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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다짐 "무능한 정부에 단호히 소리칠게"|故 이남훈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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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남훈씨의 어머니가 지난 11월 22일 참사 후 첫 기자회견에서 "이 땅의 모든 아들딸들이 다시는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참사에 희생되지 않도록 이 정부에 단호히 대응하고 소리칠 것"이라고 밝혔다. 

아래는 이남훈씨 어머니 발언의 전문이다.

"지금 저는 그냥 평범한 엄마로서의 넋두리, 그냥 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이 순간, 이 자리, 이 시간에도 이 비참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저희 아들 영정사진 대신 살아생전 웃고 있는 사진을 가슴에 품고 왔습니다. 내 자식 태어난 곳, 태어난 시간, 날짜, 태어난 순간을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요.

보십시오. 이것이 저희 아들의 사망진단서라고 하네요. 사망일시도 추정, (장소도) 이태원 거리 노상. 사인은 미상. 이게 말이 되는 상황입니까. 어떻게 부모가 내 자식이 죽었는데 사인도 시간도 제대로 된 장소도 알지 못합니까. 내 자식 어떻게 떠나보내라 하십니까. 어떤 순간에 죽음에 이르렀는지, 아니면 누군가 도와줘 심폐소생술이라도 받았는지, 병원 이송 중 사망했는지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참사 현장을 보며 무슨 꿍꿍이, 무슨 생각으로 우리 아이들 시신을 경기도 외곽으로 뿔뿔이 흩어 놓으셨나요. 이태원 근처 큰 의료시설에 최소 20, 30명이라도 모여 있었다면 이런 의구심을 갖지 않겠습니다. 누가 무엇이 무서워 무엇이 두려워 이런 어처구니없는 지시를 내린 건가요. 결국 유가족끼리 만나지 못하도록 철저히 계산속에 이뤄진 것은 아닐까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스물아홉살 이남훈 엄마입니다. 저는 아직도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데 내 아들은 온데간데없고, 아직도 아들이 퇴근하고 들어오며 '엄마 배고파요' 하던 아들의 목소리만 머리에 맴돌고 있네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들 핸드폰은 꺼졌는데 새벽 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출근 알람이 울리더군요. 우리 아들, 이 땅의 젊은이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치열하고 힘든 하루하루의 삶이었을까요.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릴 줄 알았다면 내 앞에 있을 때 더 안아주고 더 도닥거려줄걸. 사랑한다고 매일매일 말해줄걸. 얼굴 한 번 더 만져줄걸. 내 머리를 쥐어박고 가슴을 뜯고 또 칩니다.

술 한 잔 마실 줄도 모르고 축구를 유난히 좋아했던 착하디 착하기만 했던 우리 아들. 일에 지쳐 힘들어 허리 아픈 것도 참아내고 새벽잠 이겨가며 열심히 살아가며 노력했던 아들이 하루아침에 이제는 제 곁에 없습니다. 엄마는 이제 어떡할까, 엄마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엄마는 우리 남훈이 없으면 안 되는데. 핸드폰 단축번호 3번에 저장된 내 사랑 아들. 아들 몇 시에 들어와, 밥은 먹었어, 냉장고 아들 좋아하는 삼겹살 사놓았어.

이제 더 이상 핸드폰에서도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요. 장례식 내내 우리 아들 곁을 지키며 같이 울어주고 함께 아파하던 아들 친구들이 떠올랐습니다. 문자를 보냈지요. 이번 일로 너희들이 겪지 않아도 되는 이런 슬픔과 아픔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너희들만이라도 친구가 좋은 곳에 먼저 갔으려니 생각하고 그저 열심히 살아주기만을 바란다고. 아들 친구들이 보여준 우정과 사랑 잊지 않고 기억한다고.

그리고 저는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무능한 이 정부에 아들을 뺏겼지만 엄마는 더 이상 아들 앞에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는 무능하고 무지한 엄마는 되지 않겠다고요. 내 아들이 아닌 이 땅의 모든 아들딸들이 또다시는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참사에 희생되지 않도록 철저히 밝혀달라고, 이 나라 이 정부에 단호히 대응하고 소리칠 거라고요. 왜 이 사태에 이르렀는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의 무능함을 모른 채 저는 그저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저는 얼마나 무지한 엄마였을까요. 그러나 이제는 알겠습니다. 내 아들이 죽은 이유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엄마는 우리 가족은 알아야겠습니다. 그럼에도 무지한 저는 이해 못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하나하나 알게 됐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아들 잘못 아니라고. 무능한 정부에서 그저 열심히 살아온 아까운 스물아홉의 삶 지켜주지 못한 무능한 어른들, 무능한 정부의 잘못이고 그러니 무지한 이 엄마는 이제 넋 놓고 눈물만 흘리지 않으려 한다고요.

도와주십시오. 유가족 여러분과 함께 우리 아이들의 억울하고 비통한 죽음에 대해서 철저하고 명확하게 밝힐 수 있도록 미약하나마 동참하려 합니다.

저는 정치에 대해 잘 모릅니다. 제가 원하는 건 그날의 진실과 투명한 조사, 그리고 책임 있는 자들의 책임과 사퇴, 더 나아가 대통령의 공식적 사과를 비롯해 더 이상 우리 아들딸들이 영정사진도 위패도 없는 불쌍한 영혼으로 만들지 말아 주십사 하는 겁니다.

이 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등하고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합니다. 누구누구 정치인, 누구누구 유명인 죽음 앞에 방송은 영정사진과 애통함을 표하면서 왜 우리 아들은 안 되는 겁니까. 우리 아이들도 이 나라 국민이고 누구하나 소중하지 않는 이는 없습니다.

저는 아들 떠난 후 지금도 방에 불을 끄지 못합니다. 우리 아들이 이 시간이라도 방문을 열고 들어올 거 같아 차마 방 전등을 끌 수 없어 밤을 지새웁니다. 한여름 전기세 아낀다고 에어컨을 자주 끄니 우리 아들이 하는 말. 우리 집은 에어컨이 전시용이라며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부모님 돌아가시면 땅에 묻고, 배우자가 죽으면 머리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더군요. 저는 언제쯤 우리 아들에게 편히 좋은 곳에서 엄마 만날 때까지 엄마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요. 언제 우리 아들을 편히 보내줄 수 있을까요.

이 나라 정치하시는 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리 유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진정성 있게 생각하신다면 솔직해지십시오. 제대로 된 조사와 제대로 된 사과, 우리 아이들에게 사과하십시오. 책임 있는 자들은 책임지고 대통령은 진실성 있는 공식사과 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우리 아들과 희생된 모든 우리 아이들에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큰소리로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한다, 아이들아. 사랑한다, 우리 아들 남훈아."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남훈씨의 어머니가 지난 11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마지막으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오열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남훈씨의 어머니가 지난 11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마지막으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오열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태원#참사#희생자#이남훈#RECORD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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