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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절규 "국가는 답하십시오"|故 이상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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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상은씨의 아버지는 지난 11월 22일 참사 후 첫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국가는 어디 있었는지, 국가는 무엇을 하였는지, 이제는 국가가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이씨 아버지 발언의 전문이다.

"1997년 6월 29일 10시 30분 이 세상에 태어나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10시 30분 26세의 꽃다운 나이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되는' 하나뿐인 우리 딸 이상은의 아빠입니다. 상은이를 보낸 후 엄마아빠를 부르며 살려달라고 마지막까지 애원했을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아가 우리 딸에게 썼던 편지입니다. 태워서 딸에게 부치려고 했는데 태우질 못하게 해서 오늘 여기서 편지를 부쳐봅니다.

상은아 잘 가라.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구나. 이제 별이 된 사랑하는 우리 딸. 먼저 보내 미안함에,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억장이 무너지는 원통함에 가슴을 치며 통곡해보지만 눈물로 채운 가슴에 갈수록 그리움과 아련함이 가득하구나. 꽃다운 청춘 펼쳐보지도 못하고 꽃이 져서 별이 되었네. 네 방 사진 속의 너는 친구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데 (이제) 네 방엔 꽃내음과 향내음만 가득하구나. 보고 싶구나. 

매일 아침 밥먹자 하면 맞벌이 하는 엄마아빠 걱정할까봐 투정 한 번 없이 함께 해준 우리 딸. 부르면 금방이라고 걸어 나올 것만 같은데 아무리 불러 봐도 대답이 없구나. 대학 졸업과 함께 열심히 준비해서 미국 공인회계사 합격하고 '아빠 나 합격했어'라고 울먹이던 핸드폰에 녹음된 너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통곡했는지 모른다. 너를 보내고 이튿날 너의 핸드폰으로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회사에서 좋은 소식의 문자가 날아왔는데 너는 갈수가 없구나. 너무 원통하고 안타까워 또 통곡을 하였구나. 

네가 태어나서 아빠 가슴에 처음 안겼을 때의 따스함처럼 재가 되어 아직도 식지 않은 따듯한 너를 가슴에 안고 너를 보내러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살아 있을 때 사랑한다고 자주 안아주지 못한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이제는 보내줘야 한다고 한다. 엄마아빠가 너를 보내줘야만 네가 마음 편히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하니 보내주려고 한다.

딸아 잘 가라. 이모부 꿈에 나타나 엄마아빠가 너를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네가 엄마아빠 찾아온다고 했다고 하니 다시 태어나서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엄마아빠 너무 걱정하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이승에서의 모든 고통, 아픔, 슬픔 모두 버리고 힘내서 잘 가거라. 엄마아빠도 힘낼게. 우리 딸이어서 너무 고마웠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다. 25년 4개월을 함께 해준 사랑하는 딸 상은이를 보내며 엄마아빠가. 

마지막으로 우리 딸 상은이를 대신해 절규를 해봅니다. 국민 한 사람의 인권과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고 전 국방부장관을 구속하고 심지어 전 대통령까지 수사하려고 하고 있는 이 정부에 묻습니다. 우리 딸과 같은 26세 나이였던 아들을 먼저 보낸 고 박완서님이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신께 물었듯이 저는 국가에 묻고 싶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국가는 어디 있었는지 국가는 무엇을 하였는지 이제는 국가가 답해야 합니다. 한 말씀만 하소서. 제발 한 말씀만 하소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이 지난 11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이 지난 11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태원#참사#희생자#이상은#RECORD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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