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27)씨 어머니는 딸의 낡은 수첩을 발견했다. 2018년도가 맨 앞에 적힌 수첩, 딸의 유품을 뒤적이다 발견한 것은 딸이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였다. 엄마를 향한 고마움, 엄마를 향한 사랑이 글자마다 새겨져 있는 편지는 4년 만에 엄마에게 도착했다.
지현씨 어머니는 다시 한 번 무너졌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었다. 더 울 바에야, 한 사람이라도 더 나쁜 말 하는 걸 막는 쪽을 택했다(관련 기사 :
깨발랄 지현, 하늘의 별이 되다... "넘 슬퍼하지마 난 행복했어" http://omn.kr/21wbp).
"우리 아이들, 이태원에서 허망하게 간 지켜주지 못한 우리 아이들. 하나같이 착하고 부모님 챙길 줄 알던 아이들이었어요.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착한 아이들인 걸 알리면, 아이들 향해 망발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줄지 않겠어요?"
김지현씨가 4년 전 엄마에게 쓴 편지
어머니는 <오마이뉴스>에 지현씨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지현씨를 향한 답장도 남겼다. 다음은 지현씨가 2018년 자신이 쓰던 수첩에 적어둔 편지 전문이다.
엄마의 품이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
고맙습니다. 아름다우신 어머니,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습니다.
요 며칠 전 배꼽을 만지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작고 웃기게 생겼지만 굉장히 소중한 것이구나.
엄마와 내가 이걸로 이어져 있었다니!
작고 연약해서 누구에게 기대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니 믿기지 않아요.
내가 기댔던 건 엄마였어요.
처음 걸음마를 할 때, 말을 할 때 엄마는 제 곁에 있었어요.
엄마 닮았다는 소리 들으면 진짜 기분 좋아요.
저를 낳아주신 게 엄마니까요.
세상살이를 알려주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주셨어요.
전 엄마가 하는 걸 보고 들으며 모든 걸 배웠죠.
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엄마, 정말 고마워요.
언제나 위험에서 저를 지켜주시고, 넉넉한 사랑으로 푸근히 감싸주신 것
제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와 어디든 데려다 주신 것 모두 고마워요.
마음속에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주시고
세상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엄마.
엄마를 힘들게 해서 죄송해요. 저 때문에 걱정하다 잠 못 이루셨죠.
혼자 생각하고 꿈꿀 엄마만의 시간마저 빼앗아 버렸죠. 정말 죄송해요.
저를 위한 희생 얼마나 컸는지 이제 알아요.
언제나 제가 엄마의 휴식보다 우선이고 제 식사가 엄마 식사보다 먼저였죠.
엄마가 없었다면 저는 아무것도 못했을 거예요.
사랑과 경의로움으로 가득 찬 멋진 세상을 저에게 보여주신 엄마.
보람찬 인생을 살 수 있게 바른 길로 이끌어주신 엄마.
엄마가 생각한 것보다 엄마는 절 훨씬 더 행복하게 해주셨어요.
온 세상에 이렇게 외치고 싶어요.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최고야!
사랑해요 엄마, 정말 고마워요.
어머니의 답장 "다음 생에도 엄마 딸로 태어나줘, 지현아 사랑해"
지현씨 어머니는 하늘에 있는 지현이를 향해 편지를 남겼다.
지현아 엄마야. 네가 자취했던 곳에서 짐을 가져왔는데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있어 너무 아까워 보관해 두었단다. 저 소중한 머리카락 한 올마저 없어질까 두려운, 그 마음으로 살고 있어. 한편으로는 고마운 게 있어. 그나마 우리 딸이 유튜브 영상을 남겨둬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우리 딸 목소리, 움직임 그렇게라도 볼 수 있다는 게 엄마는 지금 그게 너무 고마워.
우리 지현이 장례를 치르는데, 친구가 와서 그러더라. 작년 12월에 우리 가족 다같이 갔던 카라반 여행. 네가 두고두고 미안해했다고. 그때 엄마가 TV 보다가 카라반 여행하는 게 나와서 '어머 저런 데서 자면 정말 좋겠다' 했더니 지현이가 흘려듣지 않고 기억했다가 예약해줘서 간 거였잖아. 그런데 허허벌판에 카라반만 덩그라니 있고, 안에도 너무 추워서 덜덜덜 떨며 잤었지.
엄마 생일이라고 지현이가 준비한 건데 우리 네 식구 춥게 잤다고 친구한테 너무 미안했다고 얘기를 했다더라. 그 얘기를 전해듣는데 엄마 마음이 아리더라.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렸니, 우리 딸. 엄마는 최고의 선물이었어.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 소중한 추억이었고, 엄마는 진짜 행복했어. 그러니 절대 미안해 하지마. 우리 함께한 추억인데, 얼마나 고마운 기억인지 몰라.
이렇게 베풀기만 하고 간 우리 딸... 어제가 엄마 생일이었는데, 지현이가 살아있었다면 또 얼마나 챙겨주려고 애썼을까. 다 커도 엄마 입에 쪽쪽쪽 뽀뽀해주던 엄마 바라기 내 딸. 엄마 마음은 딸이 안다고, 기념일도 무뚝뚝한 너희 아버지가 챙기겠니. 딸이 엄마 마음 헤아려주고 기념일 챙겨주고 했던 거 다 기억에 하나하나 남아있어.
못 해준 것만 떠오르기도 해. 우리 딸 해외여행도 딱 한 번밖에 못 가보고... 요즘 아이들은 그렇게 해외여행을 자주 간다던데 말이야. 이번 여름에 베트남 다낭이 좋다고 가자고, 가자고 하던 네 등쌀에 못이긴 척 가볼 껄 너무 후회가 되네. 엄마랑 단 둘이 여행 가고 싶어 했는데 그거 하나 못해준 거, 너무 한이 맺힌다.
우리 딸한테 '보고 싶다' 말 많이 못한 거 그것도 후회가 돼.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면 서울에 있는 우리 딸 마음이 아플까봐, 엄마 너무 보고 싶어할까봐 차마 못했어. 딸, 너무 보고 싶다. 룸메이트한테 햇볕 드는 따뜻한 집에서 엄마 밥 먹고 싶다고 했다지. 서울살이 힘든 거 내색했으면 당장이라도 내려오라고 했을텐데, 엄마 밥 너무나 해주고 싶은데... 엄마는 무슨 정신으로 하루를 사는지 모르겠어.
엄마가 네 물건 정리하다 우리 둘이 인생네컷 찍은 것도 찾았어. 우리 딸이 너무 소중하게 간직해주고 있더라. 작년에 너 코로나 백신 맞고 그 날 엄마랑 찍었잖아. 사진에 찍은 날짜도 적혀있더라. 세상에... 11월 2일이야. 우리 딸 발인 날이야. 작년 11월 2일에는 우리 딸이랑 이렇게 사진을 찍었는데, 올해 11월 2일은 널 보내야 하는 날이 됐어. 이게 믿을 수 있는 일이겠니. 엄마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니...
누구한테 싫은 소리 한 번 못한 내 딸, 베풀기만 하다 간 내 딸. 그런데 사람들이 나쁜 말을 해. 착하고 소중한 내 딸에게 어떻게 그렇게 모진 말들을 할 수 있는지 엄마는 정말 모르겠어.
지현아. 엄마는 잘해준 것도 없는데, 잔소리만 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 못 해준 거 같은데, 지현이가 적어준 편지에는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쓰여 있어서 가슴이 더 미어져. 미안해 우리 딸. 더 잘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저 사람들 나쁜 말 하는 거 못 막아서 미안해.
지현아. 이 세상에서 안 좋았던 모든 기억은 다 버리고, 잊어버리렴. 하느님 나라에서 행복하고, 못 다한 일 다하고, 외로워하지 말고 편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어. 다음 생이 있다면 꼭 다시 엄마 딸로 태어나줘. 너무나 보고 싶고 그리운 지현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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