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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둠별 단체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MBC방송국 뉴스룸, 명성황후 시해 현장인 건청궁 옥호루, 국회의사당, 시립 과학관, 경찰청,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모둠별 단체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MBC방송국 뉴스룸, 명성황후 시해 현장인 건청궁 옥호루, 국회의사당, 시립 과학관, 경찰청,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 서부원
  
지난 금요일 오후 8시 10분. 아이들을 태운 버스가 학교에 도착하자 부지불식간에 환호성처럼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인솔 책임자로서 긴장이 순간 풀린 것이다. 여전히 코로나가 기승이고 독감마저 유행하는 와중에 다녀온 나흘간의 일정이 별다른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지난 1학기부터 준비했던 '아이들의, 아이들에 의한' 수학여행이었다. 여행사에 위탁해 유명 관광지를 순례하듯 도는 기존의 관행을 탈피하려는 몸부림이었다. 계획부터 시행까지 아이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는, 이름하여 '판·선·책 수학여행' 프로젝트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졌다. 내내 긴장 속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선지 배고픔도 느끼지 못했다. 이른 아침에 잠이 깨어 비몽사몽 노트북을 켰다. 프로젝트를 처음 기획한 사람으로 시행 도중 보고 느낀 경험을 잊히기 전에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홀로 국내외 여행을 다닐 적엔 그때그때 느낌을 수첩에 메모해두지만, 종일 아이들과 함께 부대껴야 했던 이번엔 스냅 사진조차 찍을 여유가 없었다. 하루에 걸은 거리만 평균 3만 보가 넘었고, 숙소로 돌아오는 시간도 오후 9시를 넘기기 일쑤여서 씻고 잠들기 바빴다.

일상의 환류 작업이 대개 그렇듯, 예측하지 못한 시행착오와 반성해야 할 점이 먼저 떠올랐다. 아이들은 교사의 일절 간섭 없이 자기 마음대로 일정을 짜서인지 피곤하기는 해도 만족하는 눈치였다. 교사는 동반할 뿐 인솔하지 않는다는 게 이번 프로젝트의 제1원칙이었다.

아이들의 만족도와 교육적 효과는 꼭 일치하거나 비례하진 않는다. 어쩌면 그 둘은 반비례한다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이는 기실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딜레마였다. 아이들이 제출한 여행계획서 심사에서 사실상 유일한 기준이 바로 그 둘을 얼마나 적절하게 조합했느냐였다.
 
 언제부턴가 명문대는 고등학생 아이들의 순례지가 됐다.
언제부턴가 명문대는 고등학생 아이들의 순례지가 됐다. ⓒ 서부원
 
'진로 탐색을 위한 여행'이라는 부제를 부러 달았지만 아이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진로를 '진학'으로 이해했던 걸까. 모둠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명문대 견학 일정을 계획서에 담았다. 재학 중인 선배를 만나고 대학 캠퍼스를 걸으면서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겠다는 취지다.

청와대와 국회의사당, 남산타워, 광화문 광장, 코엑스, 서울 스카이 등은 시차만 있을 뿐 대다수 모둠이 들르는 방문지였다. 진로와 관련되어 있다기보다 서울을 대표하는 '핫 스폿'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이다. 진로 탐색이라는 수식어가 데면데면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 난감한 건 대부분의 모둠에서 '한강 공원'이 필수 코스였다는 점이다. 여의도냐, 잠실이냐, 뚝섬이냐만 다를 뿐 한강 공원은 지방에 사는 아이들에게 하나의 '로망' 같은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강 공원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서울을 간 게 아니라고 말할 정도였다.

해가 넘어가는 늦은 오후, 쌀쌀한 강바람에 오들오들 추위에 떨면서도 라면과 치킨을 주문해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낯설다 못해 황당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연신 스마트폰으로 어둑해진 강 풍경을 담았다. 그러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며 서로 자랑해댔다.
 
 한강 공원은 '인스타 성지'라며 모둠마다 늦은 오후에 다녀갔다.
한강 공원은 '인스타 성지'라며 모둠마다 늦은 오후에 다녀갔다. ⓒ 서부원


인스타 성지.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다. 가고자 하는 곳이 인스타 성지이냐, 아니냐가 아이들이 계획을 짜고 함께할 모둠을 구성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단다. 아이들은 직접 그곳에 가서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장면을 그대로 흉내 내보고 싶어 했다.

찍어서 올린 사진에 달린 하트와 댓글을 읽는 재미에 빠진 아이들 곁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어야만 했다. 단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릴 목적으로 한강을 찾은 것일까. 한강 공원에서 한 시간 넘도록 그들은 한강이 아닌 스마트폰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취지와는 달리 인스타 성지를 찾아가는 오리엔티어링 같은 것이 돼버렸다. 장래 경찰을 꿈꾸는 아이들이 경찰청을 찾고, 과학에 흥미가 있는 아이들이 국립 과학관에 가는 등의 일정을 제외하면 모둠별로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곳에서 만났고, 그곳에서 흩어졌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검색 포털이 유튜브에 밀려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젠 유튜브도 인스타그램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형국이다. 아이들에게 인스타그램은 검색 포털과 소통 수단일 뿐더러 세상을 접하는 창구다. 요즘 아이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곧 '스마트폰의 두 얼굴'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된 셈이다. 기실 이번 수학여행은 스마트폰의 도움 없이는 애초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갈 곳과 관람 시간, 교통, 예산 등의 정보를 알아냈고 세부 일정을 짰다. 게다가 내비게이션 노릇도 톡톡히 했다.

문제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 데 있다. 목적지에 도착해도 스마트폰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직접 가보고 싶어 와놓고선 그곳을 둘러보기보다 벤치 등에 앉아 연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웹툰과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소일했다. 대체 왜 왔는지 까맣게 잊어버린 듯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들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았다. 목적지뿐만 아니라 식당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심지어 길을 걸으면서도 스마트폰 화면만 쳐다봤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상태에서는 함께하자고 모인 모둠원끼리도 대화가 잘 오가지 않았다.

기획 단계에서 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사전에 모둠원끼리 역할 분담을 하고 개인별로 숙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선정된 계획서에 따라 모둠장이 정해지면 모둠장은 등 떠밀리듯 예약부터 비용 계산, 길잡이 역할까지 도맡아야 했다. 나머지는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뭐든 잘 아는 사람이 희생해야 한다는 식이다. 몇몇은 계획 단계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으면서 예약한 식당의 음식이 맛없다고 투덜대고, 지하철역을 잘못 내려 더 걷게 됐다고 화를 냈다. 말하자면 모둠장을 비롯한 소수는 여행사 직원처럼, 나머지 다수는 고객처럼 행동했다.

제출한 계획서대로 인증 사진을 찍고 방문 소감을 실시간으로 과제 플랫폼에 탑재하는 것도 모둠장을 비롯한 소수의 몫이었다. 그들은 몸이 몇 개라도 부족할 만큼 종일 분주했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좋은 경험이라는 말로 연신 다독였지만, 그들에겐 위로가 될 수 없었다.
 
 안산 단원고 세월호 4.16 기억 교실을 찾아 희생 학생의 어머님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안산 단원고 세월호 4.16 기억 교실을 찾아 희생 학생의 어머님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 서부원
  
이렇듯 숱한 문제점에도 나름 성과가 컸다고 자평한다. 몇몇 동료 교사는 취지에는 십분 공감하지만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전체의 1/3이 넘는 19명의 교사가 동원된 대규모 프로젝트였는데, 그만한 교육적 효과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는 뜻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 무엇보다 코로나 와중에도 220명 모두가 안전하게 다녀왔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 교사가 일절 관여하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나흘간의 일정을 소화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받을 만하다. '촌놈들의 서울 나들이'라는 모둠 이름에서 이젠 당당함이 느껴진다.

예상치 못한 온갖 변수들의 연속이었지만 아이들은 나름 슬기롭게 대처했다. 지하철 노선도 앞에서 토론을 벌이는가 하면, 예약이 취소된 것을 뒤늦게 알고는 합의를 통해 새로운 방문지를 정하기도 했다. 서울 사는 선배들과 직접 통화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본모습은 교실 밖에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수업 시간 한없이 무기력하던 아이가 모둠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수업 태도가 좋은 친구가 성적이 우수할지언정 통솔력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오로지 아이들의 재능이 천차만별이라는 것만이 진리다.

교육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 전부가 학교였다. 뜬금없이 광고판을 교과서 삼기도 했고, 안내방송의 비효율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버스 중앙차로제의 장단점을 토론하고, 예약제가 고령 세대를 차별한다며 꼬집기도 했다.

배움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고, 계량화된 지표로 평가될 수 없는 것임도 새삼 깨닫게 됐다. 기발한 상상력과 정직한 태도, 친절한 마음 씀씀이 등은 점수로 나타낼 수 없는 미래의 가장 중요한 재능이자 덕성이다. 이는 어쩌면 학교보다 길 위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언젠가 '길 위의 학교'라는 이름의 대안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 학교의 철학과 설립 취지를 알겠다. 모든 학교를 길 위의 학교로 만들 수 없을진대, 이번 수학여행과 같은 프로젝트를 활성화하는 게 나름 대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수학여행#진로 탐색 활동#한강 공원#인스타그램#길 위의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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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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