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도 의정부 호원동의 어느 한 프랜차이즈 카페 상가 화장실을 이용하려던 이아무개(27·여)씨는 여성 칸으로 들어가는 남성을 목격했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한참을 밖에서 기다려도 남성이 나오지 않자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이 화장실에 진입해보니 남성은 여자 화장실 칸에 불법 촬영 카메라를 설치 중이었고, 현장에서 바로 검거됐다. 이씨는 '그 남자가 이미 카메라 설치하고 간 뒤 들어갔더라면 나도 그냥 찍혔을 것'이라는 생각에 화장실 갈 때마다 노이로제에 걸린 기분이다.
불법촬영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불법 촬영 카메라에 대한 여성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는 2021년 6212건으로 전년보다 23.4% 증가했다.
관내 대형 놀이시설이 있는 잠실지구대 김아무개(27) 순경은 "불법 촬영 신고가 매주 1~2건 혹은 그 이상 들어온다"며 "누군가를 타깃으로 정해놓고 찍기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촬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자 특정에 늘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한다. 특히 요즘은 놀이공원에서 교복을 대여해 입는 문화가 있어 옷 갈아입는 장소에 몰래 설치된 카메라로 치마 안쪽을 찍히는 피해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법 촬영이 만연하니 심지어 불법 촬영 카메라 탐지기능을 탑재한 피임도구까지 최근 유통되고 있다. 공공장소의 불법 촬영 피해와는 다르지만 어딜 가도 불법 촬영 에 대한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 여성의 웃지 못할 씁쓸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상화된 불법촬영 피해의 현실을 반영하듯 2022년 6월 청와대 국민 청원 홈페이지에는 '초소형 카메라 판매 금지'를 요청하는 글이 올라왔다. "마땅한 규제 없이 아무나 초소형 카메라를 살 수 있어 수많은 불법 촬영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요지의 글은 23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여성들의 일상의 공포로 자리 잡은 불법 촬영에 대한 불안감은 국민청원 메시지의 주장대로, 불법 촬영 범죄에 이용되는 초소형 카메라가 온·오프라인 판매처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판매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원래 용도와 전혀 다른 시계·차키·화재경보기 등을 변형해 만든 카메라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침투해있으며,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초소형 카메라'를 입력하면 노출되는 관련 광고만 50여개가 뜰 정도다. 초소형 카메라 온·오프라인 판매처들을 방문해보면, 구입의 용이함을 느낄 뿐 아니라 불법촬영 피해자의 고통에는 무감한 '상술'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무엇보다 불법 촬영의 범죄 도구가 되는 초소형 카메라의 온·오프라인 판매처에서 범죄 예방 도구인 카메라 탐지기가 함께 판매되고 있었다. '범죄 도구든, 예방 도구든 돈 되는 것은 다 판다'는 상술의 노골적인 표현임을 부인하기 힘든 대목이다.
심지어 한 온라인 판매 사이트는 '불법 촬영 카메라 탐지기에 걸리는가'라는 소비자의 질문에 "아주 미세한 주파수를 잡아낼 수 있는 탐지기는 현재 과학으론 어렵다"라고 답해놓고, 스스로 효능이 없음을 암시한 탐지기를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오프라인 시장도 마찬가지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일대 전자제품 가게 입구에서 불법 촬영 카메라와 카메라 탐지기를 판매한다고 적은 입간판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용산 전자상가에서도 도청몰카탐지기, 비밀카메라와 같은 문구들이 나란히 광고되고 있었다.
안산에 거주하는 박아무개(28·여)씨는 불법 촬영 카메라 탐지 필름을 사용하고 있다. 박씨는 탐지 필름을 지갑에 넣고 다니다 지하철역 화장실이나 상가 개방형 화장실을 이용할 때 사용하곤 한다. 교통카드만한 필름을 핸드폰 후면 카메라 뒤에 갖다 대고 화장실 벽 구멍이나 변기 쪽을 비춰보면서, 카메라 설치 여부를 확인한다. 박씨는 "발견한 적은 없지만 요즘 하루에도 수십개씩 불법 촬영 범죄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니 집 아닌 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늘 찜찜한 기분"이라고 했다.
"요즘 워낙 불법 촬영 범죄가 많다보니 공중화장실 이용하기가 무서워 최대한 안 가려고 한다"는 변아무개(26·여)씨는 "범죄가 이뤄지기 전 예방이 중요한데 아무 대책도 없고 보호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저 불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변씨는 초소형 카메라와 카메라 탐지기가 같이 판매되는 사실을 알려주자 "처벌 수위가 너무 낮아 문제인 상황에서 탐지기 자체도 믿을 수 없으면 피해를 막을 길은 없는가 싶어 무력감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여성들이 불법 촬영 카메라 걱정 없이 공공장소를 이용할 법적인 안전 장치는 없을까. 그 답 역시 아직 회의적이다. 2015년도부터 변형 카메라 관리법이 3차례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 나온 관련 법안은 지난 2022년 9월 24일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이 발의한 변형 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이다. '변형카메라의 제조·수입·판매·임대·배포 및 광고하고자 하는 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변형카메라 취급자는 변형카메라 구매자 또는 수령자의 인적사항 등을 기록하도록 함'을 골자로 하고 있다. 판매 시 '성폭력 범죄 및 사생활 침해 등 반사회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구매자에 고지해야 한다.
그러나 법안은 변형 카메라의 정의가 모호하고, 카메라 기술이 바디캠·자율주행차랑용 기기·드론과 같이 자동차, 의료 산업,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윤영찬 위원실 측은 "올 상반기에는 법안심사소위 자체가 거의 열리지 않았고 다른 법안들에 밀려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안건이 소위에서 심의 안건으로 선정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법률시장에선 불법 촬영 피의자를 돕기 위한 상담까지 이뤄지고 있다. 버스에서 여성들의 다리를 500차례 이상 몰래 촬영하다 적발돼 경찰 조사를 받은 가해자가 "행동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쪽으로 가면 벌금형으로 끝날까요? 징역형이 나올까봐 두렵다. 도와 달라"는 글을 올리자, 자신의 유사 사건 성공 사례를 자랑하는 다수 변호사의 답이 달렸다.
이들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드리겠다", "살아가다 보면 더 큰 일도 많고 잘하셨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일도 지나고 나면 이야깃거리에 불과하다"며 자신을 변호사로 선임할 것을 추천했다. 한 변호사는 자신의 소개 글에 "무죄, 불기소 무혐의 처분"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온라인 홍보활동을 하고 있었다.
범죄의 피해자가 될까 불안한 이들을 안심시킬 사회적 움직임과 목소리는 불법 촬영 카메라와 탐지기가 함께 판매되는 시장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만 되고 처리되지 않는 국회에서도, 도촬 피의자를 변호하고 수임료를 챙기는 법률시장에서도 찾기 힘들다. 그나마 일선 범죄현장을 단속하는 경찰의 목소리에서 위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시 정릉의 한 파출소 김아무개(27·여) 순경은 "불법 촬영 가해자들은 '난 안 걸리겠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불법 촬영은 범죄입니다'와 같은 홍보 문구를 지하철 계단이나 화장실에서 볼 수 있도록 곳곳에 부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전에 경각심을 높이는 것과 함께 "처벌 수위를 강화하고 각 지역 파출소·지구대는 순찰 강화를 통해 여성들의 불안감을 근본적으로 해소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강수빈 대학생기자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대학생기자가 취재한 것으로, 스쿨 뉴스플랫폼 한림미디어랩 The H(www.hallymmedialab.com)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