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김지현(27)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100문 100답'을 올렸다.
MBTI는 ENFP(재기발랄한 행동가 유형)형. 그의 꿈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였다. 전시관람(그는 스스로를 '미술관 처돌이-쳐돌아버릴 정도로 팬이라는 의미'라 표현했다), 춤추기가 취미였고 '다이어리에 일정 채우기'가 특기라고 했다. 기록을 즐겨했기에 가장 아끼는 물건은 다이어리. "내 인생이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블로그를 "내 인생의 비망록으로 쓸 예정"이라고도 했다.
그 비망록에는 지현씨의 섬세한 일상이 녹아 있었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예쁜 카네이션을 할머니께 선물했고, '국가유공자의 집' 마크가 부착된 할머니 집 문을 보며 "할아버지 덕분에 좋은 세상 살고 있다"며 감사함을 표할 줄 아는 손녀였다. 지난 7월에는 코로나에 걸린 엄마의 만류에도 부모님이 계신 본가에 내려갔다. "조금이라도 도와드리기" 위해, 또 "엄마 얼굴을 보고 싶어서 안 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2021년 3월부터 시작한 서울살이. 엄마, 아빠, 남동생, 지현씨 이렇게 네 식구, 단란한 가족이 살던 그 곳을 그는 때때로 그리워했다. 지난 7월 그는 "가끔 청주에 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내가 선택한 결정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말고 더 노력하는 게 맞다"며 자신을 다잡았다.
지난 10월 21일 블로그에 올린 '2022년 버킷리스트'에는 자격증 따기, 겨울바다 보기, 핼러윈 분장하기 등이 적혔다. 핼러윈 분장하기 버킷리스트를 지웠을 지난 10월 29일, 그녀는 이태원을 찾았고 겨울 바다를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지현씨의 바쁘디 바쁜 일과..."왜 이렇게 처절하게 살았니 내 딸아"
지현씨 어머니는 "억울하게 희생된 저희 딸 사연도 소개해달라"며 <오마이뉴스>에 이메일을 보내왔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85명의 이야기를 적은 기사에 적힌 문구 '<오마이뉴스>에 희생자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으신 분은record1029@ohmynews.com으로 연락주십시오'를 보고 용기를 냈다고 했다. 어머니와 두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지난 5일 전화통화로 빈 칸을 채웠다.
이메일에는 지현씨의 꿈, 버킷리스트, 일상, 지현씨가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 등 꾹꾹 눌러 담은 이야기가 A4 네 장에 걸쳐 가득 적혀 있었다.
어머니가 전해 준 그녀의 하루는 분주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직장을 다녔던 지현씨는 퇴근 후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 학원과 토익 학원을 다니며 미래를 준비했다.
"컴퓨터로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좀 더 일을 잘하기 위해 학원을 다녔어요. 학원에 갔다 오면 밤 10시 반이라 들어오면 자기 바빴죠. 토익도 정직원 되기 위해서 준비한 게 아닐까. 일하던 곳 계약 기간이 내년 3월까지였거든요...이번에 지현이가 쓰던 노트북을 열어보니 자소서가 한바닥이었어요. 기간제 교사도 알아보고 기상 캐스터에도 지원해보고. 힘든 내색을 안 해서 진짜 몰랐어요. 취업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었는지 고스란히 담긴 흔적을 봤을 때 무너졌어요. 왜 이렇게 처절하게 살았니 좀 여유 있게 살다가지..."
학원에 가지 않을 때는 한강에서 러닝을 했고, 마라톤에 참가했으며, 하다못해 집 근처 공원이라도 찾아다니며 몸을 움직였다. 주말에는 서울 살이를 이어가며 친구들을 만났고 카페와 미술관 나들이를 즐겨했다고 한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브이로그(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영상 콘텐츠)를 올리는 것도 그의 주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어머니는 2018년 딸이 유튜브를 시작하자 곧바로 계정을 만들었다. 영상 하나하나에 댓글을 달기 위해서다.
지현씨가 2020년 8월 태풍 힌남노가 휩쓸고 간 지역에 내려가 수해 복구 봉사를 다녀온 뒤 올린 영상에 어머니는 "장마가 끝나고 습하고 무더운 찜통더위에 고생이 많았겠네요. 늘 응원할게요 파이팅입니다"라고 댓글을 남겼다. 2021년 3월 올라온 '직장인 브이로그'에는 "서울생활 낯설고 익숙지 않아 어려운 점 많을 텐데 잘 적응해나가는 걸보니 너무 보기 좋아요. 항상 지지하고 응원 할게요"라고 적었다. 지난 8월 지현씨가 유튜브에 마지막으로 올린 영상에 어머니는 "친구랑 오랜만에 탁 트인 동해바다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네요~너무 보기 좋아요~예쁘당~"이라며 응원의 말을 전했다.
닮았으나 닮지 않은 내 딸 "아직도 얼굴 부비며 안아줄 거 같은데..."
어머니는 지현씨의 첫번째 팬이었다.
"어렸을 적 지현이 꿈이 아나운서였어요. 앞에 나가서 말하는 걸 참 좋아했거든요. 활동적이고요. 그래서 유튜브 하는 것도 즐거워했고, 뭐 해볼래? 하면 기꺼이 하는 그런 성격이었어요. 리포트 쪽도 적성에 맞아서 기상캐스터도 준비했고요. 저 안 닮아서 참 다행이다 했죠."
뭐든 '해보겠다' 도전하는 당찬 딸, 자랑거리는 또 있었다.
"늘 주변 선후배 지인들 생일을 살뜰히 챙기며 베풀기 좋아했어요. 어디든 달려가서 얘기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그랬대요. 그래서인지 장례 때 너무나 많은 대학 선후배, 직장 동료들, 친구들이 찾아와줬어요. 우리 지현이가 잘 살았구나 새삼 느꼈죠. 청년 울산 유로드 대장정에도 참가해서 일주일 내내 포기 않고 걷기도 하고, 그 때 만난 분들도 장례식장에 와줬어요. 청주 무심천에 산책하다 만난 언니들과 등산모임도 하더라고요. 그 때 만난 언니가 지현이 이렇게 되고 우리 건강 걱정된다며 건강식품까지 챙겨 보내줬어요. 지현이가 사는 동안 인연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긴 결과겠죠."
그러더니 이내 "왜 이런 것까지 닮았는지 모르겠다"며 울컥했다.
"지현이가 서울 살던 집에 있는 짐을 받아 왔는데... 초라하기 짝이 없어요. 비싼 가방 하나 살 줄 모르고 절약하고... 그게 너무 마음 아파요. 서울에 살아보니 주식이니 부동산이니 얘기를 전해 듣잖아요, 자기도 저축해야 한다고 점심값도 아까워했어요. 철없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갔으면 '그래 원 없겠다' 했을 텐데, 엄마 닮아서 아끼고 쓰지도 못하고, 왜 그런 거까지 닮아서는..."
엄마를 닮았지만 닮지 않은 귀한 딸. 결혼 1년 6개월 만에 생긴 보물. 타지에서도 지현씨는 부모님을 살뜰하게 챙기며 맏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난 10월 26일 아버지 생신을 맞아 지현씨는 참사 일주일 전 주말 본가에 내려가 깜짝 파티를 열어드렸다.
"아빠 겨울에 입으시라고 점퍼를 사서 보냈더라고요. 그리고는 엄마·아빠 영화 보시라고 티켓을 끊어줘서 다 보고 집에 갔더니 깜짝 생일 파티를 준비했더라고요. 아빠는 아직도 그 점퍼를 한 번도 못 입었어요. 딸이 사준 마지막 선물인데 입고 다녀야 하는데... 내년에는 아빠 환갑이고 결혼 30주년이니 리마인드 웨딩 사진 같이 찍자고 지현이가 그랬는데..."
"이렇게 예쁘고 착한 딸", 어머니는 딸의 사진을 마주 볼 수가 없다고 했다. 딸 아이의 분신같던 다이어리도 차마 들춰볼 수 없었다.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까 '엄마' 이러고 올 거 같고... 딸 짐은 가져왔는데 하나도 정리를 못했어요. 저 흔적들을 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짐 있는 방에만 들어가도 엄마 하고 얼굴 부비며 저를 껴안아 줄 거 같아요. 우리 지현이 없이 어떻게 해요."
친구 찾으러 다시 해밀톤 호텔 쪽으로... "너무 지현이다운 선택"
어머니는 10월 29일 잊지 못할 그 날 밤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 놓았다.
지현씨 어머니에 따르면, 지현씨는 그 날 룸메이트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친구와 지현씨 둘 다 인파에 휩쓸렸다가 고비를 넘겨 겨우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지현씨 눈에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묻혀 의사 전달이 되지 않았다. '저 안에 아직도 친구가 있나보다'라고 생각한 지현씨는 그 길로 다시 해밀톤 호텔 뒷길로 들어갔고 다시 나오지 못했다. 룸메이트 친구가 지현씨 동생에게 전한 그 날의 상황이다. "너무나 지현이다운 선택"이었다고 엄마는 말했다.
"이렇게 본인보다 남을 먼저 챙겼어요. 다시 들어가지 말지... 이렇게 착한 아이를 먼저 데려가시니... 젊고 아까운 청춘들, 너무 열심히 살았던 아이들인데 '놀러갔다 죽었다'고 치부하니 견딜 수가 없어요."
10월 30일 어머니는 수원빈센트병원 안치실에 있는 딸을 확인하고 "하늘이 무너진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낯선 서울에서 외롭게 직장생활하고 학원 다니고, 등산하고 ... 그렇게 바삐 살다 스트레스 풀 겸 찾아간 곳이 마지막 가는 길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작년에도 많은 사람이 몰렸는데 아무 문제없었잖아요. 정부가 인파 통제를 했다면 그 많은 젊은 청년들이 안타깝게 희생되지 않았을 텐데요. 이게 우리 아이들 잘못입니까? 정부는 책임도 안 지고 사과도 없고 무마시키려 한다는 게... 너무 참담해요."
어머니는 답답했다.
"정부는 유가족들을 위해서 정작 해준 건 아무것도 없어요. 유가족 연락처를 달라고 해도 모르쇠, 유가족끼리 소통하고 한을 풀고 싶다는 건데 그것조차 안 해줬어요. 소방서장님 애쓰신 거 다 아는데 그 사람 조사하고 정작 책임 있는 사람은 자리에 그냥 두고. 이 정부가 있는 한 우리나라는 안전할 수 없을 거 같아요."
돌이 내려 앉은 가슴을 부여 안은 채, 어머니는 지현씨를 아직 떠나 보내지 못했다.
"꿈에라도 한 번 나와서 '엄마·아빠 나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라고 한 마디라도 해주면 보내줄 텐데... 야속하게도 한 번을 안 찾아와주네요."
어머니는 위도 장도 고장 나 뭘 삼키기가 어렵다고 했다. 어느 땐 장염으로 어느 땐 변비로 고생하고 있다고도 했다. 편두통과 입병은 떠나질 않고 어머니를 괴롭히고 있다. 정신과 상담 약과 항생제를 털어 넣고 깊이 자지 못하는 쪽잠을 자며 하루하루 그저 버틴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하는데... 그럴리가요. 딸 또래 아이만 봐도 눈물이 나는데..."
이런 어머니를 위로하듯, 지현씨는 '자신이 죽을 때 남기고 싶은 말'을 100문 100답에 적어 두었다.
"넘 슬퍼하지마 나는 행복했어."
그리고, 묘비명에는 "깨발랄 지현, 하늘의 별이 되다"라고 적어달라고 했다.
<오마이뉴스>에 희생자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으신 분은 record1029@ohmynews.com으로 연락주십시오. 온 마음을 다해 희생자의 삶을 전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유족 분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재난 희생자와 유족을 향한 비난은 명백한 2차 가해 행위이며 형사처벌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