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초, 코로나19 확산 이후 방역 상황을 고려해 잠정 중단됐던 미등록 외국인에 대한 정부 합동단속이 재개되었고 그 결과 지난 14일 1만여 명을 출국토록 했다는 뉴스를 보고 법무부 홈페이지에서 '미등록 외국인'으로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검색되는 내용이 없었다.
미등록 외국인 단속에 대한 인권침해 비판을 의식해 공식적인 보도자료는 홈페이지에 게시하지 않은 건가 싶었다. 혹시나 싶어 불법체류로 검색했더니 '불법체류 외국인 정부합동단속 재개', '불법체류 외국인 정부합동단속 및 자진출국제도 실시, 1만여 명, 출국'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가 떡하니 게시되어 있는 게 아닌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4월 29일,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불법체류자라는 용어 대신 최초로 '미등록 외국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약 38만여 명(현재는 약 40만명으로 추산)의 미등록 외국인이 단속의 공포로 백신접종을 못 받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코로나 상황이 완화되자 미등록 이주민을 범죄자 취급하는 멸칭인 불법체류 외국인이라는 용어가 다시 등장했다. 게다가 법무부는 보도자료에서 불법체류 외국인을 '택배와 배달 등 국민 일자리를 뺏고, 마약범죄 등 사회적 폐해'를 초래하는 존재로 여겼고, 이들이 모인 장소를 '우범지역'으로 명시했다.
코로나19는 중소기업과 농·어촌에 극심한 인력난을 초래해 우리 경제의 많은 부문이 외국인 노동자 없이 지탱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정부가 나서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혐오와 낙인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떻게 일하며 생활하고 있을까? 농업 이주노동자들과 만나면서 연구를 이어온 이주인권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우춘희는 2020년 여름 깻잎밭으로 유명한 농촌 마을에서 몇 달간 캄보디아 노동자들과 함께 온종일 깻잎을 땄다.
그는 현장에서 직접 그들의 노동환경과 생활환경을 보고 사업주들과 인터뷰를 한 결과를 <깻잎투쟁기>라는 책으로 펴냈다. 주로 농업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다른 분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관련 기사:
한국인 밥상은 우리의 눈물로 차려졌다 http://omn.kr/20i0a)
왜 깻잎일까? 류승완 감독의 영화 <모가디슈>에서 남한 대사 부인이 겹쳐진 깻잎을 젓가락으로 떼지 못하자 북한 대사 부인이 잡아주는 장면은 남북간 동포애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깻잎은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음식이다.
물론 그런 낭만적인 이유로 농장주나 외국인 노동자나 저자가 깻잎 밭을 택한 것은 아니다. 깻잎 농사는 1년 내내 일거리가 있는 노동집약도가 높은 일이다. 연소득 약 1억 원, 대박이 나면 2억 원 정도로 밭작물 중 단위면적당 소득이 가장 높고 자금 회전율도 좋다.
고용주들은 출퇴근, 점심, 상여금, 휴일, 작업 환경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국내 아줌마들처럼 불평하지 않고 '무조건 복종'하는 이주노동자를 쓸 수 있으니 너무 좋다고 한다.
고용주에게 대박, 이주노동자들에게는 피눈물
이렇게 고소득을 올려주는 깻잎이니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낙수효과'가 좀 있지 않을까? 이주노동자들이 사는 기숙사부터 보자. 그들의 기숙사는 햇빛도 들지 않고 환기도 안 되며 바퀴벌레와 파리가 우글거리는, 곰팡이가 가득한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이다. 화장실도 없고 잠금장치도 없다. 화재와 침수 같은 재난에 취약하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도저히 사람 사는 집이라고 할 수가 없다. 2020년 12월 20일 캄보디아 여성 속행씨가 난방이 되지 않는 기숙사인 비닐하우스에서 영하 18도의 날씨에 숨진 채 발견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고용주들은 이들이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에서 왔으니 열악한 주거 시설에 사는 것이 괜찮다고 여기고 정부는 이런 시설을 방관해 온 결과 발생한 비극이다. (관련 기사:
속헹씨 시신 발견한 동료들, 여전히 비닐하우스에 산다 http://omn.kr/1r65h)
임금이라도 제대로 받고 있을까? 임금체불을 신고한 이주노동자 수는 2016년 약 2만 1000명이었으나, 2018년부터 2021년까지 평균 3만 명이 넘어 약 1.5배 증가했다. 2017년 51만 8천명 수준이던 이주노동자는 코로나19로 2021년 34만 3천명으로 줄었지만, 체불임금 규모는 오히려 늘어난 1183억 원으로 2016년 686억 원의 약 두 배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체불이 발생하면 고용주에게 문제제기를 하기 보다 사업장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 그 규모는 더 클 것이다.
고용주가 임금을 체불해도 이주노동자들은 언어와 제도의 장벽, 입증의 어려움, 근로감독관의 소극적 조사 탓에 문제제기를 하기 힘들고, 어렵게 문제제기를 해도 현실적으로 체불임금을 받아낼 방법이 별로 없다. 임금을 체불한 고용주는 고용허가가 취소되거나 하는 식의 불이익을 받지도 않는다. 그러니 3년간 수천만 원 떼먹고도 오히려 당당하고, 고용노동부 사무관은 도대체 3년 동안 임금 못 받으면서 거기 왜 있었냐고 되묻는다.
일이 좀 편하기라도 할까? 농장주들은 8시간 안에 깻잎 15상자, 즉 1만 5천 장을 따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이를 강요한다.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하루 종일 식사 시간, 쉬는 시간,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밭 한가운데서 볼 일을 해결해가며 쉬지 않고 일해야 겨우 딸 수 있는 분량이다. 이런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면 노동자 책임으로 돌려 월급을 깍는다. 당연히 불법이다.
일상적인 성희롱, 성폭력, 언어폭력, 괴롭힘을 당하지만 어디에 어떻게 신고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피해 사실을 입증 못하면 강제추방당할 수 있어 신고 자체를 할 생각을 못한다. 일하다 아파도 병원에 갈 시간도 없을 뿐더러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무지한 탓에 대부분 병원에 가지 못한다. 내국인 노동자에 비해 유해화학물질 노출 등 산재에 취약하지만 보호받지 못한다.
이주노동자들에게 법도 근로계약서도 휴지조각일 뿐이다. 고용주들은 불법임을 엄연히 알면서도, 이주노동자들은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하는 일은 법이랑 맞지 않으니까, 법이 아닌 우리끼리 정한 규칙으로 외국 애들 꼼짝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일터를 옮기면 되지 않냐고? 이주노동자들은 그럴 자유조차 거의 없다. 사업장을 옮길 수 있는 사유는 극히 제한적이고 횟수도 3번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과도한 제한이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불법체류자를 양산한다고 지적한 헌법재판관은 둘밖에 없었다.
불법체류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국가가 불법체류자를 단속해 체류질서를 바로잡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이다. 독일의 법철학자 라드브르후가 말한 '법률적 불법', 즉 법률로써 실질적 정의에 반하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먹는 음식은 단지 나의 영양이나 건강과만 관련되지 않는다. 음식은 전체 인구의 영양과 건강뿐만 아니라 지구의 자원, 기후변화, 사회정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권리가 있고, 그 음식들에 착취당한 노동자의 눈물이 배어 있다면 그것을 거부할 의무가 있다. 그들도 우리와 동등한 존엄성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선 알기 위해 이 책을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