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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코틀랜드, 틸리에 산다. 생소한 마을의 이름만 제대로 발음하는데 한 3개월은 걸렸다. 우리 마을의 자랑이라면 양과 말, 소가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을 수 있는 푸른 초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집에 살던 화장실에서나 정원에서나 푸른 언덕의 한 귀퉁이는 보이는 게 매력일 거다.

지금이야 에든버러나 글라스고처럼 도시로 통근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지만 100년 전만 해도 광산과 양모 산업이 이 동네의 주요 밥 거리였다. 마을의 전체 인구는 사천육백 명 정도. 초등학교 하나, 우체국 하나, 커피숍 네 개, 옷 가게 세 개, 식당 네 개, 도서관 하나, 클리닉 하나. 이렇게 적고 보니 정말 시골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거 같다. 

오후 4시가 넘으면 듬성듬성 서 있는 가로등에 불이 켜진다. 그래도 마을 중앙의 찻길 말고는 아주 캄캄하다. 땅 보다 하늘이 더욱 화려한 틸리. 하늘 숍들은 늦게까지 오픈하는 모양이다. 부산 나게 트윈클 거리는가 하면 여유 있게 번쩍거리는 숍들도 눈에 띈다.  

"엄마, 달 옆에 저거 보여? 반짝거리지 않잖아."
"어.. 그러네. 별이 반짝거려야지... 왜?"

"행성이거든. 저건 화성이야."
"화성? 우와. 화성이 아주 밝다."

"저거 봐봐. 반짝이지만 저렇게 빨리 움직이는 건 별이 아니야."
"별이 아닌 것도 반짝거린다고?"

"저건 사람이 만든 위성이거든."
"아. 그렇지. 위성도 저렇게 반짝이겠지."

 
 틸리 하늘에서 보이는 오리온자리. 'Night Sky'라는 앱을 이용하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틸리 하늘에서 보이는 오리온자리. 'Night Sky'라는 앱을 이용하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 Hyeyoung Jess
 
"화성 옆으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냥꾼 오리온이 있어. 저기 나란히 있는 별 세 개 보여?"
"어... 하나, 둘... 저건가? 아니... 이거?"

"저 세 개의 별이 오리온의 허리띠야. 그 밑으로 두 발이 이어져 있고."
"뭐야. 발까지 있다고? 저건가?"

 
 틸리 하늘에서 보이는 큰 곰자리. 'Night Sky라는 앱을 이용하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틸리 하늘에서 보이는 큰 곰자리. 'Night Sky라는 앱을 이용하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 Hyeyoung Jess
 
"엄마는 북두칠성 아는데.. 어디에 있을까?"
"북쪽으로 가면 있겠지. 저기, 저기 있네."

"참... 그러니까 북두칠성이라고 하지. 근데.. 왜 별이 5개밖에 없어."
"저기 언덕 밑으로 가려져서 그래. 국자 모양의 손잡이가 숨어 버렸네. 저기 북두칠성을 가만히 연결해 보면 큰 곰 자리를 볼 수 있어. 저 국자의 손잡이가 곰의 꼬리고 국자 모양은 엉덩이 부분.... 엄마, 따라오고 있지? 저게 뒷 발톱이고... 보이지?"
"어..... 저거? 아니 이건가?

만 개의 흰 쌀을 바닥에 뿌려 놓고 쌀 눈을 연결해서 큰 곰을 찾아보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저게 이거 같고 이게 저거 같은데. 이 끝의 별과 저 끝에 숨겨진 별까지 찾아서 연결하다니. 깜깜한 하늘 위로 큰 곰을 몇 번이나 그린다. 이렇게 당연한 곰을 어떻게 못 볼 수 있냐는 아주 갑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사냥꾼 오리온을 얼른 검색했다. 드디어 허리띠에서 빛나는 별 세 개를 발견했다. 무명의 별에 이름을 발견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도곤도곤 거렸다. 오리온자리뿐만 아니라 전갈자리, 카시오페이자리, 이른 새벽에 떠오르는 금성까지. 아이들은 무수하게만 많던 별들의 이름을 찾아낸다. 

옛날 옛적 사람들도 무수한 별들에 이름을 붙이거나 이름을 찾아내곤 했었다. 신라의 선덕여왕 때 만들었던 첨성대보다 훨씬 전, 지금으로부터 이 천 년 전의 일이다.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유독 반짝거리는 큰 별을 따라 며칠이 걸릴지도 모를 길고 긴 여정을 떠났다.

동방으로부터 반짝거리기 시작했던 별은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에 이르게 된다. 별은 앞서 움직이며 길을 안내하다가 예수라는 아이 위에 멈추어 섰다. 박사들은 그 별을 보는 순간,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 unsplash
 
12월 25일 예수가 태어난 날. 높고 높은 하늘 끝의 별이 이 땅 어딘가에 숨어 있을. 헤매고 있을 나 같은 사람과 연결하기 위해 낮고 낮은 땅 끝의 별이 되셨다. 별의 이름은 예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으로 '임마누엘'이라 부른다.

이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반짝 거리는 그 별은 누군가에게는 답답하리 만큼 선명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저건가? 아니.. 이거?' 헷갈리기도 한다. 분명한 건 반짝이던 하늘 별이 나에게 찾아왔다는 것. 내 마음속에 숨을 쉬고 내뱉는 공기 속에, 사람이 붐비는 백화점이나 혼자 걷고 있는 길거리에, 바쁘게 돌아가는 직장에, 가족들에게도.

박사들이 기뻐하고 기뻐했던 별. 사람이 사는 삶 속에서 반짝이는 임마누엘의 별. 가슴이 또다시 도곤도곤거린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중복 게재


#스코틀랜드#성탄절#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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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코틀랜드에서 살고 있어요. 자연과 사람에게 귀 기울이며 기록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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