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이미지로 사물을 기억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쉽고, 기억이 오래가는 편이다. 그래서 주위의 모든 것들을 이미지화한다. 국가마다 고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쌀국수로 대표되는 베트남은 특정한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다.
베트남 하면 무덥고 습한 열기가 지속되는 곳으로만 알고 있지만 이곳에도 충분히 시원하고 계절에 따라 두터운 패딩을 걸쳐야 하는 지역이 존재한다. 베트남 중부고원지대 해발 1500미터에 자리한 도시 달랏이 바로 그곳이다. 1년 내내 쾌적하고 신선한 날씨를 자랑하고, 길을 따라 프랑스풍 주택의 이국적인 풍광이 유럽에 온 듯하다.
마치 시간여행을 떠난듯한 달랏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나트랑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 동안 산길을 타고 오르는 방법과 다른 대도시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는 루트가 있다. 그러나 공항은 달랏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리엔크엉에 있기 때문에 조금 불편한 편이다. 버스를 탑승해 구불구불하고 험난한 고갯길을 넘은 후 쉬어가는 휴게소에서 잠시 내려가니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쌀쌀한 한기가 폐부 속으로 스며든다.
열대 수풀 대신 우리에게 친숙한 소나무 숲의 풍경이 이어진다. 점점 달랏으로 가까워질수록 각종 작물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유럽식으로 건축된 별장 건물들이 점점 눈에 아른거리기 시작한다.
그동안 접했던 다른 베트남의 도시구조와 전혀 다른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 도시는 더위에 지친 프랑스 식민정부가 리조트타운으로 개발한 곳이다. 달랏이라는 이름 자체도 라틴어로 "어떤 이에게는 즐거움을, 어떤 이에게는 신선함을"이라는 문구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런 말이 헛되지 않을 만큼 달랏 어디를 가든 화사한 봄꽃들과 아름다운 자연을 찾을 수 있다.
쑤언흐엉 호수를 중심으로 시가지가 펼쳐져 있는 달랏은 호텔부터 그 공력이 만만치 않음을 실감한다. 백 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뒤파르크 호텔과 달랏 팰리스 헤러티지 호텔이 바로 그곳이다. 프랑스 식민정부에 의해 세워진 이 호텔들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녔기 때문에 아직도 철문 수동 개폐식 엘리베이터가 존재하며 종업원들의 복장도 예전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숙박을 통해 마치 시간여행을 떠난 듯하다. 호텔은 비록 낡았어도 품위와 세련됨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뒤파르크 호텔 바로 옆에는 고딕 양식의 니콜라스 바리 성당이 자리하고 있어 여행의 기분을 한층 들뜨게 해준다.
달랏에서는 베트남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작물과 유제품 생산 대부분을 맡고 있어 다양한 음식이 있지만 이곳에서 꼭 맛봐야 할 것 중 하나가 빵이다. 달랏 시내 이곳저곳에는 리엔호아 베이커리가 위치해 있는데 제법 훌륭한 빵과 케이크가 있어 현지인들로 늘 붐비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제빵 수준에는 조금 못 미칠지는 몰라도 모처럼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기엔 충분하다.
달랏서 먹을 수 있는 것들
특히 달랏은 우유 등 유제품이 유명한데 달랏 밀크라는 이름으로 베트남 전역에 판매되고 있다. 베트남의 열악한 교통사정과 냉장상태로 인해 대부분은 멸균우유라 특유의 단맛이 강하지만 빵과 함께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리엔호아 베이커리는 빵뿐만 아니라 김밥 등 간단한 식사 거리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이제 시내 중심에 있는 광장을 중심으로 달랏의 주요 볼거리, 먹을거리가 쭉 이어진다. 특히 이곳의 야시장은 달랏에서 꼭 빠지지 않고 들려야 할 명소중 하나로 손꼽힌다. 야시장에는 달랏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작물들을 한자리에서 살필 수 있는데 특히 빨갛게 진열된 딸기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고랭지 농산물과 차, 커피, 와인까지 생산된다고 한다. 시장의 위생상태가 걱정되는 사람들은 깔끔한 매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랑팜이란 곳에서 이곳에서 생산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또한 달랏 야시장의 명물 중 하나가 라이스페이퍼를 이용해 피자처럼 도우를 펼쳐 구운 달랏 피자다. 현지 말로 반짱느엉이라 불리는 이것은 출출할 때 먹는 간식으로 즐길 만하다. 언덕 뒤편으로는 다양한 맛집들과 카페가 있으니 기호에 따라 찾아가며 이 도시의 매력에 친숙해지는 것도 좋을 듯하다.
호수변에 있는 플라워 가든에서 봄꽃의 향취를 맡으며 산책을 즐기며 경치 좋은 카페에서 진한 커피를 즐겼다면 이제는 달랏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기차역을 방문해 볼 시간이다. 다른 장소도 많을 텐데 왜 하필 기차역이냐 의문을 표할 독자분도 계시겠지만 달랏 역은 예전 달랏의 영화로웠던 시절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938년 콜로니얼 양식이 가미된 아르데코 스타일로 만들어진 달랏 역은 베트남 제일의 휴양도시로 성장하게 만들어준 1등 공신이었다. 원래는 해안가의 판탕랍짱역과 이어져 호치민까지 이어지는 노선이었지만 전쟁으로 운행이 중단된 이후 한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현재는 기차 2량만 복원해 8km 떨어진 차이맛역까지 하루 5번 운행하지만 이마저도 10명 미만일 때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기차역 자체가 국가 문화유산으로 보호되고 있고,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기에 그 시절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한적한 철로와 증기기관차는 시간 여행을 떠나는 소품으로 충분하다. 이제 달랏의 본격적인 매력으로 함께 떠나보도록 하자.
덧붙이는 글 |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경기별곡 2편)가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 절찬리 판매 중입니다. 경기도 각 도시의 여행, 문화, 역사 이야기를 알차게 담았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강연, 기고, 기타문의 ugz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