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국내 유명 구두 브랜드 탠디의 하청 업체와 계약을 맺고 구두를 짓는 제화공들 90여 명이 탠디 본사를 점거했다. 백화점에서 30만 원 넘는 가격으로 팔리는 구두 한 켤레에 수십 년 경력의 제화공들이 받는 공임은 7천 원에 불과한 사실이 이들의 시위로 알려졌다. 8년째 한 푼도 오르지 않은 금액이었다.
파업 이후 다른 브랜드의 하청 업체와 계약한 제화공들도 용기를 내 공임 인상 등 미약하나마 처우 개선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주문이 급감하고, 영세한 하청업체들이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많은 제화공은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내몰리는 신세가 됐다.
'장인'으로 불리는 제화공들의 노동과 삶이 이렇다면 세계화된 신발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어떨까?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사회운동가인 탠시 E. 호스킨스는 <풋 워크>를 통해 전 세계 28개국의 노동자, 사업주, 전문가 등을 만났다. 그 속에서 독자들이 각자의 신발을 신고 도살장, 열악한 작업장, 임시 난민 센터 같은 세계화의 가려진 후미로 가서 직접 보고 생각하도록 안내하며 변화를 촉구한다.
신발은 "바늘에 찔리고 독한 화학약품 때문에 갈라지고 피가 나는 손, 꿰매고 붙이고 문지르는 손, 그리고 한 주의 노동이 끝나면 쥐꼬리만 한 임금을 집으로 가져가는 손"(96쪽)에 의해 만들어진다. 노동자들은 장시간,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내몰리고 노동권은 부정되며, 대량 해고를 당해도 퇴직금조차 받지 못한다. 장갑, 마스크 같은 기본적인 보호장구도 없이 독성 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공장 시설은 치명적 화재와 붕괴 위험을 안고 있다.
그 아래에 1차, 2차, 3차 하청 공장 아래의 세계에 재택노동자들이 있다. 생산비 절감을 위한 사냥은 초국적기업을 글로벌 사우스의 가장 빈곤한 지역으로 이끌었고, 노동을 개별 가정으로 분산시키도록 몰아갔다. 무려 수억에 이르지만 눈에 띄지 않고, 임시 고용 상태이며, 임금과 일거리는 극심하게 요동친다. 공식 공장 노동자가 얻을 수 있는 빈약한 보호마저 받지 못한다.
재택노동자들의 절대다수인 여성들은 공공복지와 기반 시설이 열악한 인구 밀집 지역, 슬럼가에 거주하면서 삯일, 가사노동, 육아를 전담하며 일한다.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집에 제대로 관리될 수 없는 접착제와 독성 물질까지 널려 있다. 유기당하고, 극한의 굶주림, 추위, 폭력과 성적 착취를 겪는 집 없는 아이들은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접착제 흡입 중독에 사로잡힌다.
우리가 신고 있는 신발에 담긴 착취
우리가 신고 있는 신발은 공포와 상실로 고향에서 내몰린 이주민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250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해 국가 경제에서 연간 400억 달러를 차지하는 튀르키예의 섬유, 의류 및 신발 산업에 많은 시리아 난민들이 형편없는 임금을 받으며 비공식적이고 불법적으로 종사하고 있다.
아동노동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시리아 난민 아동들은 고작 여섯 살 때부터 일을 시작한다. 접착제로 인한 뇌 발달 장애, 폐질환, 중독 위험, 언어적·신체적 폭력과 성폭력에 노출돼 있다. 튀르키예의 아동노동자 수는 공식 통계상 70만 명, 좌파 노동조합 추산 200만 명이다. 두 수치 모두 시리아 난민 아동 노동자를 포함하지 않은 숫자이다.
그 밑바닥에 "소들의 산업적 살해라는 일상화된 참상"이 있다. 소에게 반복해서 강제 임신을 시키고 수백만 마리의 소를 도축하는 집약적 축산업은 신발 산업의 대들보와 다름없다. 가죽 산업은 아마존강 유역을 파괴하고 인권과 건강에 대한 철저한 무시와 노예 노동제를, 어마어마한 양의 독성 화학물질을 우리의 삶을 떠받치는 물과 토지로 쏟아부을 것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신발이 폐기되는 곳에도 사람들이 있다. 방글라데시 마투아일 쓰레기 처리장은 딸린 아이들 때문에 의류 공장이 요구하는 열 두 시간 근무를 할 수 없거나 부잣집 입주 가사 도우미 일을 퇴짜 맞은 여자들에게 남은 선택지다. "사방을 포위한 악취, 쓰레기 산, 금속 이빨을 드러낸 중장비가 먼지를 피워 올리는 좁은 길가를 따라 장갑이나 부츠도 없이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241쪽) 거대하고 추하고 위험한, 현실로 다가온 디스토피아 미래다.
이 모두가 거대 자본과 정치권력이 함께 만든 세계화의 결과다. 기업들은 고용과 외국인 투자가 필요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을 지배한다. 가난한 나라들은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려면 자신들을 계속 기업에 개방하는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다시금 학대에 취약해지는 '바닥을 향한 경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싸구려 노동력을 이용해 세계를 포위한 생산의 거미줄과 착취는 "우리 신발의 각 부분을 연결하는 모든 바늘땀에, 갑피에 견고하게 접착된 모든 밑창에, 우리가 구매하는 모든 신발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96쪽)
나이키와 같은 브랜드들은 신발이 단순한 생필품 이상이 되도록 우정, 사회적 지위나 권력, 성적 매력 따위의 상징 가치를 만들어 낸다. 사람들로 하여금 충성심만 갖는 것이 아니라 특정 브랜드에 자신을 동일시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인간의 필요를 얼마나 잘 충족시킬 수 있는가'라는 사용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과잉생산과 과잉소비에 의존하는 경제체제, 유행에 의존하는 수많은 단기적 물품이 엄청난 환경적 비용을 대가로 생산되고 폐기돼 환경 파괴를 불러왔고 수백만 인구가 이미 기후 붕괴로 인해 고향과 생계를 잃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렇게 신발이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과정을 추적하다 보면 우리가 오늘날 어쩌다 이런 위기를 맞닥뜨리게 되었는지가 드러난다. 최첨단 산업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2010년부터 첨단과 혁신의 아이콘, 애플의 아이폰 생산을 주로 담당하는 중국 내 거대기업 폭스콘 공장들에서 20여 명의 노동자가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거대자본과 권력이 결탁한 글로벌 공급망 체계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은 착취당하고 버려졌다.(<아이폰을 위해 죽다-애플, 폭스콘, 그리고 중국 노동자의 삶> 참고)
개인적 변화, 정치적 변화, 시스템의 변화
이렇게 이야기가 끝난다면 비관과 절망뿐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억압과 파괴가 있는 곳에 저항 또한 있다는 사실을 다루지 않는다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도 사람들은 권리 침해에 맞서 저항하고 있으며 초국적 기업, 환경 파괴와 불공정한 정부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세 가지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첫째, 개인적 변화. 우리는 이미 가진 것들의 한계 내에서 만족과 창조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구 생태계의 일부로서 책임이 따름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 정치적 변화. 환경, 노동, 안전, 건강, 동물 권리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높여 산업을 재구축해야 한다. 셋째, 시스템의 변화. 구조적 여성 착취, 글로벌 사우스 착취, 인종차별주의, 계급 차별 및 가난의 강요와 착취로 유지되는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물론 저항에 대한 서술은 책 전체 내용 중 일부에 불과하고, 저자가 제시하는 실천 방안들로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탄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실천은 단순한 질문들로부터 시작한다.
"운동화를 만들기 위해 열대우림을 파괴할 가치가 있는가? 공장들이 연간 242억 켤레의 신발을 토해내는데도 수 만 명의 아이들이 맨발로 등교하다 병에 걸리는, 이런 지독한 부의 불평등이 과연 옳은가? 무두질하는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50세여야 하는가?"(3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