 이상 증상이 생기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한편으로 있지만, 아직까지는 별 이상 없이 회복 중이다.

엎드려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허리에 침을 맞기 위해 40여일 만에 엎드리기를 시도했다. 반쯤 돌아누웠는데 세상이 빙글 돌았다. 잠시 멈추니 괜찮은 듯해서 완전히 엎드리기를 시도했고, 등에 침을 맞았다. 그러더니 이젠 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참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침을 빼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기력 부족이 원인일 수 있으니, 보하는 약을 먹으면서 허리에 침 맞는 것은 미루기로 했다.

침대를 조금씩 더 세우다가 이제 완전히 세워서 앉아보았다. 괜찮은 듯해서 컴퓨터도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창가 침대에 있던 환자가 퇴원해서 그쪽으로 옮겼다. 창을 통해 저 멀리 바다와 하늘이 보였다. 다음날 바다가 보이는 아침 풍경을 벅찬 마음으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바다가 보이는 아침입니다. 얼마만이니 제주바다~!!'라는 톡을 가족들에게 보냈다.
 
하늘과 바다로 가득한 창밖 풍경 오랫만에 바다를 맘껏 보게 되었다. 이 병원에서 퇴원하기까지 한달반 정도 이렇게 하늘과 바다를 구경하며 보냈다.
하늘과 바다로 가득한 창밖 풍경오랫만에 바다를 맘껏 보게 되었다. 이 병원에서 퇴원하기까지 한달반 정도 이렇게 하늘과 바다를 구경하며 보냈다. ⓒ 이진순
 
이렇게 내 몸도 환경도 조금씩 좋아지던 그 때 멀미가 시작되었다. 그 때 멀미기와 함께 썼던 글이 이 시리즈의 4화인 '트럭이 나를 치었다. 내 일상이 부서졌다'이다.

멀미기는 일주일 넘게 계속되었다. 침대를 거의 90도 가까이 높여서 앉은 채로 한 시간 가까이 있었던 것, 그리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먼 곳의 풍경들을 창을 통해 맘껏 볼 수 있었던 것 정도가 큰 변화였을 텐데, 그런 변화들에 내 머리와 눈이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올렸던 침대를 다시 내리고 속도조절을 하며 지내다보니 서서히 멀미기가 누그러졌다. 또 어지러울까 두럽기도 했지만, 몸을 뒤집고 싶었다. 혼자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어지러우면 잠시 멈추어가면서 뒤집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엎드린 채로 한 30분간 쉬는 것도 가능했다. 엎드려 있으니 오랜만에 등이 숨을 쉬며 즐거워했다.

뒤집기, 발가락운동, 다리 들기 운동 등 침대에서 할 수 있는 운동들을 조금씩 하고, 티비를 많이 보며 병원의 시간들을 보냈다. 이제 침대를 조금 세워서 책 읽는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즈음 친구가 책을 사서 보내주었다. 그리고 한 친구는 내가 원하는 책을 주문하면, 도서관에서 빌려다 주곤 했다.

책의 이야기에 쏙 빠져 있는 동안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내 상황에서 벗어나 자유로웠다. 책을 빌려다 주면서 앞으로 걷기 시작할 때 신을 편한 신발도 사다주었다. '조만간 저 신을 신고 땅을 딛고 설 수 있을 거야'라며 그날을 상상해보곤 했다. 
 
친구에게 선물받은 신발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던 때, 조만간 땅을 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보관해두었었다. 일어나서 걷기 시작하던 두달간 매일 나와 함께 했던 정든 친구이다.
친구에게 선물받은 신발침대를 벗어나지 못하던 때, 조만간 땅을 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보관해두었었다. 일어나서 걷기 시작하던 두달간 매일 나와 함께 했던 정든 친구이다. ⓒ 이진순
 
어느 날, 후배와 통화하다가 내 어지러움 증세를 얘기했었는데, 유투브 영상 하나가 생각났다며 보내왔다. 언젠가 슬쩍 보고 지나간 이야기 같기도 했다. 미국에서 의대 교수이자 소아정신과 의사 일을 하는 지나영씨의 영상이었다.

엄청나게 진취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삶을 살아왔고, 소위 '성공'이라는 것도 이룬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병 앞에서 인생이 멈췄다. 어지러움과 통증 등의 증세로 앉아있는 것조차 힘든 일상이 이어졌다. 특유의 의지력으로 엄청나게 노력했으나, 나아지지 않았다.

더 이상은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엄습할 때, 낭포성 섬유종으로 죽어가는 17살 아이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건강하고 행복하면 좋은 것, 힘들고 아프면 나쁜 거라 생각하고, 아픈 사람을 그저 불쌍하게만 생각하고 '나아야 될 텐데'라며 안타까워한다. 그렇다면, 나을 수 없는 죽을병에 걸린 자신의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닌가라고 묻는다. 비록 자신이 나을 수 없더라도 지금 내가 뿌듯하게 사는 것이 삶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이 강의를 들으면서 지나영씨는 '앞으로 낫고 말리라!'라는 미래형보다는, '여기서 살자!'라는 현재형 다짐을 하게 됐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침대에 누워서도 할 수 있는 글쓰기였다. 일어나기 힘들 때는 누워서, 그리고 앉을 수 있을 때는 앉아서 책을 썼다.

그는 좋은 의사가 되려면, 아파보고 사랑해보고 이방인으로 살아봐야 된다고 한다. 아프기 전에도 자신은 환자에 공감할 줄 아는 꽤 괜찮은 의사라고 스스로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프고 나서는 환자들의 아픔을 느끼는 깊이가 달라졌다고 한다.

결국 '나의 현재'를 살아가라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었던 것 같다. 사회적 잣대나 타인들의 요구에 자신을 희생시키지 말기를, 미래를 위한다는 이유로 현재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를 당부한다.

나는 '희망'이라는 말이 좋다. 침대에 누워 지내던 두 달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큰 힘 중 하나는, 시간이 지나면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병원 생활 마지막 한 달을 보냈던 재활병원에서는 창가에 서 있으면 방파제 길을 걷는 많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그 풍경에 나는 포함될 수 없었지만, 그 풍경을 보며 신세한탄을 하지 않고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 나도 마음껏 저렇게 걸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미래의 희망이 없다 해서 현재의 삶이 가치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17세 소년의 경우처럼, 나아질 수 없는 상황, 희망이 불가능한 상황을 우리는 만나며 살아간다. 태어나서 성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늙고 아프고 죽는 것 역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삶의 중요하고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희망하는 것을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하되, 그 희망이 아니더라도 지금이 의미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의 오늘이 어떠하든 오늘을 살아내는 삶의 근육을 하루하루 키우며 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지나영#어지러움#희망#오늘을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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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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