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시각이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또 실언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사는 수행기사를 기다리느라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에 늦게 도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 장관은 골든타임이 지난 시점이라 현장에 급히 갈 필요가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한 지난 11월 16일 "유족 명단이 없다"고 단언했던 이 장관은 당시 서울시가 유가족 명단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저희가 어떻게 강제로 (뺏을 순 없었다)"고 변명하기도 했다.
"택시라도 탔어야지" 질타에, 이상민 "그 사이에 놀고 있었겠나"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는 27일 국회에서 첫 기관 보고 전체회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포함해 윤희근 경찰청장, 남화영 소방청장 직무대리, 한오섭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일부 희생자 유가족도 참관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 과정에서 이 장관이 참사 발생 사실을 보고 받은 뒤 85분이 걸려 이태원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경기도 일산에 사는 수행 기사를 기다린 탓이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 "현장에 직접 운전해서 갔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 "제 기사하고 갔다."
윤건영 : "기사가 올 때까지 기다렸나?"
이상민 : "여러 가지 대체 방안을 생각하고 있었다."
윤건영 : "기사 집이 어디였나?"
이상민 : "일산으로 안다."
이어 윤 의원이 "일산에서 압구정(이상민 장관 자택)까지 가는 시간 동안 장관은 시간을 허비한 것 아닌가?"라고 따져 묻자, 이 장관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택시라도 타고 가면서 지시를 내려야 했다"는 윤 의원의 질타에 이 장관은 "제가 그 사이에 놀고 있었겠나. 한 번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시라. 누굴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니라 나름대로 여기저기 전화하면서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행안부에 따르면, 이 장관은 지난 10월 29일 오후 11시 20분에 첫 보고를 받았고, 85분 뒤인 10월 30일 오전 0시 40분쯤 참사 현장에 도착했다. 참사 추정 시각은 10월 29일 오후 10시 15분이다.
"정부 시스템에서 유가족 확인 쉽잖나" 묻자...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이 자리에선 이상민 장관의 거짓말 의혹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참사 초기 유가족 명단 공개를 두고 사회적 논쟁이 있을 당시인 지난 11월 16일, 이 장관은 국회에서 "행안부에서는 유족 전체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당시 행안부는 일부 유가족의 명단을, 서울시는 전체 유가족 명단을 확보하고 있었다.
권칠승 민주당 의원은 "참사 다음 날인 10월 30일 사망자 명단을 확보하라는 대통령 지시사항이 있었다. 장관께서는 10월 31일 사망자는 150명을 상회하고 그중 90%는 신원이 확인됐다고 직접 브리핑했다"면서 유가족 명단이 확보 안 된 이유를 따져 물었다.
그러자 이 장관은 "사망자 명단은 있었고, 유가족 명단은 (없었다)"고 답했다.
권 의원이 "정부 시스템을 통하면 유가족 확인은 쉽지 않느냐"고 지적하자, 이 장관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장관의 다소 황당한 답변에 회의장 여기저기에서 탄식이 흘렀다.
이어 권 의원이 "국회에서 한 답변은 11월 16일이었다. 보름 넘는 기간 동안 행안부는 아무것도 안 했느냐"고 추궁하자, 이 장관은 "서울시에서 명단을 넘겨주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서울시는 희생자와 유가족 명단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행안부는 그렇지 못했다는 설명이었다.
"서울시와 협조를 하든 유가족 명단을 확보할 방법을 찾았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권 의원의 질타에, 이 장관은 "서울시가 명단을 주지 않겠다고 하는데 저희가 어떻게 강제로 (확보하느냐)"고 맞섰다.
이상민 장관의 답변을 듣던 유가족의 항의에 국정조사는 잠시 파행되기도 했다.