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영웅은 삶 속에 숨어있다. 어디선가 뛰쳐나와 누군가의 생명을, 삶을 구한다. 이들은 어떻게 위기의 순간 용기를 낼수 있었을까. 무엇이 이들의 손을 내밀게 했을까. 시민 영웅의 '본심'을 들어본다.[편집자말] |
2022년 2월 20일 일요일. 평균 기온은 최저 -7℃에서 최고 1℃. 낮 최고기온이 영상에 발끝을 걸친 추운 날씨였다. 한파주의보가 몰아친 끝자락, 두툼한 패딩을 입어야 겨우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던 날이었다고 했다.
점심 시간대 마지막 손님이 식사를 마칠 무렵인 오후 2시 30분께. 강원도 양양 남애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광원(43)씨는 식당 바로 앞 항구에 서서 따뜻한 커피믹스 한 잔을 홀짝이며 점심 장사를 마무리하려던 차였다.
그런데 10여 m 떨어진 곳에서 '쾅'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니 차 한 대가 바다로 돌진하고 있었다. 불과 2~3초 사이, 차가 바다에 빠졌다. 마침 함께 서 있던 옆 가게 형님과 눈이 마주쳤다. '어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고 했다. 바로 패딩 조끼 벗고 신발 벗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운전자가 의식을 잃었다고 생각했어요. 아니면 바다로 돌진할 이유가 없잖아요. 큰 일 나겠다 싶어서 들어가니 옆 가게 사장님이랑 형님이 밧줄 던져줘서 그 밧줄을 차 사이드 미러에 묶었어요. 제가 가까이 다가가니까 그제야 운전석 창문이 내려오더라고요. 항구 쪽에 차를 접안시켜놓고 일단 사람을 꺼냈죠."
차량 앞좌석에 앉은 두 사람은 빠져 나왔는데 뒷좌석에 앉은 사람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헤엄쳐 들어가 마지막 사람까지 안전하게 빼낸 후 이광원씨도 뭍으로 올라왔다. 상단부가 15cm 정도 남았을 정도로 차는 서서히 잠겨가고 있었다. 그때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뒤에 애가 있어' 제 귀에는 그렇게 들렸어요. 그 소리 아니었으면 다시 안 들어갔을 거예요. 정말 추웠거든요."
아이가 차에 탄 줄 알고 다시 뛰어들고 보니 차 안에서 안전벨트조차 못 푼 채 발버둥 치는 사람이 보였다. 이미 차 문은 살짝 열려 있었는데도 수압 때문에 안에서 열지 못한 것 같았다고 이씨는 회상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 차 지붕을 밟고 있는 힘껏 완력으로 당기니, 그제야 문이 열렸다.
네 명의 사람을 구하고 맨발로 가게로 돌아오는 길. 1분도 채 안 되는 거리가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벌벌벌 떨면서 가게로 왔는데 입도 뻥끗 못할 정도로 추운 거예요. 저체온증이었던 거 같아요. 오한이 오는 게... 집에 가서 뜨거운 물로 30분 동안 샤워를 하니까 그제야 몸 떨리는 게 멈췄어요. 그리고 몇 시간 내리 잤죠."
네 명 구하고 스친 생각 "천만 다행이다"
별 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지만, 바다에서 나고 자라 6살부터 바다수영을 했다는 그는 2월의 바다가 어떨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왜, 바다에 뛰어든 걸까.
"워낙 급박했으니까요. 사람들 다 구하고 나니까 119도 오고 해경도 오고 그러더라고요. 오는 거 기다렸으면 다 가라앉았겠죠. 솔직히 여기 정도는 '내가 들어가도 탈이 나겠나' 싶기도 했던 거 같아요. 바다를 아니까."
되레 그는 오한이 멈추고 난 후 머릿속에 한 생각이 스쳤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구한 분은 괜찮을까.'
"나중에 건네 듣기로 괜찮으시다 하니 '천만 다행이다...' 싶더라고요. 제가 바로 못 구하기도 했고, 계신지도 몰랐고. 만약 그 분이 잘못됐으면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거 같았어요. 무사하신 거 알기 전까지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들어가서 대처했으면 제때 구할 수 있었지 않을까, 내가 나설 일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무사하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진심으로."
네 명을 구하고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무거운 마음에 짓눌렸다고 했다. 도대체 왜 그럴까. 재차 물었다.
"제가 워낙 성격이 그래요. 뭘 보고 지나치질 못해요. 작년 11월인가 그 때도 가게에서 식사하신 분들이 요 앞에서 옥신각신 하시는 거예요. 왜 그러시냐 했더니 최신형 아이폰을 바다에 빠트렸대요. 어쩌겠어요 들어가서 건져드렸죠. 그때는 11월이라 그래도 견딜만하더라고요."
이렇다 보니 그동안 바다에 빠진 사람들을 숱하게 구해왔다고 했다. 물론, 여름의 일이긴 하다.
"동해안도 물이 흘러가면서 빠져 나가는 물길이 있는데 여기는 물살이 쎄요. 거기 휘말리면 튜브 타고 있다가 먼 바다로 떠내려가는 거죠. 보통은 잘 모르니까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힘들거든요. 그러니 수영하고 놀다가 옆에서 그런 사람이 보이면 가서 구해주고, 헤엄칠 줄 아니까 들어가서 구해주고. 일상적인 일이에요. 저뿐만 아니라 여기 사람들 다 그래요. 특별할 것도 없어요."
그래서 이제껏 몇 명을 구했냐 물어보니 "셀 수가 없다"고 했다.
"셀 수 없이" 사람을 구하고도 "특별할 거 없다"는 바다사나이
이런 막내아들을 지켜보는 어머니 심정은 타들어간다. 인터뷰 말미, 식당으로 들어온 최돈녀(71)씨는 말을 쏟아냈다.
"언제야, 해수욕장에서 서울 아가씨들이 바다에 빠졌는데, 쟤가 들어가서 구했어요. 해경이 와도 파도가 높아서 못 들어간다고 하는데 야가 들어가서 끌고 나와서 살렸다고."
지난 2월의 일도 나중에야 알았다고 했다.
"내가 봤으면 바짓가랑이에 대롱대롱 매달려서라도 못 들어가게 했을 거예요. 내 새끼 죽으러 들어가는데 어느 부모가 그걸 보고 있어. 손님이 '요 앞에서 난리가 났다'길래 그런갑다 했더니 우리 아들이 물을 뚝뚝 떨어트리면서 달달달 떨며 들어오는 거야. 그날 엄청 추웠는데,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아유... 진땀이 다 나요."
그러더니 이내 가게 한 켠에 진열해 놓은 '상' 자랑이 이어졌다.
"상을 많이 받았어요. 이게 다 상이야. 저 안에도 있고, 해경하고 찍은 사진도 있는데 그게 어디갔지? 상을 너무 많이 타오니까..."
"아들 둘, 딸 둘에 막내 아들인데 어렸을 때부터 전교 회장을 했다"는 자랑이 이어지던 차, 최씨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2월에 구해준 사람이 찾아온 얘기를 꺼냈다.
"구해준 사람이 와서 돈 20만 원을 주더래요. 얘 아버지가 난리 났어. '도로 주지 그걸 받아왔냐'고. 아들은 '아부지 내가 돈 보고 건져줬겠어요' 하는데, 아버지는 '넷이면 목숨 값이 5만 원짜리냐'고요. 저도 보니 아유, 차라리 음료수나 한 병 사가지고 오지 싶더라고요."
그런 어머니 옆에서 아들은 역성을 든다.
"2주쯤 후에, 네 분 중 두 분이 오셨더라고요. 나머지 분들이 다 술을 드셔서 여자분이 운전대를 잡으셨다는데 자기 차가 아니니 운전 미숙으로 그런 일이 났나 보더라고요. 그분이 찻값도 다 물어주셨다면서 여유가 없다고 진짜 약소하니 받아달라며 봉투를 주시는 거예요. 진짜 안 받겠다고 했는데, 계속 거절하는 것도 그래서... 제가 고맙다 얘기 듣자고 한 것도 아니니까요. 그날 두 분이 식사하시고 장이랑 젓갈 사시고 뭐 그렇게 사람 인연이 닿는 거죠."
그 겨울 넷을 구했는데 넷 중 둘은 '고맙다' 말 한 마디 없었고, 부모님의 지청구가 이어졌고, 며칠을 호되게 앓기도 했다. 한겨울 또 누군가 바다에 빠진다면 같은 일을 반복할 것 같냐고 물었다.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요? 일에 휘말리지 말라고 얘기도 많이 듣는데... 아버지가 엄청 엄하고 보수적이신데 그러다 보니 예절 이런 걸 되게 강조하셨고, 약한 사람 도와줘야 한다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어요. 그게 몸에 밴 거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는 "아유, 제가 인터뷰를 왜 한다고 했지, 잘못한 거 얘기하라고 하면 잘할 자신이 있는데 영 낯이 뜨겁다"고 했다. 그리고 되물었다.
"서울에 수해 났을 때 막 뛰어 들어가서 구하신 분들, 그분들이 진짜 대단하시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