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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스트라 테일러의 다큐멘터리 <성찰하는 삶(Examined Life)> 공식 사진. 수나우라 테일러(왼쪽)과 주디스 버틀러의 대화 장면이다.
애스트라 테일러의 다큐멘터리 <성찰하는 삶(Examined Life)> 공식 사진. 수나우라 테일러(왼쪽)과 주디스 버틀러의 대화 장면이다. ⓒ IMDB
 
영화감독이자 사회학자인 애스트라 테일러는 2008년에 다큐멘터리 <성찰하는 삶(Examined Life)>을 만들었다. 슬라보예 지젝, 주디스 버틀러, 수나우라 테일러, 코넬 웨스트 등 철학자 8명과 현대의 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에서 필자의 눈길을 끄는 장면은 젠더·퀴어 이론가인 주디스 버틀러와 장애운동가, 동물운동가 겸 작가인 수나우라 테일러가 미국 시카고 거리를 산책하면서 장애, 젠더, 인간(성)에 대해 밀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관련 기사: 동물해방과 장애해방은 어떻게 만나는가 http://omn.kr/20pks)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장애인인 테일러가 커피 한 잔을 스스로 주문할 용기가 나지 않아 커피숍에 들어가기 전 몇 시간 동안이나 공원에 앉아있던 경험을 얘기하는 부분이다. 테일러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시키고 도움을 구하는 일이 정치적 저항처럼 다가왔다고 한다. 그 이유로 모든 사람은 서로 도움을 필요로 하고 어떤 의미에서 의존적이지만, 동시에 모두가 그 사실을 경시하거나 신경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버틀러는 테일러가 커피를 주문하면서 그와 함께 일정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돕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다고 한다. "우리는 기본적인 필요에 있어서 서로를 돕고 있는가? 기본적인 필요라는 것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러면서 버틀러는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서로에게 의존하는 사회적·정치적 세계가 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서로 도우면서 사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너무나 소박하고 단순한 바람 같다.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존하거나 성장할 수 없는 취약한 의존의 시기를 겪고, 사회에서의 인간은 상호연관되고 상호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약육강식, 승자독식, 각자도생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는 이런 사실을 외면한다. 코로나19가 초래한 돌봄위기는 돌봄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했고, 돌봄노동은 필수노동으로 법적 보호·지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크게 변한 것은 없다.

돌봄의 무임승차→돌봄의 시민적 연대책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지난 해 12월 20일 오전 서울 5호선 광화문역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지난 해 12월 20일 오전 서울 5호선 광화문역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서 보듯 여전히 취약성과 의존성은 자립과 자율에 반대되는 수치스러운 상태로 여겨지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돌봄노동은 어머니, 며느리, 딸이 당연히 해야 되는 도리, 여자들이나 하는 저임금 일자리로 폄하된다. 돌봄을 책임지겠다는 국가의 약속은 돌봄의 시장화를 돌봄의 사회화로 돌리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돌봄을 향한 요구는 국가의 시혜를 바라는 투정이나 떼쓰기가 아닌 인권에 기반한 정당한 권리 주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다행스러운 것은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돌봄을 새롭게 정의하고 모색하려는 운동, 연구와 출판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정의론, 돌봄윤리,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김희강이 쓴 <돌봄민주국가-돌봄민국을 향하여>는 돌봄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고 돌봄부정의가 지속되는 원인을 정치이론적으로 분석·비판하고, 헌법개정을 포함한 제도적 개선책까지 제시한다.

기출판된 연구논문을 묶은 책으로 각 논문이 자체적인 완결성을 지니고 있어 꼭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되고, 어느 글을 읽더라도 돌봄정의에 대한 개괄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우리 정치·사회 체제에서 돌봄이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 체제의 이론적 바탕에 돌봄이 배제되어 있어서다. 돌봄은 생명 유지와 인격 형성의 조건이자 정치사회의 생물학적 밑거름을 제공하는 선결적이고 실천적 가치이지만, 자유주의도 공동체주의도 모든 인간이 경험하는 돌봄과 의존, 돌봄 관계에 대한 고려가 없다.

민주주의에서도 돌봄은 빠져있다. '자유'를 기치로 자본주의 시장제도를 발전시킨 자유민주주의에서도, '노동' 중심의 복지제도를 도입한 사회민주주의에서도 돌봄은 배제되어, '돌봄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인 돌봄 수혜자나 돌봄 제공자는 차별과 불이익의 굴레에 빠지고, 이들의 고착화된 불평등은 젠더·인종·계급에 기초한 여타의 불평등과 교차하여 더 공고화되고 있다.

이와 달리 케어리즘(carism)은 페미니즘 도덕이론에서 출발한 돌봄윤리를 정치사회적으로 확장해 취약한 '인간의 필요에 응답하는, 모든 인간의 삶에서 선결적이며 필수 불가결한 실천이자 가치'인 돌봄을 중심에 둔 정치이론이다.

케어리즘은 노동이나 공적 일을 한다는 이유로 돌봄책임으로부터 면제받는 사람이 사회경제적 혜택을 누리는 '특권적 무책임', 돌봄책임을 지는 사람이 사회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돌봄의 무임승차'라는 돌봄부정의를 지적하고 교정한다. 나아가 케어리즘은 돌봄의 관계망을 보호하고 보존하며 부정의한 관계를 지적하고 교정할 돌봄의 책임인 '돌봄의 시민적 연대책임'을 규정한다.

케어리즘에 기초한 돌봄민주주의는 돌봄이 배제된 시장과 복지에서 비롯된 구조화된 사회위계에 도전함으로써 정치적 평등의 이상을 추구한다. 돌봄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 평등의 제도화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제시된다.

첫째는 돌봄이 배제된 사회경제제도에 대한 교정 및 모두가 돌봄인이자 노동자일 수 있는 사회경제제도로의 전환이다. 다른 하나는 돌봄을 공적 가치로 인정하고 보상하며 돌봄에 대한 공유된 시민적 책임을 제도화하는 것, 즉 '함께 돌봄 책임' 제도다.

이는 돌봄이 공적 가치이자 시민과 사회, 국가 모두가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가치임을 헌법에 명문화하는 것, 의무교육 과정 내에 돌봄의 교육과정을 제도화하는 것, 성인 모든 국민(남녀)을 대상으로 한 돌봄책임복무제의 제도화로 구체화된다.

돌봄민주국가의 돌봄은 기존의 여러 복지제도를 비교·선택해 개선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복지원리는 노동(생산)중심, 권리중심, 공정중심, 불편부당주심, 분배중심의 패러다임이 작동한다. 그러나 돌봄원리는 취약성중심, 필요중심, 책임중심, 맥락중심, 실천중심의 패러다임이다.

저자는 재분배를 통해 시장을 규제하고 사회권적 권리로 국민의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것과 함께, 돌봄실천의 관계와 가치가 공적으로 인정되는 국가야말로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정의로운 국가라는 점을 강조한다.

촛불로 시작된 나라다운 나라를 향한 염원이 좌절되고 그나마 이룬 작은 진전조차 뒷걸음질치고 있다.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비전은 기득권을 지키고 구조적 부정의를 외면하는 공정 담론으로 쪼그라들었다. '돌봄'의 가치를 중심으로 정치이론과 민주주의와 복지를 다시 써 국가다운 국가, 정의로운 국가를 이루자는 저자의 주장이 새삼 절절하게 다가온다.
 
 김희강 <돌봄민주국가 - 돌봄민국을 향하여>
김희강 <돌봄민주국가 - 돌봄민국을 향하여> ⓒ 박영사

돌봄민주국가 - 돌봄민국을 향하여

김희강 (지은이), 박영사(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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